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모시·베·명주 등 대표적 소재
식물로 베를 짜서…선조들의 지혜

대표적인 한복 소재로는 무명, 모시, 베, 명주 등이 있으며 무명 원단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훌륭한 옷감으로서, 한복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의 옷을 만들어 입었다.
대표적인 한복 소재로는 무명, 모시, 베, 명주 등이 있으며 무명 원단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훌륭한 옷감으로서, 한복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의 옷을 만들어 입었다.

 

한복을 만들어 입는 소재는 예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십, 수백 가지라 할 만큼 그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한복 소재로는 무명, 모시, 베, 명주라 할 수 있겠다.

먼저 무명 얘기를 하자면 목화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하는데, 목화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고려 말(공민왕 12년) 문익점이 붓 뚜껑에 감춰서 중국에서 몰래 들여왔다고 대부분 알고 있는데 경남 산청의 목화 박물관에서 알아보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게 중국에서 목화씨를 못 가져가게 했던 게 아니고 그냥 붓 뚜껑에 보관하기가 좋아서 거기에 담아왔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장인 정천익에 의해서 실험 재배가 이루어지고 베 짜는 기술을 습득하여 전국에 퍼지게 된다. 목화가 전파됨에 따라 우리나라 의류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태종 때는 이미 충청, 전라, 경상 삼도에서 면업이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세종 때 조세의 일종으로도 되었으며 염업, 광업과 함께 조선시대 삼대 기간산업의 하나가 되었다. 원산지는 동아시아지만 따뜻한 기후에서는 어디든지 재배가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자라는 기간을 충분히 주어야하고 흰색의 꽃이 피었다 색깔이 변하는 특징이 있으며 꽃이 지고 열매처럼 꼬투리 생기는데 그 꼬투리가 터지면서 솜이 보인다. 모든 원단의 생산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무명의 제작 과정은 참으로 힘들고 오랜 노동이 필요하다 목화송이를 따서 이를 볕에 말리고 씨를 빼고 그 솜으로 면사를 만들고 베를 짜면 무명천이 된다.

목화로 무명옷이 생기기 이전에는 옷감이라고 해봐야 비단과 베옷 정도가 대부분 이었기에 서민들은 겨울을 항상 춥게 지내야 했다. 무명 원단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훌륭한 옷감이기에 한복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의 옷을 만들어 입었고 목화는 이불의 솜으로도 사용하고 천과 천사 이에 넣어 누빔 옷도 만들어 입는다. 귀족들은 비단옷을 입고 겨울을 따듯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서민들에게 무명은 아주 귀한 옷감이 아닐 수 없었다.

무명의 장점은 천연 소재이다 보니 땀 흡수가 잘되고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을 주고 겨울에는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탁월한 소재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비단(명주)보다 조금 무겁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라 할 수 있겠다.

한복 이야기와는 무관한 이야기 이지만 목화 얘기가 나왔으니 잠시 목화라고 불러지게 된 유래를 한번 보겠습니다. 하얀 눈송이 같은 목화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이런 꽃말이 나온 전설은 오래 전 중국에 ‘모노화’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 수많은 남자들의 청혼을 모두 거절한다. 돈이 많은 남자도 권력이 있는 남자도 모두 거절하고 가진 것 없는 한 상인에게 꽃 한 송이를 받고 혼례를 치르고 예쁜 딸을 출산하게 되었는데 그 행복도 오래가지 못 한다. 중국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전쟁에 나간 남편이 전사를 하고 먹을 게 없게 되자 모노화는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 딸에게 먹였다고 한다. 결국 모노화는 죽게 되고 그 후 모노화의 무덤에서 이름 모를 새싹이 올라오는데 딸은 그 새싹을 잘 키워 보려 했으나 물 한 방울도 귀한 때라 딸은 상심하고 있었는데 그 식물은 물 한 방울 없이도 잘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열매가 터지면서 그 안에서는 부드럽고 하얀 솜이 나왔다. 그 후로 사람들은 죽어서도 딸을 잊지 못하고 따뜻하게 해주려고 솜을 보냈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이 식물을 모노화의 이름을 따서 모화로 부르다가 나중에는 ‘목화’로 부르게 된다.

무명이 가난한 서민들의 옷이라면 모시는 양반과 귀족들의 옷이라 할 수 있겠다. 모시는 쐐기풀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의 인피섬유로 제직된 옷감, 저마(苧麻), 저마포(苧麻布), 저포(紵蒲)라고 하기도 한다. 모시풀은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속성이 있어 중국 남부, 인도 동남아시아 등 아열대 기후에서 잘 자란다. 이를 이용한 옷감을 모시라한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제직되어 왔으며 삼베와는 달리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충청남도 서천군, 그 중에서도 한산모시의 제직 기술과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산의 세모시 짜는 기술은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모시는 예로부터 여름용 옷의 옷감으로 주로 사용되어 왔으며 통풍이 잘되고 아주 시원한 소재이기에 인기가 높다. 비단 같은 광택이 있으며 내구도가 높고 삼베보다는 훨씬 더 고운 짜임새로 여름철 최고의 옷감이다. 모시의 제작 과정은 먼저 재배와 수확부터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 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모시표백 등 이렇게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흰 모시가 되는데 위 여러 과정에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을게 없지만 특히 최상품의 고운 모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모시삼기 과정에서 실의 균일도라 할 수 있겠다. 모시의 고운 정도를 새라 하는데 보통 7새에서 15새까지 제작되었는데 지금은 12새가 특 상품으로 제직되고 있다. 여기서 1새라 하면 30cm 포폭에 80올의 날실로 짠 것을 말한다.

모시를 짤 때 날씨가 건조하면 실이 끊어질 우려가 높기 때문에 10새 이상의 고급 모시를 짤 때면 모시움집에서 습도를 조절하면서 짜야한다. 예전에는 모시를 짰다라고 하지 않고 ‘낳다’라는 표현을 했다. 그만큼 모시라는 천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과 노력이 엄청나기에 이를 아이 낳는 것만큼 힘들었다 해서 그렇게 표현했다. 잘 짜여진 모시는 비단 못지않았고 그 얇기가 매미 날개 같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그 경지까지 가기 위해 여성들의 수고가 실로 엄청 났었음을 상상 할 수 있다. 오죽하면 모시를 낳는다는 표현을 썼을까?

실제로 국내산 한산모시 가격은 꽤 비싸기도 하지만 모시로 한복 또는 다른 의상을 만들어 입는 비용도 만만치 않으며 특히 모시로 한복을 만들라 치면 바느질 하는 날의 날씨도 고려해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온 습도가 맞지 않으면 바느질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시라는 식물로 베를 짜서 옷을 지어 입었던 선조들의 지혜에 실로 감탄을 아니할 수가 없다. 모시풀은 식용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데 모시풀은 천연 알칼리성으로 카페인이 없고 우유의 48배, 시금치의 56배라는 칼슘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줄기와 뿌리에는 항산화 활성 물질과 혈액을 맑게 하여 고혈압, 고지혈에 효과가 탁월하고 피로 회복에도 좋다.

 

신경호

1963년생

1989년 서울 동명주단 운영

1998년~2013년 서울강남 예당한복 운영

2002년~2013년 에단한복 대전점 동시 운영

현재 창원 단비한복(단아한비단결) 원장

1993년부터 현재까지 웨딩박람회 160여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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