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호의, 평등의 진주정신
지방정부와 시민의 실천필요

조식 선생의 호의정신은 임술 농민항쟁과 형평운동 같은 민권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조식 선생의 호의정신은 임술 농민항쟁과 형평운동 같은 민권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 역사는 많은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억압에 의해 사대주의가 싹터왔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땐 문화 말살정책으로 우리 겨레의 전통이 뿌리째 흔들렸고,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어도 주체정신은 간곳없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모두에서 자주성을 상실했다. 또한 외래상품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오고 외채와 외국자본은 우리 경제를 잠식했다.

진주에는 다행히 주체정신의 역사가 있었다. 1592년 김시민 진주목사가 군사 3,800여명으로 왜군 20,000여명을 물리친 진주성 대첩, 의암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절한 의기(義妓) 논개, 부패와 무능의 정부를 대신해 나라를 구하려 일어선 의병정신은 그 예들이다.

남명 조식 선생은 우리 민족 정신사의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의(義)를 보고 행하지 않는 위선을 꾸짖고 진정한 선비상을 지행일치의 행동유학을 실천함으로써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국사의 난맥을 보고 죽음에 맞서 탄핵한 ‘단성소’는 선생의 이러한 신념을 행동으로 표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남명선생은 일상생활에서도 철저히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경의 정신과 지행일치라는 실천학문에 힘입어 그의 제자들이 임진왜란이라는 나라의 위기상황에서 의병을 일으켜 분연히 일어선 것은 선비가 학문에만 힘쓰는 것이 아니고 배운 학문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었다.

이런 정신이 임술 농민항쟁과 형평운동 같은 민권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조선조 후기 삼정 문란과 관리들의 가혹한 탄압, 수탈이 유독 진주 고을만 더욱 심했던 것도 아니고 백정이 진주에만 더 많이 거주한 것도 아닌데, 진주에서 민권운동이 먼저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된 것은 불의를 보고 좌시 않는 진주 사람들의 호의정신 덕분이었다고 필자는 본다.

고려 민권항쟁 및 임술 농민항쟁과 일제 강점기 형평운동은 한 결 같이 인간의 사회평등을 추구한 운동이었다. 특히 형평운동은 조선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던 백정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강조한 우리나라 최초의 반차별 인권 운동이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기본조건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형평정신에는 민족이나 이념을 제일로 내세우는 어떤 주장과 활동까지 뛰어넘는 인류의 영원한 정신인 인간 사랑이 담겨있다. 지금도 우리가 애타게 부르짖고 갈구하는 인간존중과 평등의 숭고한 정신을, 형평사를 조직하고 수행한 선조들은 앞서 지니고 실천했던 것이다. 필자는 이를 평등정신이라고 본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진주정신이란 주체·호의·평등을 바탕으로 형성된 고귀한 정신이다. 그러나 1925년 도청이 일제 침략자들의 수탈 관문이 된 부산으로 이전되고, 해방 이후 격변하는 정치적 변화 과정을 겪으면서 이 지역을 지도할 수 있는 인재들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인 부산이나 서울로 떠나면서 이 지역에 인물 공동화현상이 일어났다. 게다가 1960년대 이후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에 따라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가치관의 혼돈으로 인해 진주정신은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나 오랜 역사 속에서 이뤄온 진주정신은 쉽게 소멸되지 않을 것이며 소멸되어서도 안 된다. 아직도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고귀한 진주정신의 불씨가 남아 있을 것이니 이 불씨들을 다시 모아 영구히 불태워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광복 반세기를 지난 오늘까지도 잔존하는 외세 의존적 의식을 청산하고 호의정신으로 사회정의를 실천하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남녀 차별, 지역 차별 등 수없이 많은 차별들을 물리치는 평등정신을 되살려야 하겠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오늘 주체, 호의, 평등의 진주정신이라는 유산을 물려주신 선인들께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선 침체된 진주정신을 지방 정부가 재정립, 전승,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시민들 역시 이 진주정신을 서로 알리고 실천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극도의 이기주의를 배격하며,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진주를 만들어 수세기 동안 이어온 진주정신의 맥을 이어받아 푸른 남강 물과 같이 유유히 흐르기를 바란다.

강신웅 본지 진주역사문화찾기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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