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도전 세계 정상 오른 디스플레이
갑질없는 재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고인 유지·유족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

구본무 회장이 향년 73세 일기로 지난 20일 타개했다. 사진은 고 구본무 LG 회장.
구본무 회장이 향년 73세 일기로 지난 20일 타개했다.
사진은 고 구본무 LG 회장.

LG 구본무 회장, 향년 73세 일기로 타개

43년간 LG를 위해 일해 온 구본무 회장이 향년 73세 일기로 지난 20일 타개했다. 고인은 지난해부터 지병으로 투병해오면서도 연명치료를 거부하다 이날 오전 9시 22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영면했다.

살아생전 구 회장은 지난 1975년 LG화학의 심사과장, 1995년 제3대 회장 취임 등 LG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23년간 LG의 수장이었던 구 회장은 '글로벌 1등 LG'를 만들기 위해 쉼표 없이 달려왔다.

구 회장은 미국 애슐랜드 대학교 경영학 학사와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1975년 LG화학에 입사했다. 이후 LG화학 수출관리부장, LG화학 유지총괄본부장을 역임하고 1980년 LG전자 기획심사본부장, 이사, 일본 동경주재 이사, 상무를 거쳐 1985년 LG회장실 전무, 부사장, 1989년 LG 부회장을 역임하고 1995년 LG 제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고인의 주요 연보

1995. - LG 브랜드 선포, 럭키금성에서 LG로 명칭 변경

- LG 제3대 회장 취임

- ‘LG 21세기 선발대(現LG글로벌챌린저)’ 해외 탐방 프로그램 실시

1996. – LG텔레콤(現LG유플러스) 출범

1997. - LG상록재단 설립

1999. - LG화학, 국내 최초 <리튬이온전지> 양산

- LG필립스LCD(現LG디스플레이) 출범

2000. - LG아트센터 개관

2003. - LG 국내 대기업 최초 지주회사체제로 전환, 지주회사 ㈜LG 출범

- LG, LS와 계열 분리

2005. - LG, GS와 계열 분리

- 새로운 경영이념 LG Way 선포

2006. - LG디스플레이, 파주 디스플레이 단지 준공

- LG디스플레이, 세계 최초 100인치 Full HD LCD 개발

2009. - LG화학 세계 첫 GM전기차에 배터리 독점 공급

- LG전자 ‘서초 R&D 캠퍼스’ 준공

2010. – 유무선 통합 통신사 LG유플러스 출범

2011. - LG디스플레이, 세계 최초 55인치 TV용 OLED 패널 개발

- LG화학, 오창 전기차용 배터리공장 준공

- LG유플러스, 4G LTE 상용서비스 시작

2013. - LG전자 VC사업본부 출범

- LG전자, 세계 최초 곡면 올레드TV 출시

2015. - LG복지재단 대표이사 취임

- LG의인상 제정

- LG화학, 세계 최초 헥사곤 배터리 개발

2016. -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 취임

- 연암학원 이사장 취임

- LG전자, 초프리미엄 ‘LG 시그니처’ 출시

- LG화학, 폴란드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

2017. - LG디스플레이, 세계 최초 77인치 투명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개발

- LG화학, LG생명과학 합병

2018. - 국내 최대 규모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 개관

- LG전자, ㈜LG와 글로벌 프리미엄 헤드램프 기업 ZKW 인수

- LG디스플레이, 세계 최초 88인치 8K OLED TV용 패널 및

- 65인치 UHD Rollable TV용 패널 개발


 

 

지난 21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구본무 LG 회장 빈소 모습. 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오른쪽)가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구본무 LG 회장 빈소 모습. 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오른쪽)가 빈소를 지키고 있다.

 

오늘의 LG를 만들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LG그룹의 오늘을 만든 설계자이자 실행자다. 지난 1995년 회장 취임 직전 사명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고 회사 얼굴인 CI(회사 이미지)도 현재처럼 변경하는 일을 주도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재벌 빅딜’ 과정에서 반도체 사업을 중도 포기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1999년부터 시작된 계열분리, 지주사 전환 과정을 잡음 없이 마무리했다.

구 회장은 1975년 럭키(현 LG화학)에 입사해 럭키금성그룹 부회장, 금성사 대표이사 부회장 등을 거쳐 1995년 50세 나이로 고(故) 구인회 선대회장, 구자경 전 회장에 이어 LG그룹 제3대 회장에 올랐다. 회장 취임 일성으로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 최고를 성취해야 한다”며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과감한 도전의 대표적 결과물이 세계 정상에 오른 디스플레이다. 구 회장은 1998년 말 반도체 사업 유지가 불투명해지자 LG전자와 LG반도체가 하고 있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을 분리해 LG LCD를 설립했다. 사업 첫해인 1995년 임직원 수 1100여명, 매출액 15억원 규모의 회사를 지난해 말 임직원 3만3000여명, 매출 27조원의 회사로 키웠다.

