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경남과기대 명예교수(농학박사)
김우룡 경남과기대 명예교수(농학박사)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이맘때만 되면 괜히 행복감에 젖는다. 노랗고 빨갛고, 하얗고. 형형색색 줄지은 가로수 코스모스 꽃길이 벌써부터 눈에 어른거린다.

만산을 흐드러지게 물들일 홍엽은 또 어떤가. 눈이 시리도록 맑고 청명한 하늘. 농익지 않아 더 좋은 햇과일의 풋풋한 맛은 덤으로 얻는 계절의 축복이다. 23.5도의 기울기로 밤낮없이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며 태양주위를 도는 지구가 없었다면 사계의 조화를 어떻게 맛볼 수 있을까. 자연의 신비를 주신 그분, 내가 믿는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한 마음이다.

가을이 이렇게 고맙게 느껴지는 건 지난여름 탓도 있다. 올 여름 폭염은 정말이지 혹독했다. 33도를 넘는 폭염이 무려 31.2일이나 계속되고 우리나라 역대 최고기온인 1942년 대구의 40.0도 기록을 6차례나 넘었다. 숨이 턱턱 막혀 피할 곳만 있다면 지구를 탈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폭염보다 정작 나를 더 괴롭힌 것은 건강문제였다. 이태 전 모대학병원에서 전립선암과 신장암 진단을 받은 이래 나의 24시는 암과의 전쟁이었다.

방사선 치료 뒤에 오는 고통의 공포,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하는 절망. 오죽했으면 둘만의 비밀로 하고 언론출신 동생한테 간단한 비문작성을 부탁했으랴. 이런 판에 3개월에 한번 천리 길을 오가는 수고쯤은 오히려 사치였다.

문제는 또 최근에 발생했다. 은퇴자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엘 들렀다가 암이 위로 전이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담당의는 1/3 또는 절반 정도 위 절제 수술이 필요하다고 통고했지만 보호자로 따라갔던 아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고교 절친이 근무하는 병원을 수소문했다. 인명은 재천인지 살길은 따로 있었다. 위에서 발견된 암 징후는 재검결과 레이저로 시술이 가능한 정도였다. 내친김에 2년 전 신장촬영 차트의 재판독을 의뢰했고 결과는 암이 아닌 물혹의 일종으로 확인됐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난 2년을 어둠속에 살았던 그 생고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2기 내각 구성을 위한 개각을 단행했다. 하필이면 취임 1년밖에 안 되는 황수경 통계청장이 경질 대상에 끼인 것이 화근이었다. 경질의 진실을 놓고 여야는 심한 입씨름을 했다. 야당은 현 정부의 입맛에 안 맞는 통계발표로 시쳇말로 ‘찍힌 것’ 아닌지 의심했고, 청와대나 여당은 통상적인 관례라며 일축했다. 어느 쪽 주장이 맞을지 그 답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집권세력이 통계의 유혹에 빠졌다면 그건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 통계는 국민경제의 건강상태를 재는 1차적 자료이다. 어떤 이유로든 과장되거나 조작돼서는 안 된다. “아무 문제없다. 모든 게 정상이다.” 20년전 최고 통치자에게 잘못된 입력하나로 우리는 IMF를 뼈저리게 겪었던 국민이 아닌가. 중국정부의 경제정책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지방에서 올려오는 엉터리 통계 때문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질직전 황수경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분배, 고용은 거의 쇼크 상태다. 양극화는 더 심화됐고 고용은 바닥을 기었다. 일자리예산 54조를 들인 성적표다. 이명박 정부의 22조 4대강사업을 낭비예산의 대표적인 적폐로 몰아세우는 문재인 정부다. 현 집권층은 “시간을 더 달라” 변명이고 대통령은 “경제가 제대로 가고 있다”고 한술 더 떴다.

이러다가 우리 경제가 정말 갈 데까지 가서 터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커지는 경고음에도 1만 원대 최저임금, 소득주도 성장론을 신주단지처럼 떠받들며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의 귀는 제대로 열려있는 것인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현대판 우화가 벌어지고 있다면 그 생고생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김우룡 경남과기대 명예교수(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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