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높고 성은 견고하여 뚫을 수도 없고 넘을 수도 없었다!

저자 박선호
저자 박선호

 

중간목표인 황석산성을 앞에 두고 있는 거창에 진출한 모리데루모도의 우군은 8월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거창의 북쪽 웅양의 적하산성, 거열산성 등을 비롯한 거창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7월25일 부산을 출발한지 20여 일만에 모리데루모도의 우군은 8월 14일 중간목표인 황석성이 있는 안음현에 도착을 했다. 우군의 선봉인 가도오가 거창에서 남상면 오계리를 거쳐 안음현의 동쪽인 관술령 고개를 넘어 관동마을과 숫골, 황곡을 경유하여 모두 황석산성으로 입성하고 사람하나 얼씬도 하지 않는 텅텅 빈 마을과 현재의 안의초등학교가 있는 자리에 있던 안음현청을 접수하였다. 가도오의 후미를 따르던 구로다 부대는 거침없이 함양으로 진출하여 황석산성 공격을 하기 전 주변을 평정하기 위하여 함양과 운봉까지 유린을 하고 피난을 가지 못한 노약자 23명의 코를 베었다고 코베기보고서를 내었는데 이 보고서가 정유전쟁에서 보고하는 일본군의 첫 번째 공식적인 코베기보고서다.

14일 오전 안음현에 도착한 일본군은 안음현청을 중심으로 주둔지를 편성하고 황석산성을 공격하기 위한 정찰을 실시했다. 모리데루모도 대장이하 조오소가베 모도지가, 가도오 기요마사, 나베시마나오시게 등이 정찰을 실시한 결과 「황석산성을 일주하여 보니 산은 높고 성은 견고하여 뚫을 수도 없었고 넘을 수도 없었다. 7만의 일본군은 황석산성을 완전히 포위를 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라고 나베시마가문의 기록에 남아있다.

황석산성은 가야시대부터 있었던 성으로 백제와 신라, 고려 때 사용하고 그 이후는 방치되었던 성이다. 둘레가 2.9km 높이 1,192m이다. 둘레가 2.9km라고 하니 다른 일반성과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산성의 둘레가 고도 800m 이상인 산의 8부 능선에서 시작되는 성벽의 능선을 따라서 계산을 했기 때문에 2.9km인 것이지 해발고도 300정도의 개울바닥에서 계산을 한다면 황석산성의 규모는 웅장하고 엄청난 큰 산으로 7만의 병력이 아니라 10만 명이 들어가도 숨을 수 있는 산이다. 성의 중앙 바위아래에서 솟는 샘물은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저수지에 저장을 한다면 그런대로 식수공급이 가능하다. 주변에는 동쪽으로 금원산(1352m), 기백산(1331m), 북쪽으로는 거망산(1184m)과 덕유산(1614m), 서쪽으로는 계곡을 건너서 백운산(1278m), 남쪽으로는골무산과 거창의 감악산(945m). 그리고 멀리 지리산 천황봉(1915m)을 볼 수 있는 등 고도 1,000m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산성으로 전국의 100대 명산이고 천인지(天人地) 삼신을 주관하시는 옥황상제님이 내리신다는 민족의 성산(聖山)이다.

황석산성의 지세는 동서남북이 모두 가파른 급경사며 동문에서 북문정산까지는 화강암 절벽이 거의 90도에 이르고 남문지역은 거의 500여m에 이르는 높이 3m의 성벽의 쌓여있으며 전면에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덩어리가 엉켜있어 기동이 불편하고 서문지역은 급경사에 싸리대나무가 엉켜 있어 산을 기어오르기도 어렵다.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바라보면 안음현을 관통하여 유유히 흐르는 금천(錦川)강이 은빛 비단처럼 흐르는 강을 중심으로 한들이 넓게 펼쳐져 백성들은 순수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들의 고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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