2차 전지 사업도 그의 혜안과 뚝심이 빛을 발한 분야다. 1990년대 초반 사업을 시작했으나 한때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구 회장은 “꼭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라”고 독려했고, 그 결과 지난해 말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액만 42조원에 달할 정도로 큰 성과를 거뒀다.

57년간 동업해온 허씨와의 계열분리도 ‘아름다운 이별’로 매듭지었다. 구 회장은 계열분리 전까지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함께 보고받는 등 동업자를 예우했다. 2005년 3월 GS그룹 출범식에선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면서 역경과 고난을 함께 이겨냈다”며 “앞으로도 1등 기업을 위한 좋은 동반자가 되자”고 말했다.

구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지배구조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자 대기업 중 처음으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을 서둘렀다. 2003년 3월 통합 지주사 ㈜LG를 출범시킨 덕분에 LG그룹은 대기업 중 유일하게 지배구조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평소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해온 구 회장은 4조원을 투입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도 탄생시켰다. 지난해 9월 사실상 생전 마지막 대외 활동을 LG사이언스파크 건설 현장 점검으로 할 정도로 강한 애착을 보였다. 이밖에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희생한 평범한 사람을 기리는 ‘LG의인상’을 제정해 사회 공헌의 새로운 모범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고인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그룹 경영만큼이나 공익활동을 중시하면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게 재계 안팎의 평가다.

고인은 지난 2015년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LG 의인상’을 제정했다. LG복지재단은 지금까지 72명의 의인을 선정·발표했다. LG상록재단은 산림환경의 보호·연구, 야생 동·식물 보호·연구 지원사업을 목적으로 지난 1997년 12월 설립된 재단으로, 고인이 일생 보여준 새와 숲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고인은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 있는 집무실에서 망원경으로 한강의 밤섬에 몰려드는 철새를 즐겨 감상했다. 또 경기 광주시 곤지암에 본인의 아호를 딴 ‘화담(和談)숲’을 조성하고, 무궁화 500주를 심어 나라꽃 사랑을 실천했다. LG상록재단이 지난달 산림청과 공동으로 실내 재배용 무궁화 품종 개발과 보급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도 고인의 이런 뜻을 반영한 것이다.

‘기업이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밑거름이 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학술지원과 청소년교육, 문화예술 분야에서 지원 활동을 벌인 LG연암문화재단, ‘인재육성’과 ‘과학기술 진흥’이란 창업자의 유지를 이어받아 설립한 연암학원 등도 고인의 공익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재계 관계자들이 기억하는 고인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평가할 정도로 ‘재벌 갑질’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국내외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며 사회의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장례식도 소탈하고 겸손하게

지난 20일 오전 9시 5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이에 가족 이외의 조문과 조화도 받지 않았다.

이는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하고 소탈하고 겸손하게 살아왔으며 자신으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아했던 고인의 뜻을 따르기 위한 결정이었다.

다만 이런 유족의 뜻에도 정·재계에서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첫 외부 조문객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이 부회장은 20일 오후 4시경 홀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어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구본완 LB휴넷 대표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빈소를 찾았다.

이후 오후 6시까지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본걸 LF 회장△ 구자철 예스코홀딩스 회장 △변규칠 전 LG상사 회장 △이문호 전 LG 부회장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이후 오후 8시까지는 △신희철 서울대 의대 박사 △이헌재 전 부총리 △김성태 의원 △하태경 의원 △구자열 LS그룹 회장 △허윤홍 GS건설 전무가, 이후 오후 10시까지는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구본혁 LS니꼬동제련 부사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허세홍 GS글로벌 사장 △이상철 전 LG유플러스 부회장 △남용 전 LG전자 부회장 등이 조문을 위해 빈소를 방문했다.

유족은 당초 가족 외 조문과 조화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찾아온 조문객들을 돌려보내기 어려워 일부 조문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화 또한 거의 받지 않았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와 범LG가가 보낸 조화에 한해서만 수용해 빈소 내부에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오전 발인 역시 구 회장의 뜻에 따라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에서 화장으로 진행했으며, 발인 역시 일가족들끼리 간소하게 진행됐다.

이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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