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논개, 정은출판 표지 그림
소설 논개, 정은출판 표지 그림

 

이날도 논개의 관심은 개에게만 있었다. 햇살이 하늘 꼭대기에 솟구친 정오쯤이었다. 동추마당 귀퉁이에서 점백이 할매네의 다섯 살짜리 손자가 노란 똥을 쌌다. 그러자 어디서부터인지 누렁이 두 마리가 달려왔다. 점백이 할매는 다가온 개들을 소리를 쳐서 쫓았다.

“저리 가라. 니놈들 묵을 꺼 아이다. 우리 껌둥이 먹을 끼다. 껌둥아, 워리, 워리, 껌둥아, 이리 오사 똥 무라.”

점백이 할매는 얼굴을 돌려 검둥이를 소리쳐 부르면서 동시에 마당 가장자리의 풀잎을 뜯어 손자의 항문을 닦아 준다. 누렁이들은 달아나지 않고 김이 오르는 노란 똥에만 눈을 박고 계속 할매 근처에서 머뭇 것렸다.

“껌둥아, 껌둥아. 이놈이 오데로 싸돌아다니노. 논개야, 우리 집에 가서 껌둥이 좀 데불고 오이라.”

구경하고 서 있는 논개를 향해 점백이 할매가 심부름을 시켰다.

“할매, 껌둥이는 지만 보모 도망간다 아입니꺼. 고마 오늘은 누렁이들 주이소예.”

“니가 을매나 싸납게 굴었으모 우리 껌둥이가 니만 보모 도망을 치노? 껌둥이가 몬 묵으모 거름하거러 집으로 가져가야제.”

점백이 할매는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똥을 집으로 가져갈 방법이 없는지, 주위에서 계속 눈치를 살피며 빙빙 돌고 있는 누렁이들에게 “처묵어라.” 하고는 자리를 피해 주었다. 누렁이 두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손자의 노란 똥을 먹어 치워 버렸다. 두 마리 중 덩치가 크고 날쌘 막딸이네 누렁이가 거의 다 먹다시피 했다. 다른 한 마리는 빈 땅바닥을 핥거나 연신 혓바닥을 내두르며 제대로 먹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사실 들길이나 동네 마당이나 고샅길에는 어쩌다가 아이들이 배설하는 것 말고는 인분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거름이 귀하다 보니 어른들은 아무리 볼일이 급해도 자기 집 통싯간까지는 참고 가서 배설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배곯은 개들은, 특히 아이들 똥은 맛이 유별난지 환장을 하듯 밝혔다.

“똥도 똥 나름인 기라. 내 똥골똥골한 풀똥은 아마 소태만큼 쑤불 끼라. 히히. 거름도 안 될 끼라, 히히.”

논개는 속으로 키들거리면서 동추마당을 벗어났다. 섭냄이가 촐랑거리며 논개를 찾아 나올 때가 되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어저께 해 저물도록 놀다 들어가서 오늘은 단단히 붙잡힌 것이라 생각했다. 논개는 장골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선학산 골짜기의 외딴 집에 사는 처녀 백치와 그 집 흰둥이들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녀 백치의 집을 사람들은 백정이 집이라고 불렀다. 삼십 대 후반의 도부라는 홀아비가 백정 노릇을 하며 바보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 달이 젖먹이일 때 어미가 등짐장수와 배가 맞아 도망쳐 버렸고, 도부 백정이는 고기 국물과 미음과 개 젖으로 딸을 키우면서 이를 갈았었다. 그러나 외딸이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데다가 정신까지 박약한 백치임을 알고는 밤마다 술에 취해 아기를 안고 꺼이꺼이 울어 대서, 사람들은 그들 부녀를 동네에서 내쫏아야 한다고 수군들 댔다. 그러나 소나 돼지를 잡는 백정으로 동네의 괄시를 통째로 받는 천민이지만, 그도 사람인데 여자 도망가고 자식은 병신으로 한이 많아 그런 것이니 그냥 살게 내버려 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이후로 그들 부녀는 스무 해가 가깝도록 외진 골짜기 그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그 집에는 언제나 개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어떤 때는 누렁이도 키우고 검둥이도 키우다가 이즈음에는 흰둥이 두 마리가 열아홉 살이나 먹은 백치 딸과 온종일 함께 놀았다. 딸이 나이를 먹은 후부터 도부 백정이는 선학산 고개를 넘어 진주목으로 들어가 백정질을 했다. 동네에 경조사가 있어 짐승을 잡을 일이 생기면 도맡아 하면서도 평소에는 거의 진주에서 일을 했다. 몇 해 전만 해도 새벽에 집을 나가 해질녘에는 돌아오곤 했는데 딸이 커서 제 밥을 챙겨 먹으면서부터 그는 이틀 만에, 늦으면 닷새 만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백치 딸은 스스로 머리를 빗을 줄도 옷을 입을 줄도 밥을 지어 먹을 줄도 몰랐다. 그러나 애비가 솥에다 고기 뼈를 넣은 보리죽을 한 솥 가득 끊여 놓고 가면 딸은 그것을 퍼먹으며 혼자 놀았다.

