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세의 전 우체국장 문씨. 그는 빈농 집안 출생으로 1년제 보습학교를 나와 평생을 우체국에서 보냈다. 워낙 근면하고 성실하고 검소하고 근면한 성품인지라 꽤 재산도 모았고 8.15 광복 직후 읍내 우체국장을 지내다가 초년에 근무하던 출신지 우체국을 매입하여 운영하면서 대중목욕탕도 신축해서 제법 유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 집 앞에 있는 과수원을 매입하는 것이 평소의 소망이어서 누차 매입을 시도해보았지만 매번 거절당하고 애만 태워왔다. 그런데 마침내 절호의 기회가 왔다. 평소 도박을 즐기던 과수원 주인이 심야에 아무도 모르게 찾아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애걸했다. 마침내 만약 3일내로 갚지 못하면 과수원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하는 바람에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 싶어 엉겁결에 중대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계약서도 차용증도 미쳐 작성하지 않고 돈만 건네줘 버렸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려도 5일 동안 감감 무소식이던 과수원 주인이 저수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으니 기가 막혔다. 밤중에 있었던 단 둘만이 아는 일이라 속절없이 떼일 수밖에 없었고, 상대방 가족들로부터는 도리어 혹독한 원망만 살 수밖에 없었으니 극도로 마음이 상했고 그 와중에 간에 암이 생겼다. 필자의 이종사촌이어서 소식을 듣고 문병 차 달려갔을 때는 이미 의식마저 희미해서 대화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조언도 못했고 1주일 후에 사망하고 말았다.

간암 발생사례(2)

종로 3가 고영빌딩에 있는 연구소로 뜻밖의 손님 두 사람이 찾아 왔었다. 전라북도 군산에서 일부러 찾아 왔다고 했다. 당시 격일로 실시하던 명심의학 공개강의를 듣고 돌아가던 한 호남열차 승객으로부터 강의내용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그들 중 중년 남자는 아들의 정신병 때문에 왔었고 또 한 중년 여성은 간암으로 다 죽게 된 친구를 살려 보려고 열일을 다 제쳐두고 왔다고 했다. 세상에 흔치않은 우정이었다.

그 부인에게 혹 그 환자가 금전이나 재산문제로 고민하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간암하고 재산문제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의아해하면서도 그런 일이 있는 것 같더라는 대답이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 환자의 사연은 간단했다. 친구와 동업으로 주택 건축업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사고로 사망하였는데 생전에 남편으로부터 주택을 짓기 위해 땅을 매입한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동업이니까 의례히 공동으로 매입한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동업자의 말이 매입한 땅과 사망한 남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로 사망한 남편의 동업자와의 사이에서 분쟁이 야기되었고 그 와중에 마음이 몹시 상했었고, 마침내 간암이 생겼다는 사연이었다. 이 환자역시 손재를 막으려는 문제로 마음이 몹시 상하고 신경이 과도하게 쓰여서 간암이 생겼었다.

간암 자연치유 사례(1)

평소 건강하던 50대 중반의 부동산중개인 이씨. 그가 간암으로 2개월 밖에 살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진 것은 1990년. 식사를 전혀 못할 정도로 중증 이었고 본인은 생을 체념한 상태였다. 그런데 수개월 후 사망한 줄로만 여겼던 그 환자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그전보다도 훨씬 더 건강한 모습이었다.

필자가 문병 차 방문했을 때 ‘혹시 마음 상하는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일이 있습니다. 부모 잃은 장조카란 놈을 젖먹이 때부터 길러서 대학까지 나오게 했는데도 이놈이 배은망덕을 하는 바람에 무척 속이 상했습니다“라는 대답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발병 원인이 재산손실을 막으려는 문제로 인해 상심이 컸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은 물을 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병리 연구를 시작한 초기였음으로 그가 생존한 이유가 짐작은 되면서도 내심 궁금했다.

이 환자의 대담 내용을 대충 소개하면-

“도대체 무엇을 먹고 암이 낫게 되었나요.” 하고 물었다.

