황석산성 논단 - Ⅱ 잃어버린 역사와 함양사시(咸陽斜視) 2
황석산성 논단 - Ⅱ 잃어버린 역사와 함양사시(咸陽斜視) 2
  • 경남연합신문
  • 승인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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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장 박선호논설위원황석역사연구소장
연구소장 박선호
논설위원
황석역사연구소장

 

함양군수동의 사근산성은 성의 개념을 붙일 수 없다. 성이라면 물이 있어야 하고 군사들이 주둔을 할 수 있고 종심이 깊어 적의 직접사격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는 성으로서 역할을 할 수가 없고 적과 일전을 했다고 해서 그곳을 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제갈공명이 눈물을 머금고 목을 벤 마속이 선택했음직한 산을, 그냥 남들이 듣기 좋게 성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없었던 성을 애써서 만든다면 무슨 의미로 역사에 남을 것인지? 선거산성選擧山城이나 무의행사無意行事라는 오명을 쓰고 두고두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597년 정유전쟁, 황석산성을 공격한 일본군이 75,300명인지? 27,000명인지?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무엇을 알겠는가마는 경찰서장을 임명하는 절차에는 전술이나 군사학에 대해서는 사전교육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경찰서장을 지낸 사람이 추모위원장을 하면서도 아직도 황석산성을 공격한 일본군(2만7천명)은 한명도 죽지 않고 방어를 하는 조선 사람만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친일파나 식민사관에 빠진 사람들의 소리나 일본사람들이 축소, 왜곡한 불량한 임진전란사의 기록을 굳세게 믿고 2021년9월24일 황석산성대첩 423주년 추모사에서도 2만7천명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2만7천명은 황석산을 공격한 병력 75,300중 살아서 도망간 기동이 가능한 병력인데 그런 전투개념이 전혀 없다. 그래서 27,000명이 황석산성에 참전한 병력의 전체인 것처럼 주장하는데 어떻게 해서 그것이 전체병력인지 근거를 가지고 공개적으로 발표를 해 달라! 그러면 내가 당신의 말을 믿겠노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아직도 묵묵부답이라 참으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전투에서 3:1로 우세할 때 공격하는 이유, 즉 공격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희생을 당한다는 전제하에 공격부대의 규모를 산출하는 개념이 그에게는 전혀 없는 함양사시咸陽斜視다.

남문을 공격한 우군대장 모리데루모도 히로시마성주는 우전마을에서 아군이나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동료들의 코를 베면 바로 현금이 들어오고 상금과 훈장이 쌓이는 전장에서 돈을 버는 오징어게임(squidgame)을 하다가 남문을 같이 공격하는 조오소가베군과 전과를 다투었고 동료들의 코를 마구잡이로 베는데 화가 난 부하들의 집단공격으로 칼과 총을 맞아 식물인간이 되었고 전주성에서 치료를 시작하여 전남장성진원현으로, 전남나주로, 부산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8개월간이나 지휘권을 상실한 것을 두고 일본총독부는 그가 죽지 않고 유령幽靈인 신선神仙이 되었다라고 왜곡, 조작 표현했다. 조명연합군을 전라도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는 속임수 작전인 8월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친 양동북진陽動北進 후인 9월1일 전주성에서 코베기보고서를 낸 그의 집사 깃가와히로이(吉川廣家)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모리데루모도와 조오소가베 두 장군이 전주성에서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은, 모리데루모도와 조오소가베가 부대가 “거창에서 장수, 부안으로, 또는 천안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황석산성에서 궤멸되었음을 밝혀주는 것이다. 남원성을 공격한 우기다히데에의 좌군 5만명이 벤코는 3,726개인데 황석산성을 공격한 모리데루모도의 우군부대장 4명이 벤 코는 무려 40,799개다. 그래서 황석산성대첩을 <코베기대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도오는 추석날 아침 말을 타고 서하황산마을을 거쳐 동문을 올라가다가 거창사람들이 굴러 내린 바위를 맞아 죽었다가 깨어나는 기절을 함으로써 구로다와 부대교체를 당하고 예비대가 되어 황석산성전투는 참여도 못했고 한 개의 코도 베지 못했다. 가도오기요마사는 조명연합군을 경상도로 유인하는 양동작전 중 상주까지 가면서 코베기 목표를 달성하고 경북영천에서 젊은 청년들을 대대적으로 포획하는 본격적인 작전을 전개하여 노예상들에게 팔아 돈을 챙김으로써 울산성전투 후 귀국하여 이미 기울어진 풍신수길의 도움이 없었어도 구마모토성을 건설할 수 있었다. 당시에 유럽으로 팔려간 대부분의 젊은 청년들은 영천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전투경험이 없었던 백성군들은 전투 첫날인 8월15일 추석날은 울고불고 난리를 쳤으나 16일에는 숙달되어 곽준이나 유명개 등 교위들이 굳이 활을 잡지 않고도 “잘한다! 잘한다!” 라고 칭찬만 해도 일본군은 여지없이 죽어나갔다. 16일은 새벽부터 시작하여 밤이 되어도 일본군은 철수도 하지 않고 인해전술을 구사했으나 돈을 벌기 위해 동료들의 코를 베는 오징어게임에서 일본군은 남문에서부터 무너져 4만3천여 명, 대부대의 공격기세가 사라지고 8월18일 새벽까지는 성안으로는 한 번도 들어가지도 못했다. 17일은 북문에서 구로다나가마사가 성주백사림의 엄마를 납치하여 심리전을 하게 된다. 3만의 병력 중 90%가 궤멸되어 북진에 2000명만을 지원한 모리데루모도는 28,390개의 코를 베었고 병력 1만3천3백명, 100%가 궤멸되어 북진에 한명도 지원하지 못한 조오소가베는 6,040개의 코를 베었다라고 보고했다. 이와 같은 잃어버린 역사! 일본인들이 조작한 임진전란사가 아닌 황석산성 전투의 진실과 당시의 전투상황을 이해를 한다면 함양사시咸陽斜視의 해결에 보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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