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민들레(12)
야생의 민들레(12)
  • 경남진주신문
  • 승인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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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다! 한번 보자!”

논개는 젖은 행주로 옹기솥 뚜껑을 열어 보았다. 뱀이 칡넝쿨에 감긴 채로 들썩들썩 끓고 있었다. 뱀은 대가리를 위로 쳐든 채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고 푸른 칡넝쿨은 너풀너풀 거무튀튀한 색깔로 삶아지고 있었다.

“히히. 죽어서 솥에 들어간 놈이, 뜨거버서 대가리를 쳐들고 아가리를 벌린 꼴을 하고 있네! 그란데, 불을 올매나 때야 이 물건이 흐믈흐믈 살이 녹아서 국물이 뽀이얗게 우러날까이?”

“모르기는 해도 나무 한 짐을 때야 살이 물러질 끼다. 그란데, 이런 비실비실 죽은 꺼부지 나무로 온제 배미 살이 녹는다 말이고?”

섭냄이가 어른처럼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순간, 논개가 섭냄이를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맞다. 배미 껍데기를 벳기모 되겄다! 찔기디찔긴 배미 껍데기는 아무리 불 때도 녹지 않을 끼다. 껍데기를 벳기고 더 삶자!”

“하이고 징그러버라. 누가 배미 껍데기를 벳기노. 배미 고옴은 껍데기를 벳기고 쌂는다 카더나?”

“그거는 모르제. 고옴하는 거를 본 적도 없고 한 번도 안 해 봤은께. 카지마는 배미 껍데기 찔긴 거는 안다. 전에 살던 데서 배미 구운 거를 묵어 봤는데 껍질이 너무 찔겨서 마른 칡줄기 같은 거라. 씹지도 몬하겄더라고. 그라자, 배미 껍데기를 벳기자.”

“쌂다 말고 배미 껍데를 누가 벳기노 말이다?‘

“내가 벳기지.”

“나는 몰라. 나는 손 안 댈 끼다.”

“오야, 대지 마라. 내 혼자 다 할 낀께.”

논개는 아궁이의 불을 끄고, 뱀 묶음을 넙데데한 큰 독 뚜껑에다 건져 낸다. 김이 무럭무럭 올랐다. 섭냄이는 두세 걸음 물러서서 얼굴을 찡그린 채로 그러나 눈은 뱀에서 떼지 못한다. 논개는 식칼로 뱀 몸통에 감긴 칡줄을 잘라 냈다. 그런데 칡줄을 끊어 내도 뱀의 몸통은 생각처럼 길게 펴지지 않았다. 논개는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뱀의 대가리를 오른손으로 움켜잡고 위로 치키며 일어섰다. 몸통이 조금 풀리긴 했어도 일직선으로 곧게 펴지지는 않았다.

“섭냅이 니 키만 하다!”

논개가 뱀을 섭냄이 쪽으로 한 번 휘둘렀다. 섭냄이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죽은 배미 보고도 겁재는 니는, 간띠가 콩알만 한가 보다. 간이 생기다 말았는갑다! 가마 있자. 이거를, 오데로 우찌해서 껍데기를 벳기야 하노? 그래, 이라모 될 끼다!”

논개는 뱀을 다시 독 뚜껑 위에다 놓고 식칼로 뱀의 모가지 둘레를 빙 돌려서 칼집을 냈다. 그리고 칼집을 낸 목 부분의 껍질을 손톱으로 뜯어내면서 멀찍이 서 있는 섭냄이를 돌아보며 소리친다.

“섭냄아. 니, 이 대가리만 힘을 꼭 주고 좀 붙잡고 있거라. 그라모 내가 여기서부터 배미 껍데기를 잡고 짝 뺏겨 내릴 텐께.”

“싫다, 싫다.”

“죽은 배미다. 아물치도 않은 기라. 이거 봐라. 나는 이 배미 대가맇고 입을 맞출 수도 있ㄴ느기라!”

논개가 손에 쥔 뱀의 대가리를 입 쪽으로 들어올리는 시늉을 했다. 섭냄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그러다가 기어이 끄윽 하며 목줄디를 솟구쳐 구역질을 했다.

“니가 몬 하겄다카모 우짜노. 내 혼자서 해 봐야제.”

논개는 쪽마루로 올라가 무거운 다듬잇돌 밑에다 뱀 대가리를 넣었다. 그리고 칼집 낸 목 부분의 껍질을 벗겨 내리려 했다. 그러나 논개가 힘을 주자 뱀 대가리만 돌 밑에서 쑥 빠져나오고 말았다. 논개는 잠시 망연한 낯빛으로 서 있더니 쪽마루 밑에서 망치와 못을 찾아냈다. 그리고 방문 문설주에다 뱀의 대가리를 대고 못을 쳐 버렸다. 뱀이 문설주에 대가리가 박혀 늘어져 흔들거렸다. 논개가 히죽 웃더니 목둘레의 껍질을 두 손으로 힘을 주어 아래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껍질이 통째로 벗겨지기 시작했다. 대가리는 꼼짝없이 쇠목에 박힌 채 논개가 힘쓰는 데 따라 뱀은 허연 몸체를 드러냈고, 진저리를 치는 섭냄이의 자지러진 소리도 높아졌다. 그런데 뱀이 어느 정도 삶겨져서인지 껍질에 허연 살점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어구, 논개 니는 무서분 벨종인 기라. 독종 같은 가시난 기라.”

