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헌 관장은 복싱신인선수권·전국시도대항·도민체육대회 등을 휩쓸며 진주복싱을 이끌어왔다. 16살 때부터 취미생활로 복싱을 시작한 그는 정은상 스승을 만나며 달라졌다. 복싱은 더 이상 그에게 취미생활이 아닌 삶의 일부였다.

복싱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정 관장은 어릴 때부터 힘이 세고 운동신경이 좋아 싸움을 잘했다. 철없던 시절 사고도 많이 냈다. 하지만 복싱을 배우며, 무도의 자세나 운동인의 마음가짐을 배워 나갔다.

요즘 ‘잘 놀던 애가 일도 잘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정 관장을 뜻하는 듯하다. 그는 소싯적 싸움 꽤나 했듯, 복싱도 잘했다. 당시 복싱은 우리나라 대표 스포츠였고, 그 중심에서 그는 진주복싱의 저력을 전국에 알리고 있었다.

정대헌 관장의 이러한 공로가 인정받아 여태껏 경남아마추어복싱연맹 공로패, 한국권투위원회 공로패, 경상남도교육감 표창장, (사)한국BBS연맹 공로상, 진주시장 표창장 등을 수상했다. 진주 복싱계에선 유일무이하다. 물론 이는 타지에서도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진주복싱을 이끈 장본인’이다.

하지만 진주복싱을 위한 노력은 정 관장 혼자만의 일인 듯 보인다. 진주시는 체육을 통합하고 선진국형 종합스포츠클럽을 육성하여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체육행정을 펼쳐 나가고, 체육 인프라 구축을 위하여 체육시설을 설치하는 등 명실상부한 ‘시민 건강 100세, 건강도시 진주’ 실현에 힘쓰고 있지만 정작 복싱의 현실은 차갑다.

물론 지난 2016년 진주에서 WBA 여자 세계챔피언 결정전이 개최됐지만 일회성 행사로 끝날 수 있어, 앞으로 복싱대회가 꾸준히 열릴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복싱은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지난 동계올림픽 컬링의 ‘킴팀, 안경선배, 영미’ 등 비인기 종목도 엄청난 인지도와 대중성을 누릴 수 있다.

뒤늦게라도 한국이 컬링을 챙기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진주시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 미리 복싱을 챙길 것인가. 뒤늦게 복싱을 챙길 것인가. 물론 복싱이 영원히 비인기 종목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복싱을 챙긴다면 진주는 복싱의 고향, 복싱의 성지로 이름 날릴 것이다.

본질적 측면에서 컬링과 복싱은 다르지 않다. 같은 비인기 종목이다. 복싱도 옛 전성기처럼, 또는 컬링처럼 언제 다시 부활할지 모른다. 그 부활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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