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수 진주추모회 손춘매 회장, 올해 1월 취임
6월10일 진주 견불사서 남인수 100주년 추모식
손 회장 “진주 남인수가요제 다시 부활해야 해”
추모회, 지난 27일 합동제례로 고인의 넋 기려

가요황제 남인수 진주추모회는 지난 3월27일 '가요황제 남인수의 묘(歌謠皇帝南仁樹之墓)'를 방문해 타계 56주년 합동제례를 지냈다.
가요황제 남인수 진주추모회는 지난 3월27일 '가요황제 남인수의 묘(歌謠皇帝南仁樹之墓)'를 방문해 타계 56주년 합동제례를 지냈다.

 

가수 故남인수를 위해 진주에서 활동하는 단체 ‘가요황제 남인수 진주추모회’가 있다. 가요황제 남인수 진주추모회는 진주 출신 가수 남인수의 업적과 전통 계승 발전을 위해 지난해 10월 설립돼 30여명 회원으로 구성되어있다. 30여명 회원들 중에서도 가요황제 남인수 진주추모회 손춘매 회장의 가수 남인수를 위하는 마음은 각별하다.

손 회장은 올해 1월 가요황제 남인수 진주추모회 2대 회장으로 취임해 활동하고 있다. 손 회장은 그동안 남인수의 업적이나 음악이 제대로 전해지거나 보존되지 않아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고민과 걱정이 컸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던 손 회장은 가수 남인수는 진주가 낳은 아들이자 뛰어난 가수이고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진주의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남인수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진주추모회는 매달 22일 정기모임을 통해 남인수의 고향인 진주에서부터 관심을 가지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난 3월 27일엔 '가요황제 남인수의 묘(歌謠皇帝南仁樹之墓)'를 방문해 타계 56주년 합동제례를 올리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또 진주추모회는 오는 6월 10일 진주시 장재동에 위치한 비봉산 견불사에서 가요황제 남인수 100주년 추모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견불사는 십수년째 남인수 추모제향을 지내오고 있는 곳으로, 올해 18회를 맞는 가수 남인수 선생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다.

-가요황제 남인수 진주추모회 회장이다.

△올해 1월 가요황제 남인수 진주추모회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가요황제 남인수 진주추모회는 어떤 단체인가.

△진주가 고향인 가수 故남인수 선생을 위해, 고향인 진주에서부터 고인의 업적과 전통 계승 발전 등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현재 30여명이 활동 중이다.

-어떤 활동을 하나.

△가요황제 남인수 선생의 명예회복과 생가복원, 남인수가요제 부활, 진양호 공원 내 위치한 동상 이전 등 다양한 사업을 구상중이다.

-남인수가요제가 진주가요제로 대체됐다.

△1996년부터 고인을 기리는 남인수가요제가 진행돼 오다 친일 논란에 휩싸이며 2008년부터 진주가요제로 대체됐다.

-친일 논란이라면.

△남인수 선생이 친일 내용이 담긴 노래를 불렀었다. 하지만 당시 최고 가수였던 남인수 선생은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죽거나, 징용이 보내지는 등 협박과 고문이 있던 시대였다.

-가요제는 대체됐지만 추모식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27일 임원진 및 회원들과 함께 '가요황제 남인수의 묘(歌謠皇帝南仁樹之墓)'를 방문해 故 남인수 타계 56주년을 맞아 합동제례를 올렸다. 또한 진주 비봉산 견불사에선 수십여년동안 가수 남인수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또 오는 6월10일 100주년 추모식이 견불사서 열릴 예정이다. 가요제는 대체됐지만 전국 곳곳에서 고인의 넋을 기리는 행사 등이 진행되고 있다. 가요제도 꼭 부활시킬 것이다.

-남인수추모회가 전국에 있나.

△남인수는 하늘이 내린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나라를 잃고, 고향을 잃은 국민들의 아픔을 위로해준 국민가요 황제였다. 그만큼 고인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전국에 많다. 오는 100주년 추모식에서 서울 등 전국 각지에 있는 남인수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함께할 예정이다.

-가수 남인수 고향이 진주다.

△지금은 등록문화재에서 말소되었지만 남인수 선생의 생가가 나와 같은 동네 하촌동이었다. 과거 남인수 선생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불렀고, 새벽마다 마을 뒷산 대나무 숲에 발성법을 익혔다. 남강 건너 바위산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가 되돌아오곤 했다. 또 하모니카·장구·북 등 악기를 연주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가요황제 남인수 진주추모회 회장으로서 한마디.

△우리 진주가 낳은 남인수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부끄럽지 않는 진주추모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 그리고 진주가 기반이 되어, 전국에 있는 남인수 단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선생의 업적을 보존해 나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존재하는 한 남인수 선생의 노래는 영원할 것이다.

 

남인수 대표곡 ‘애수의 소야곡’ 앨범 사진.
남인수 대표곡 ‘애수의 소야곡’ 앨범 사진.

 가수 故남인수

1935년 말에서 1936년 초 경에 시에론 레코드사의 가수로 선발돼, 1936년 2월 「눈물의 해협」으로 데뷔했다. 이후 1937년 오케 레코드사로 이적해 「애수의 소야곡」으로 명성을 얻었다. 1957년 대한레코드 가수협회를 창설해 초대 회장, 1960년 전국공연단체연합회 회장, 1961년 한국무대예술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1962년 6월 26일 44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아래는 그의 대표곡 ‘애수의 소야곡’이다.

 

'애수의 소야곡’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 잊을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구나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든고

모두다 흘러가면 덧없건만은

외로운 별을 안고 밤을 새우면

바람도 문풍지에 싸늘하구나

 

조현웅 기자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