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남사예담촌 나들이. 사진=정승민제공.
가족과 함께 남사예담촌 나들이. 사진=정승민제공.

 

내가 귀농한 후에 맞이하는 두 번째 추석이다. 추석의 사전적 의미는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 음력 팔월 보름날이다. 신라의 가배(嘉俳)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낸다”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나에게 추석의 의미는 ‘기쁨, 나눔, 즐거움, 행복’이다.

 

고구마 수확 중인 정승민 대표. “귀농하기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보람찬 일이 생겼다. 내가 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재료로 명절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사진=정승민제공.

 

 

 

 

귀농하기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보람찬 일이 생겼다. 내가 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재료로 명절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내가 심고, 키우고, 수확하여, 그것을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그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드리고 가족, 친지,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텃밭엔 우리 가족이 먹기 위해 심었던 것도 있고, 추석에 써야겠다 생각하고 심은 것도 있다. 시장에 나가보면 흔한 재료이지만, 내가 직접 재배하고 수확한 그 자체로 하나하나가 귀하고 소중한 재료가 된다.

나는 우리 집 텃밭에 심었던 고구마 몇 포기를 캐내고 가지를 땄다. 어머니는 나물을 무치기 위해 심어놓았던 어린 무 잎을 뽑고 부추를 베고, 깻잎을 땄다. 이 재료들이 고구마전, 가지전, 부추전, 깻잎전, 가지나물, 푸른나물이 되었다. 외할머니 집 마당에 있는 단감나무에서 감을 따왔고 친척할머니는 알밤을, 이웃어르신은 대추를 주셨다. 또 필요한 재료나 과일은 주변 농가에서 구할 수 있어 더욱 좋다. 나도 차례 상에 올릴 바나나를 인근에서 바나나를 재배하는 친한 형님 농장에서 구했다. 정말 추석이란 명절은 풍요롭다는 것을 시골에 와서야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 넘치는 것을 주변의 이웃과 나누는 아주 기분 좋은 날이다.

친척들이나 지인들께 추석인사를 다닐 때도 내가 재배한 농산물이나 그것을 재료로 만든 것을 선물로 가지고 다닌다. 선물을 받으시는 분들이 흡족해 하시고, 내가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걱정과 응원을 해주신다. 내가 드리는 선물이라고 해봐야 직접 재배한 양파로 짠 양파즙이나, 끝물 청양고추로 담근 장아찌, 마당에 석류로 만든 석류청, 수확한 참깨로 짠 참기름 등이다. 주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거나, 별 볼일 없는 재료를 가지고 잠깐 시간을 내서 만든 것들이다. 내가 드리는 선물이 그리 비싸고 좋은 것이 아닌데도 흡족해 하시며 고맙다고 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다. 아마도 선물을 하기 위해 쏟아 부은 정성을 생각해주신 듯하다.

명절의 또 하나 기쁨은 가족들과의 만남이다. 누나네도 추석이 지나고 집에 왔다. 요즘 시골은 일이 바쁜지라 누나네도 기꺼이 일을 하려고 나섰다. 여섯 살배기 조카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늘 쪽 분리 작업에 투입됐다. 일을 도와주는 것이라기보단 약간의 참여의식과 장난이 섞여있지만 진심으로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예뻐서 옆에 두고 이야기하며 함께 일했다. 일을 하다 누나가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칼국수를 맛있게 잘하는 식당으로 갔다. 칼국수를 먹으며 누나가 나온 김에 남사예담촌에서 잠깐 걷자고 해서 함께 한옥마을 구경을 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조카랑 장난치며 뛰어도 놀고, 대나무밭에 평상이 있는 한적한 찻집에서 차도 마시며 오랜만에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다. 이번 추석이 되어서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말이 왜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

마늘 쪽 분리 작업 중인 할머니와 조카. 사진=정승민제공.
마늘 쪽 분리 작업 중인 할머니와 조카. 사진=정승민제공.

 

귀농을 하기 전에는 추석이 이렇게 풍요롭고 행복한 날인줄 생각도 못했다.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 내려오면 지루하고 따분해서 대구 고등학교 동창들과 놀다 집에 들어왔고, 추석이 지나면 연휴가 끝나기 전 내가 살았던 경주로 돌아가기 바빴다. 달력의 빨간 날은 쉬는 날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지금 느끼고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경험할 수 없었고, 귀찮음과 피곤만이 나를 한쪽 구석으로 내몰고 있었다. 빨간 날은 쉬는 날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골살이가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지만, 때론 그 빡빡한 틈에도 여유를 줘 삶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준다. 시골이라는 곳이 옆에서 보면 단단하고 견고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 들어와 보면 그 단단하고 견고한 사이로 여유라는 틈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이런 소소한 행복함을 느끼고 싶다면 대한민국이 들썩이는 명절날 가족이나 친척, 지인이 있는 시골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로 말동무 하면서 일손도 도우며 추석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감정을 만들어보기를 권한다.

정승민 곰내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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