논개는 가끔 골짜기 막바지의 그 외딴 오두막집을 찾아가곤 했다. 그 집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마음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방 한 칸에 정짓간 하나뿐인 작은 초가집의 마당에는 언제나 잡초가 무성했다. 집 뒤로는 사철 푸른 대나무와 밤색 돈짝나무들이 윤기를 뿜으며 반들거리고, 집 옆으로는 늙은 소태나무 밑에 옹달샘 하나가 바가지를 동동 띄우고 있었다. 백치 딸은 따뜻한 날이면 방문 아래의 흙바닥에 퍼질러 앉아 방 벽 황토 흙을 손톱으로 긁어 먹으면서 히죽이죽 웃곤 했다. 머리는 감거나 빗지 않아서 봉두난발을 하고, 얼굴과 목과 손등은 검은 때 범벅이 되어 딱지가 앉아 있었다. 눈동자는 늘 풀려 있고, 얼굴이 땟자국에 절어 검어서인지 두툼한 입술이 유난히 붉어 보였다. 새까만 머릿니가 목덜미께를 기어 내리기도 했다. 난전에도 없는 상거지의 행색이었다. 그러나 꼭 찬 나이 탓인지 누더기 같은 옷 위로 그래도 젖가슴이 불룩하고 몸月經이라도 하는 날은 퍼질러 앉은 흙바닥이 검붉게 물들어 있곤 했다.

지난해 여름이었다.

백치 집에 들렀던 논개는 기함을 할 정도로 놀란 적이 있었다. 논개는 백치 처녀의 하체가 온통 피투성이인 데다가 일어나 어기적거리며 걷는 종아리로 피가 지렁이처럼 흘러내리는 걸 보고서 동네로 허겁지겁 뛰어 내려가 백치가 죽을 모양이라고 떠벌렸다. 그러나 점백이 할매와 막딸이 오매가 와서 보고는, “쯔쯔, 지 밑구멍 하나 못 막는 저런빙신. 기냥 죽제. 저런 것도 생밍이라고 살아서 지 애비 골만 파묵고, 쯔쯔.” 하며 그냥 돌아서 가 버렸다. 막딸이 오매도 백치가 병든 것이 아니라 몸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땅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그러곤 논개더러 “부정 탈라꼬 이런 집에 들락거리나?” 하면서 눈을 흘겼다.

그때 논개는, 어른들이 백치 처녀에게 서답(무명으로 접어서 만든 월경대)을 차게 해 준다든가 피묻은 옷을 벗게 해 준다든가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 주지 않고, 그냥 침을 뱉거나 빨리 죽지 않는다고 저주를 하며 돌아가는 걸 모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백치 처녀가 한량없이 불쌍했던 것이다. 하지만 피투성이 백치 처녀에게 다가가는 데는 두려움도 없지 않아 논개도 마당가에서 구경만 하다가 돌아섰었다. 이후로도 논개는 곧잘 그 집을 찾았지만 가을, 겨울로 접어들면서 방문 밖에서 노는 백치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고 마당에는 흰둥이들만 놀고 있었다. 올봄 들어서는 들판 산판을 휘돌아치느라 그 집을 거의 찾지 못했었다.

백치 집으로 오르는 길은 외졌다. 강 진사 댁 기와집을 중심으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 초가집 동네에서 벗어나 선학산 골짜기 쪽으로 한참이나 올라가야 그 오두막이 있었다.

“백정이는 짐승을 때리잡는 사람인께, 개를 우찌 잡는지, 흰둥이들도 잡을 개인지, 백정이 아재 있으면 한번 물어보고•••.”

논개는 이날따라 자기가 백치 집을 찾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입 속으로 뇌까려 보며 타박타박 골짜기 쪽으로 걸어 올랐다.

“어쿠마!”

논개는 반사적으로 오른쪽 다리를 번쩍 들며 깸짝을 뛰었다. 오른쪽 발밑으로 늘무리 한 마리가 휘익 배를 깔고 미끄러져 지나갔기 때문이다. 논개는 돌을 집어 들고 풀숲으로 사라진 늘무리의 흔적을 찾다가 그냥 돌을 버린다.

“오냐, 날이 뜨신께 인자 땅굴에서 밖으로 나왔다 이거제. 가마이 있거라. 내일쯤에 음산 못池

가로 가서 니놈들 때리잡아 줄 낀께. 맞다! 니놈들 잡아 푹 삶아서 우리 오매 조야겄다!“

논개는 손뼉을 탁 쳤다.

다음호에 계속..... .

소설가 김지연
소설가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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