“먹기는 뭘 먹어요. 아무 것도 먹지를 못했는데 딱 한 가지 먹은 게 있습니다. 머리맡에 김이 있기에 조금씩 뜯어먹어보니까 이게 먹히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을 야금야금 먹었는데 심지어 문병객들이 김을 사가지고 올 정도로 먹혔어요”

“아하... 김을 먹고 나은 게로군요” 하고 농을 걸었다.

“김을 먹고 간암이 낫는다면 누가 간암으로 고생 하겠습니까”

그의 대답으로 보아, 본인도 어째서 낫게 되었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필자는 그의 간암이 왜 낫게 되었는지 감이 잡혔지만 확인해 볼 필요를 느꼈다.

“내가 문병 갔을 적에 장조카 때문에 마음이 상했었다고 했는데, 이젠 병도 나았으니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의외로 서슴없이 털어놨다.

사연인즉, 장조카가 출생하기도 전에 그이 부친이 사망하고 모친은 채 젖이 떨어지기도 전에 개가함으로써 고아가 돼버렸다. 할 수 없이 이 장조카를 길러야 했고 친자식처럼 길러 대학공부까지 마쳤다. 그런데 그 조카가 사망한 자기 부친 명의로 약간의 토지(묵정밭)가 있었음을 알게 돼, 그것을 돌려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숙질간에 분쟁이 일어나고 배은망덕한 조카의 행위에 마음이 몹시 상했었다는 애기였다.

이 사연을 듣고 내심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그래서 그 묵정밭을 어떻게 했나요.”

“그만 줘버렸지요. 얼마 못가서 죽을 목숨인데 저승으로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내 죽은 뒤 친형제처럼 자라온 사촌끼리 정만 떨어질 것이 뻔해서 깨끗이 줘버렸지요.”

“그랬었군요. 줘버리고 나니까 마음이 어떻던가요.”짐작한 대로 그이 병이 나은 이유를 알면서도 짐짓 물어 보았다.

“줘버리고 나니까 그럴 수 없이 마음이 홀가분하고 편안했습니다. 조카도 좋아하니까 저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그의 간암이 저절로 낫게 된 것이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됐기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의 일이지만 그이 생존에서 자연치유의 원리를 확신하게 되었고, 재발 여부가 궁금해서 확인 차 간간히 전화를 해봤는데 나은지 20년이 지난 근년까지도 그는 건강했다.

간암 자연치유 사례(2)

말기 간암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50대 초반의 변호사 사무장, 필자의 삼종조카인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에 쪼들리며 성장하였기에 잘 살아보려는 의욕이 남달리 강한 사람이어서,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었다. 그런 그가 간경화증을 거쳐 간암으로 발전해서 한 달 이상 못 산다는 진단을 받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가 발병하게 된 사연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그는 수년전부터 변호사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자택 근처에 허름한 한옥을 매입하여 가난한 여러 세대에서 세를 놓고 있었다. 그 일대가 재개발을 하게 돼서 재개발 추진위원회 부위원장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세 가지 고민꺼리가 겹쳐 있었다. 직장에서는 변호사와의 사이에 사건 수임료의 배분 문제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영천일대의 재개발추진위원들끼리 이해문제로 분쟁이 끊이지 않아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세놓은 집의 세입자들이 단합해서 입주권을 주지 않으면 집을 비우지를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3중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이상 못 산다던 그가 계도(병리강의)를 받은 후 얼마 안가서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은 체념과 관용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회복하였기 때문이었다.

왜 유독 간만 재생되는가?

다른 기관이나 장기들은 제거되면 재생되지 않는데 유독 간은 원상 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자라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기관이나 장기들은 모두 근육으로 되어 있지만 간은 근육이 아닌 혈액의 집성체임으로 식사 통해 끊임없이 혈액이 조성되기 때문에 훼손된 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재상되어진다. 손톱 발톱 두발 등도 절제되면 다시 자라나고 훼손된 피부의 종기나 상처부위에서도 새살이 생겨나기 마련이지만, 이것들이 재생되는 것은 그것들의 유전자(DNA)가 그렇게 돼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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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의학 저자 김 병 항

1925년 1월 11일 경상남도 하동 출생

1979년 병리 및 심신의학 연구입문

2003년 (민)명심의학대학원 개설

2008년 특수치료사교육원 개설

2012년 건강상담학 문제해설집 완성

전주서 전문인수련 특강

암 바로알기운동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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