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만드는 호랑이

남해초등학교 교장 김주영
남해초등학교 교장 김주영

 

한 삼 년 지난 일이다. 전교어린이회를 담당하는 선생님 얼굴에 걱정이 잔뜩 묻어있다. 무슨 일이냐 했더니, 난감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연인즉, 며칠 전 치른 전교어린이회장 선거에서 낙선한 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낙선한 것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아이들 사이에서 자기에게 억울한 소문이 돌아서 학교에 오기 싫다는 것이다. 과자를 선물로 주고 지지를 해달라고 했다는데 자기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니 난감하달 수 밖에.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호소하는 아이를 어찌하면 좋겠냐는 것이다. 소문의 전달자를 역추적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가짜 뉴스였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가 호의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은 내용이, 확대 왜곡되면서 과자 선물에까지 이른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에 쓴맛을 다실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사과가 이어지고 정리는 되었지만, 당사자에게는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을 것이 아닌가.

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 혜왕(惠王) 때 일이다. 방공(龐恭)이 태자와 함께 인질로 조(趙)나라 한단(邯鄲)으로 가는 중, 왕에게 말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어찌 확인도 하지 않고 믿을 수 있겠느냐.”/ “두 사람이 동시에 와서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더라도 사실을 확인해야지, 곧이곧대로 듣기는 곤란하지”/ “세 사람(여러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과인은 믿을 것이오.” 방공이 이어서 말했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그리 말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 “조나라 도읍인 한단은 위 나라의 시장보다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신에 대해 헐뜯는 사람은 여럿일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를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걱정 마시오, 나 스스로 알아서 판단할 것이오.” 방공은 작별 인사를 하고 한단으로 떠났다. 방공이 한단에 도착하기도 전에 혜왕의 귀에 비방하는 말이 먼저 들어왔다. 수년 후 태자와 방공은 인질에서 풀려나 위나라로 돌아왔으나 방공은 결국 왕을 직접 뵙지 못하고 말았다.

논어 안연편 제십이(論語 顏淵 第十二) 장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선생님 정치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공자의 대답이다. “정치란 민생을 해결하고, 나라를 방위할 국방력을 보유하고 국민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선생님, 이 셋 중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국방이니라.” 자공이 이어서 물었다. “선생님, 그렇다면 민생과 신뢰 중 할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어떤 것을 버려야 합니까.”/ “민생을 버릴 수밖에”/ “선생님, 먹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자공아 사람이란 모두 죽는다. 하지만, 사회란 믿음이 없으면 이루어지겠느냐.”

가짜 뉴스가 어디 지금에만 있었을까. 사람의 본성이란 자기가 가진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한다. 가짜 뉴스 또한 그 방법 중 하나임이 분명하니. 언뜻 지나는 사례만으로도 몇 가지가 있다. 훈구대신들이 주초위왕이라는 가짜 뉴스를 퍼뜨려 정적(政敵)인 정암 조광조를 제거한 일, 설화(說話) 논쟁이 있기는 하나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겠다고 퍼뜨린 ‘서동요’는 익히 아는 바 아니던가.

가짜 뉴스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바탕에서부터 갉아 먹는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는 공동체의 기능을 할 수 없다. 혹자는 이렇게 반론한다. 언론의 자유는 자유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권리이고,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으냐고. 동의한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사실에 근거해 자기주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가짜 뉴스를 생산한다면 대체 이를 어쩔 것인가. 사회적 갈등으로 쪼가리 난 사회가 건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성숙한 시민에게 무거운 숙제가 주어진다. 진실을 판별할 수 있는 냉철한 눈을 단련해야 한다. 대선 정국에서 퍼지는 가짜 뉴스는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혹과 불신으로 상대를 바라보니 통합과 화합은 찾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분열과 갈등이 넘실대는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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