섭냄이는, 기어이 뱀의 껍질을 벗겨 내고 마는 논개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내젓는다.

“와, 다 뻿깄다!”

논개는 탄성과 함께 나무 도마 위에다 껍질 벗겨 낸 허연 뱀 몸통을 길게 얹어 놓고 칼로 토막을 치기 시작했다. 살점이 붙은 채로 완전히 뒤집어진 껍질도 힘껏 쳐서 토막을 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옹기솥에 쓸어 넣고, 또다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인자, 잘 우러날 끼다! 섭냄아, 정지에 가서 꺼부지 나무들 좀 더 갖고 나오이라. 불살은 적어도 인자는 고옴이 빨리 될 끼다!”

섭냄이의 반응이 없어 논개는 뒤를 돌아보았다. 섭냄이가 없어졌다.

제집으로 가 버린 모양이라 생각한다. 논개는 갑자기 주변이 허전한 것을 느낀다. 섭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외롭지 않고 편안하다가, 촐랑거리고 가 버리고 나면 주변이 적막강산 같은 기분을 곧잘 느끼곤 했는데 이 순간은 더했다.

“내가 배미 껍데기 벳기는 기 되게 징그러벘던 모양이제. 문디 가시나, 그래도 가모 간다 쿠고 가제.”

그러나 뱀솥이 다시 끓기 시작했 대 섭냄이가 돌아왔다. 그녀는 작은 팔 안에 바싹 마른 장작개비를 열 개도 넘게 안고 서 있었다. 논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니, 이 장작이 오데서 났노?”

섭냄이가 장작을 아궁이 앞에 부려 놓고는 자기가 금방 지나온 살팍(사립문)쪽의 골목을 돌아보았다.

“니, 이 장작 오세서 도둑질했구나.”

“우리 집에서 갖고 왔다. 옴마도 엉가들도 밭갈이하는 데 나가고 움떠라. 얼릉 이 장작으로 때라. 내가 좀 더 갖고 올 텐께.”

섭냄이가 다시 돌아섰다. 논개가 섭냄이의 팔을 낚아챘다.

“와 이라노? 우리 집 도둑 집 만들 끼가? 그래, 이거는 니가 나한테 말도 없이 이꺼정 안고 왔은께 우짤 수 없어서 때겄다마는, 또 갖고 오모 내가 썽낼 끼다.”

섭냄이가 논개의 얼굴을 쳐다보며 붙작힌 팔을 뽑아내려 했다.

“우리 집 꺼 내가 갖고 오는데 와 도둑질이란 말이고? 딱 한 번만 더 갖고 올 끼다.”

“안 된다. 어른들 허락 안받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살짝 가져오는 거는, 너거 집 꺼라 해도 도둑질인 기라. 니 자꾸 고집 푸우모 갖고 온 이 장작도 도로 갖다 놓으라 할 끼다! 그라고, 니 옴마한테 일러 줄 끼다.”

섭냄이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 누구 땜에 장작을 갖고 왔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나 하는 낯빛이었다.

“이 팔 놔라. 안 갖고 오모 될 꺼 아이가.”

논개가 움켜잡았든 섭냄이의 팔을 풀어 준다.

“니는, 참말로 벨난 종잔께네···.”

섭냄이가 투덜거렸다.

장작불은 힘 있게 잘 탔다. 시뻘건 불길이 옹기솥 가운데로 몰려 활활 타오르면서 솥 안의 뱀탕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불살이 너무 좋다! 고옴하는 거는 천처이 오래오래 끓이야 자알 우러날 낀데.”

논개는 훨훨 타고 있는 장작 두세 개를 빼내 불기운을 죽이면서 좀더 길게 불을 지폈다. 서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어느덧 해가 기울려는 것이다. 햇살이 퍼질 즈음에 백치 집을 다녀오고, 음산에 가서 뱀을 잡고, 아궁이를 만들어 잡은 뱀을 끓이다 또 껍질을 벗기고, 그리고 곰국이 거의 다 되었을 때는 해가 설핏설핏 넘어가려 했던 것이다.

“뽀이얗게 자알 우러났다! 인자 불 고만 때고, 나중에 너 옴마 오시모 데워서 디리모 되겄다.”

섭냄이가 옹기솥 뚜껑을 열어 보곤 탄성을 지르듯 말했다.

“참말로! 배미 한 마리 쌂는 데 하루가 다 갔다.!”

논개가 두 팔을 위로 올려 만세 부르듯 한다.

“그란데 논개 너 옴마, 뱀탕 잘 잡숫나?”

섭냄이가 갑자기 생각난 듯 논개를 돌아보며 물었다.

▶13편에 계속

/김지연(소설가)

작가약력

진주 출생, 진주여고/중앙대학교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역사소설 『논개 1.2.3권』 등 30여권, 채만식문학상(3회), 경남일보 문화부 차장, 현)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서울은평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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