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대 감독, 초등학생 땐 축구선수가 꿈
15살 테니스 시작, 19살 최연소 국가대표
뉴델리 아시안게임 복식, 혼합복식 은메달
전영대·이우룡 선수와 마산고 황금기 열어

전창대 창원시청 테니스 감독

전창대 감독(창원시청)은 마산고등학교 황금기를 이끌고 최연소 테니스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등 한국 테니스 세대교체를 이끈 장본인이다.
전창대 감독(창원시청)은 마산고등학교 황금기를 이끌고 최연소 테니스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등 한국 테니스 세대교체를 이끈 장본인이다.

테니스 선수 정현의 호주오픈 4강 진출로 국민들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지난 1979년 한국 테니스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주인공이 있다. 현 창원시청 테니스 전창대 감독이다. 그가 활약 했을 땐 지금처럼 SNS 및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아 테니스가 크게 주목받거나 붐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당시 한국 테니스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전창대 감독은 마산동중학교 2학년 때 테니스 라켓을 처음 잡았다. 중학교 입학 전까진 아무도 그가 테니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선수를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중학교도 축구부가 있는 마산중앙중학교에 진학하길 원했다. 하지만 테니스를 할 운명이었을까, 추첨제로 인해 마산동중에 가게 됐다. 하지만 그는 축구가 아니더라도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학교 체력장 1등외에도 여러 운동에서 돋보이는 운동신경과 센스로 체육선생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선생은 곧바로 그에게 테니스를 권유했고, 그 권유가 훗날 한국 테니스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전 감독은 마산고등학교에 진학해 테니스 선수로서 꾸준히 국가대표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고등학교 3학년, 19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최연소 국가대표의 탄생이었다. 당시 그의 국가대표 발탁은 테니스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등학생은 프로를 향해 몸을 만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실력을 쌓아가는 단계다. 하지만 그 과정을 뛰어넘을 만큼 전 감독의 테니스 실력은 천재적이었다.

그의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은 18년 후 김동현 선수가 동래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에 선발되기 전까지 유지됐다. 그는 선수시절 전영대, 이우룡 선수와 마산고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 선수들을 포함한 노갑택, 이진수, 김춘호 선수 등과 함께 한국 테니스계 세대교체를 이뤄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인도 뉴델리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등에 출전해 복식·혼합복식 은메달, 1981년 데이비스컵 아시아 최초 월드그룹 진출 등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대우중공업 팀에서 활동, 1997년엔 테니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친정팀인 대우중공업에서 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도 회사사정으로 대우중공업이 해체되어 창원시청으로 팀을 옮겨 감독을 맡았다. 창원시청은 2001년 창단된 팀으로 전 감독은 팀 창단부터 지금까지 창원시청과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뛰어난 선수 생활과 20여년 지도자로 반평생을 테니스와 함께 살아온 그는 “나는 테니스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앞으로는 테니스를 통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창원 시청 테니스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언제부터 테니스를 했나.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테니스를 시작했다.

-꿈이 테니스 선수였나.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원래 축구선수가 목표라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해왔다. 그래서 중학교도 축구부가 있는 마산중앙중에 진학해 꿈을 키워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중학교 진학은 추첨제였기 때문에 마산중앙중학교가 아닌 마산동중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학교생활을 하던 중 마산동중 체육선생님이 나에게 테니스를 권해서 시작하게 됐다.

-만약 중학교를 마산중앙중으로 진학했다면.

△테니스선수가 아닌 축구선수로 활동했을지도 모르겠다.(웃음)

-축구, 테니스 등 원래 운동에 소질이 있나.

△축구는 물론 농구도 아주 잘했다. 개인적으로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모든 운동을 잘하는 편이다.

-한마디로 타고난 것 같다. 최연소 국가대표도 했지 않나.

△고등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다. 고등학생이 국가대표가 된 것도 이례적이지만 중학교 2학년이란 늦은 나이에 테니스를 시작해 5년여만에 국가대표가 된 것도 큰 이슈였다.

-어떻게 최연소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나.

△와일드카드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었다. 큰 기대 없이 이우룡 선수와 함께 선발전에 출전했는데, 조별리그에서 5승 1패로 거두었다. 그리고 최종 4위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당시 고등학생이 국가대표에 선발됐다며 신문마다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테니스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인가.

△모든 운동이 고등학생보다 성인이 유리하다. 고교시절은 프로나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며 배우고 익히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국가대표로서 어떤 대회에 출전했나.

△대표적으로 인도뉴델리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1981년 데이비스컵(테니스 월드컵)에 참가했다.

-성적은 괜찮았나.

△아시안게임 복식 은메달, 아시아선수권대회 혼합복식·복식 은메달, 데이비스컵 아시아 최초 월드그룹 진출 등을 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데이비스컵 월드그룹에 올라갔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1회전에서 뉴질랜드에게 패하고, 강등 플레이오프에서 이탈리아와 경기했다. 당시 이탈리아 상대 선수가 세계랭킹 30위인 지아니 오클레포였다. 1세트를 내주고 2세트는 가져와 팽팽한 상황이었는데, 3세트를 3-1로 앞서다 내줬다. 이어 4세트도 4-1로 앞선 상황에서 내주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아시아 최초로 월드그룹에 진출하는 등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반대로 가장 힘든 경기는.

