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진주문화원 감사 하한수
전. 진주문화원 감사 하한수

 

우리나라에 볼룸댄스가 들어온 것은 구한말 고종 때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에 의해서였다고 전해지며, 1920년대 일본과 소련에서 돌아온 유학생들이 종로의 황성 기독 청년회(현 YMCA)에서 시범을 보인 것이 그 시초였다.

서양의 트로트, 지터벅은 도롯도,지르박 이라고 발음하는 일본을 통하여 해방 후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그대로 사용되어 왔다.

댄스의 역사에 의하면.1960년대 이후 위정자들의 무지로 교습이 금지된 볼룸댄스는 자연히 지하로 스며들고 비정상적으로 변형되어서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춤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춤을 배워 간 당시의 외교관들은 외교와 사교생활에 큰 지장을 받았다.

댄스 스포츠로서 볼룸 댄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람들과의 사교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며 운동량이 높아 개인의 건강에도 좋아 이웃 일본은 1860년대에 이미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여 서양춤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즉, 일본은 왈츠와 폴카와 같은 춤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생활 방식과 문화 방식을 도입하게 되었다.

일본 고유의 고전 춤만으로는 새로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현재는 일본도 일본댄스연합회와 같은 단체를 조직하여 일원화함과 동시에 댄스 교사 자격을 국가검정으로 하고, 댄스 교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도 통일하는 등 새로운 문화정책을 수립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0년경에 이하영씨가 미국공사 재임시 보스톤 왈츠라는 멋진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고, 귀국 후에도 서울 종로에 있는 손탁호텔에서 샴페인을 들며 사교춤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춤에 대한 전문 교사는 없고 쇼단의 안무가였던 윤은석씨가 일본에 자주 왕래하며 춤을 배우고, 영국왕실무도교육협회에서 발간한 "Book Dance"라는 책으로 독학을 했다고 한다. 일본이 서양문명을 일찍 수입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볼룸 댄스 수입에 있어서도 그 진도가 매우 느렸던 것이 사실이다. 해방이 되어 미국 군인들의 영향을 받아 서양춤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나, 그래도 자유당시대를 거치면서 고위장성급 모임에서는 사교 댄스 파티가 건전하게 부부 동반으로 행해졌다.

그러던 중 일부 선각자들 중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나타내는 서양풍의 사교 댄스를 문화인답게 배워 하나의 여가 선용을 위한 스포츠로서 배워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고 김종기씨가 체육인으로써 영국에 유학한 경력과 또 많은 국제 모임이나 세미나에 참석한 경험을 가지고 1970년에 한국무도교육협회를 설립하였다.

우리나라의 첫 전국 무도선수권대회는 1959년 장충체육관에서 한국일보 주최로 열렸으며, 특히 우리나라는 1988 Olympic Youth Camp에서 주최국으로써 댄스 스포츠의 경연대회를 개회하는 등의 업적을 갖게 되었다.

서울 올림픽 기념 국제 댄스 스포츠 경기대회 직후의 무도학원 양성화 노력과 1990년 체육시설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계기로 국내 무도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무도인들은 무도학원과 무도장을 법적으로 체육시설에 포함시키기 위한 여러 면에서 노력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실패로 끝나자 관계 당국과 그 당시 유일한 허가단체였던 사단법인 한국무도교육협회에 대한 불만이 크게 고조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무도인들은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 댄스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으며, 그 결과 KASDC는 1996년 IDSF 제3회 아시아태평양지역 무도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아시아 댄스 스포츠연맹의 창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댄스스포츠가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교육적가치를 인정받아 대학에서 교양체육과 레크리에이션 교과목으로 학습되고 있다.

1998년 제13회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댄스스포츠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는 1974년에 국제무도연맹(I.D.S.F.)에, 1976년 세계무도협의회(W.D.D.S.C.)에 가입한 이래, 각종 국제경기대회에도 선수를 파견하고 있다.

댄스 스포츠 종류를 보면. 미국스타일 사교댄스인 아메리칸댄스와 영국스타일의 경기댄스가 있으며, 경기댄스를 댄스 스포츠라고 하며, 댄스 스포츠는 일반 사교댄스와는 달리 많은 운동량과 고도의 수련을 필요로 하고 있다.

볼룸댄스라는 용어는 1924년 영국무도교사협회가 볼룸댄스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월츠 탱고·퀵스텝 폭스트롯·비엔너월츠 등 5개 종목의 도형과 기법을 정리하여 스탠다드 볼룸댄스의 개정기법을 발표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ISTD는 뒤이어 1974년 룸바, 차차차, 삼바, 파소도블레·자이브 등 5개 종목을 정리하여 라틴아메리카댄스의 개정기법을 발표하였으며, 그에 따라 국제선수권대회의 경기종목은 스탠더드댄스 부문 5개 종목과 라틴아메리카댄스 부문 5개 종목으로 통일되었다.

그 후 독일에 본부를 둔 국제아마추어단체인 국제댄스스포츠연맹과 영국에 본부를 둔 세계·댄스스포츠평의회가 1987년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 가입을 추진하면서 볼룸댄스보다는 댄스스포츠라는 용어가 더욱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회원국들에게 사용을 권장하면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95년 IOC로부터 경기종목으로 잠정 승인을 받았고 1997년에 IDSF가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였다. 2005년 동아시안게임과 아시아 인도어 경기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경기를 치루었으며 2010년 제16회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또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도 채택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무도교습소가 전국적으로 있으며 당국에 신고하여 허가를 받은 콜라택의 무도연습장에서 체육운동으로 많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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