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 풍습 퇴색 점점 더 빨리 사져져 가고 있어

 

가을 축제도 거의 끝났다. 단풍 축제나 국회축제가 가을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마무리됐다. 가을걷이도 거의 마무리단계에 왔다

이때 쯤 이면 예전에는 시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올 한 해 애써 지은 오곡백과 농산물로 제수를 마련한다. 시제는 시사라고도 불린다. 시제를 올리고 나면 그야말로 올 한 해 농사가 끝나게 된다고 조상들은 믿어왔다. 음력 정월 초하루를 시작으로 시제까지 우리들의 삶과 함께 했던 풍습 또는 세시풍속의 하나였다.

시제는 본래 고조부 이상의 선조에 대한 제사로서 기제사와는 달리 재실이나 묘지 앞에서 올려왔다. 하지만 요즘 어느 문중을 보아도 묘지를 찾아가서 시제를 올리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진주와 서부경남지역에서는 음력으로 10월 초하루부터 통상 시제가 시작된다. 명망이 높거나 대수가 높은 조상에게 시제를 올린 뒤 아래로 소종중으로 옮겨가면서 시제를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마을 뒷산 여기저기에서 시제 지내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시제를 마치고 나면 제관들이 나눠주는 떡과 과자, 과일 조각을 얻어먹는 재미가 있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 이날처럼 즐거운 날은 없을 것이다. 오육십 대 이상 이라면 누구나 간직하는 하나의 늦가을 추억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풍습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제사 풍속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면서 시제 또한 젊은 세대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됐다. 사라져 가지만 되살릴 수 없는 세시풍속, 시제가 됐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형문화재로 영상 콘텐츠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문화의 일면이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서도 아직도 조선시대의 예법을 그대로 따라서 시제를 올리는 문중이 있다. 영일정씨 포은 정몽주 후손들이 하동군 옥종 옥산서원에서 올리는 시제의 모습은 시대감각을 무디게 할 정도로 엄숙한 모습니다.

옥산서원은 지난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 47호로 지정돼 있다. 영일씨 후예들을 포함해 전국 유림 50여명도 참석한다. 옥산서원 안에 들어가면 격식에 맞게 꾸며진 제단에 갖가지 음식들이 차려진다. 제관들은 도포를 차려입고 유건이나 갓도 갖춰 쓴다.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제례법을 철저하게 지킨다.

이날 제례 한 달 앞서 올해 시제는 누가 무엇을 준비할 건지를 논의하고 집사도 정한다. 어른들이 모여 분정회의를 미리 한다. 초헌관아 아헌, 종헌관도 미리 정해 한 달 전에 망기(望記)라는 편지형식으로 통지를 한다. 다시 말해 헌관 3명과 축관, 집례 등 오집사를 한 달 전에 결정해서 미리 준비하게 한다. 조상을 뵙기 한 달 전부터 정신을 가다듬고 몸가짐을 조신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시제 하루 전날 모든 제관과 오집사들은 서원에 입교한다. 몸을 단정히 하고 복장을 갖춘다. 준비에 소홀함이 없는 지 성복회의를 통해 마지막 점검도 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인 유사는 영일 정씨 본손이 맡는다.

제물을 차리는 기준도 특이하다. 날것을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삶거나 불에 익히지 않는다. 사람이 먹는 것과 조상이 먹는 것은 같아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옥산서원의 경우 한해 시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통상 20여명의집사가 업무 분담을 해서 여러 날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시제는 당일 아침 6시나 7시 정시에 봉행한다. 사람들이 활동을 시작하기 이전에 조상님께 시제를 올린다는 의미이다. 우리 일상생활은 물론 일반 가정에서 올리는 기제사와도 다른 점이 많다.

영일 정씨 옥사서원 종회장 정택교 씨는 “인본주의에 바탕한 시제문화는 살아 있는 부모를 섬기 듯 선조도 단 하루만이라도 시제를 통해 효를 다하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산업산회가 되면서 물질을 쫓는 세대들이 많아져 충효정신이 퇴색되고 있어서 안타깝다”며 “사라져 가지만 되살려 이어가는 것도 괜찮은 세시풍속이며 문화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반문하셨다.

하동군 북천면 화정리 양천재에서 해마다 음력 10월 둘째 주 일요일 시제를 올리는 경주 김씨 수은공파 후손인 종회장 김우택 씨도 “예전에는 시제 때 대수별로 석줄 넉줄 줄을 지어 서서 시제를 올렸지만 요즘은 제관이 줄어들어 시제가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한다.

“특히 근래 10여 년 전부터는 제관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제수 준비며 제실 관리 등 전통풍습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러한 시제 풍습이 언제까지, 얼마나 더 이어질 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시제는 한 때 한해를 마무리하는 주요한 세시풍속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산업화와 그에 따른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시제는 없어져야 하는, 없애야 하는 귀찮은(?) 행사라고 생각하는 젊은 층이 없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라져 가지만 되살릴 수 없는 시제 품습, 우리 모두의 세시풍속이요 문화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우리 곁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져 가는 전통문화로만 명맥을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회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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