△멕시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했을 때다. 당시 루마니아 선수들의 강한 서브와 스트로크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테니스를 그만 둘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선수생활 중 마산고 전성기와 한국테니스계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마산고에선 이우룡 선수와 함께 전국 1·2위를 다퉜다. 복식은 전영대 선수가 아주 뛰어났었다. 당시 마산고 테니스가 아주 강했다. 동료들을 이기면 전국 순위권에 들 정도였으니…. 고등학교 졸업 이후엔 명지대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명지대 테니스부 1회다. 이우룡, 전영대를 포함한 노갑택, 이진수, 김춘호 선수 등 당시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선수들은 지금도 지도자, 테니스협회 임직원 등으로 활동하며 테니스를 위해 힘쓰고 있다.

전 감독은 대우중공업 선수·코치를 거쳐 2001년 창원시청 감독을 맡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청 선수들과 전 감독(좌측 첫 번째) 모습.
전 감독은 대우중공업 선수·코치를 거쳐 2001년 창원시청 감독을 맡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청 선수들과 전 감독(좌측 첫 번째) 모습.

 

-창원시청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언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나.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며 1982년 대우중공업 팀에 들어가 97년도까지 선수로 뛰었다. 이어 98년부터 대우중공업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창원시청은 언제부터 맡게 됐나.

△대우중공업에서 코치로 활동하다 2000년도에 회사 사정으로 팀이 해체됐다. 마침 경남체육회에서 연락이 와 창원시청 팀을 창단하게 됐고, 팀 감독을 맡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창원시청 팀은 어떤 선수들이 있나.

△남자선수 3명, 여자선수 4명이 있다. 남자선수는 김동욱·박재영·조광현, 여자선수는 김성희·설유나·유민화·이혜진로 구성되어 있다.

-선수 영입은.

△초등부 유목초·삼랑진초, 중학부 마산동중·경원중, 고등부 마산고·명지여고로 선수 육성 루트는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요즘 부모들이 자식 한두명 낳아 애지중지 키우다 보니 운동을 시키려 하지 않는다. 선수 발굴과 육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

-선수들과 어떤 식으로 소통하나.

△선수들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다. 이전에 운동하던 사람들은 뭐든지 시키면 다했다. 그런 권위적인 모습이 싫어 양방향 소통하며, 선수들 컨디션과 상황도 함께 고려한다.

-지금 운동선수들과 과거 운동선수들은 어떤 차이가 있나.

△과거엔 때론 맞기도 하고, 지시하는 대로 운동했다. 그러다 보니 운동선수들은 ‘시키면-한다’는 마인드가 박혀있다. 어릴 때부터 겪었던 그런 훈련방식이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런 식의 운동은 능률을 떨어뜨린다. 운동도 즐겁고, 재밌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잘할 수 있다.

-선수들에게 따로 요구하는 점은 없나.

△섬세하지 못하거나 미스가 나더라도 공격력을 높이라 주문한다.

-창원시청 팀은 어떤 대회를 준비중인가.

△올해 진주에서 열리는 경남도민체전과 창원국제 여자챌린저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도민체전은 익숙한데. 창원국제여자챌린저대회는 어떤 대회인가.

△2001년경 창원에 대규모 테니스 코트가 만들어졌다. 지방에서 큰 규모의 코트를 만들어졌기 때문에 테니스 대회를 유치하려고 했다. 이에 대한테니스협회와 접촉했는데, 국제대회 유치를 권유해 2002년부터 매년 5월 창원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도 16회 창원국제여자챌린저대회가 5월7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열릴 예정이다.

-창원시청 팀의 좋은성적을 기대해도 되나.

△여자챌린저대회는 예선통과 8명, 와일드카드 4명, 본선 자동출전선수 20명 등 총 32명이 본선에서 경기를 펼친다. 자동출전선수 20명은 랭킹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눈치싸움도 중요하다. 도민체전이든, 챌린저대회든 우리는 평소와 같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최근 정현 선수가 호주오픈 4강, 세계랭킹 19위 등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정현 선수는 한국인 최초 그랜드슬램 대회 4강 진출 등 좋은 기량과 성적으로 한국 테니스뿐 아니라 세계 테니스 세대교체를 이끌 핵심 인물이다. 특히 정현 선수의 양손 백핸드 스트로크와 수비력은 세계 정상권 수준이며 모든 경기를 침착하게 해쳐 나가는 것도 큰 장점이다. 정현 선수의 선전이 테니스 붐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현 선수 이외에도 주목할 선수는 누가 있나.

△권순우, 이덕희 선수가 뛰어난 유망주라 생각한다.

-운동선수 유망주들이 부상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테니스 선수는 어떤 부상에 주의해야 하나.

△테니스는 척추를 중심으로 신체의 모든 관절을 사용하는 운동이다. 때문에 운동 전후 스트레칭이 중요하다. 또 테니스 공을 넘기기 위해 부지런히 스텝을 밟으며 움직이기 때문에 무릎부상을 입기 쉬우며 테니스 선수에겐 치명적인 엘보(팔꿈치) 부상도 주의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테니스 덕분에 평생을 살아왔다. 앞으로는 테니스를 통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

조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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