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출생진주여고·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1968년 ‘현대문학’ 소설 추천 완료
진주출생진주여고·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1968년 ‘현대문학’ 소설 추천 완료

 

초전 고을로 가는 길목에 야트막한 음산(陰山)이 있고 그 산의 오솔길에 뱀이 유난히 많이 기어 나왔다. 사람들은 그 산 밑의 못에 물을 먹기 위해 뱀들이 기어 나온다고도 하고 햇살이 따스해서 몸을 덥히러 나온다고도 했다. 이유야 어떻든 겨울잠 속에서 깨어나 길바닥으로 기어 나오는 뱀들은 잽싸지 못하고 비실거렸고, 아이들은 돌을 집어 그 뱀을 겨냥하여 죽이곤 했다. 논개도 재작년과 작년에 연이어 이맘때에 그곳에서 뱀을 여러 마리 때려죽인 적이 있었다. 꼴망태에 죽인 뱀을 담아 가서 푹 삶아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뱀을 먹으면 부정을 타고 다른 약들의 약발이 서지 않는다 하여 먹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남이사 머라 쌌든 말든 배미도 고기니께 우리 옴마한테는 약이 될끼란 말씸이야!”

논개가 뱀 생각으로 골몰하여 걷는 동안 오느새 백치 집이 눈앞에 다가왔다. 버려진 폐가처럼 적막한 골짜기 막다른 곳에 오두막집이 엎드려 있었다. 흙담도 울타리도 없는 토담집이었지만 들어가는 입구 쪽의 둔덕에 살구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잎을 달고 있고, 옹달샘가의 앵두나무에도 흰 꽃이 만개했다. 집 뒤란의 대나무 숲도 이날따라 윤기가 자르르 흘러 보이고, 썩은 이엉의 초가지붕 위로도 연초록 풀이 솟아 있는가 하면, 마당에도 잡초의 새싹들이 푸릇푸릇 돋아 있었다.

“에구.”

마당으로 눈을 돌리던 논개는 턱을 안으로 당기며 짧은 신음을 뱉었다. 흰둥이 한 마리와 순검이네 검둥이가 엉덩이를 붙이고 흘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개는 왠지 부끄럽고 남사스러워서 일단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개들을 쏘아보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려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두 놈 엉덩이를 떼어 놓아야 할 것 같아서다. 그라나 개들 상(交尾)할 때 때리면 앙물(보복)한다던 점백이 할매의 말이 떠올라서 막대기를 치켜들고도 가까이 가지를 못한다. 개들이 막대기를 처든 논개를 흘끔흘끔 훔쳐보며 엉덩이를 붙인 채 비실비실 옆걸음질을 쳤다. 논개는 피식 입귀를 버그러뜨리면서 막대기를 던져 버렸다.

그런데, 백치 처녀가 보이지 않았다. 방문 앞 댓돌 옆에도 마당에도 옹달샘 가에도 방에도 처녀는 없었다.

“똥 싸러 갔나, 산에 꽁알 줏으로 갔나?”

논개가 중얼거리며 뒷간이 있는 쪽과 산 쪽으로 눈을 돌려 보았다. 도부 백정이도 보이지 않았다. 일터인 진주에서 며칠째 묵고 있는지도 몰랐다. 도부 백정이가 있으면 논개는 무작정하고 “우리 오매 살리거러 개 한 마리만 잡아 주이소.” 하고 간곡히 부탁해 볼 생각을 했었지만, 실제 논개는 도부 백정의 얼굴도 잘 알지 못한는 형편이었다.

논개는 옹달샘으로 가서 물 한 바가지를 떠 마셨다. 그리고 돌아서 다가 벽 밑 양지쪽에 퍼질러 앉아 있는 백치 처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누더긴지 저고린지 구별할 수 없는 걸레 같은 윗옷을 벗어 무릎 위에 펼쳐 놓고 이를 잡고 있었다.

논개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벌려 떳다. 백치 처녀가 이를 잡아먹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녀의 몸이 너무나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백치 처녀의 복부가 불룩 솟구쳐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이를 잡느라고 윗옷을 벗고 있었기 때문에 새까만 젖꼭지를 곤두세운 두 개의 커다란 사발젖이 햇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논개는 벌린 입과 눈을 시종 닫지 못하고 백치 처녀 가까이로 다가갔다. 논개가 그녀 앞으로 바싹 다가서자 이 잡던 저고리에 그늘이 지면서, 백치 처녀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백치가 마주 서 있는 논개를 쳐다보며 히죽이 웃었다.

“니, 아 뱄나?”

논개가 손으로 쳐녀의 배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벙어리에다 귀머거리인 백치 처녀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만 논개가 배를 가리키자 그녀는 시커먼 손으로 자기 배를 쓸어 보며 또 히죽 웃었다. 논개는 심장이 할랑할랑 뛰어서 어떤 말도 더 할 수가 없었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리 백치라도 처녀가 아기를 뱄으니 동네에서 내쫓길 것이고, 그러면 백치와 아기는 어찌될 것인가 싶었다. 논개는 작년 여름 백치 처녀의 하체가 피투성이로 몸(月經)을 했을 때처럼 동네로 뛰어 내려가 어른들에게 알려야 할 것인지 판단이서지 않았다. 콩콩 뛰는 심장으로는 누구에게든 이 예사롭지 않은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았으나, 백치 처녀에게 결코 이롭지 않을 것 같아 머뭇거렸다.

“우째야 되노?”

그녀의 잉태를 숨겨 주어야 할 것 같은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논개는 백치에게 저고리를 입고 방으로 들어가 사람들 눈에 띄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연신 히죽거리기만 했다. 여전히 옷에서 이를 잡아내어 입 안으로 쓸어 넣으면서, 논개는 두 팔과 고갯짓으로 이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시늉을 했지만 그녀는 쉼 없이 웃기만 했다.

“하긴 사람 피 빨아 묵고 사는 이니께, 묵어도 죽지는 않겄제. 나도 모리겄다마.”

논개는 투덜거리며 백치 앞을 물러섰다. 마당에는 개들이 여전히 엉덩이를 붙인 채 논개의 얼굴을 또다시 훔쳐보며 옆으로 비칠거렸다.

“야, 이 개놈덜아. 인자 고만 궁디 떼라.”

논개는 개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째지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백치 집을 벗어났다. 자기가 무엇 때문에 그 집을 찾아갔는지 이유 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알았더라도 도부 백정이가 집에 없으니 소용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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