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선학산에 들어선 논개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환희로움에 입을 벌린 채 사방을 휘둘러보며 빙빙 몸체를 돌리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하고 깸짝을 뛰기도 하며 감탄을 연발한다. 산벚꽃 나무를 비롯하여 진달래며 산수유며 각종 이름 모를 꽃들이 울긋불긋 지천인 데다 나무마다 연초록 잎새들이 파릇파릇 잎을 틔우는 모습들이 기막히게 좋았기 때문이다. 산벚꽃 나무 주변으로 벌이 윙윙거리고, 나비들이 춤을 추고, 산새들이 우지짖고, 산다람쥐들이 잽싸게 나무를 타거나 산등성이로 기어오르는 등 산속은 봄맞이로 온통 부산했다. 보름이 트고 가지마다 물이 오른 힘찬 기운은 느낄 수 있었어도 이렇듯 벌, 나비와 푸른 잎새와 선홍색 꽃잎들로 잔치를 벌이지는 않았었다. 흡사, 눈에 보이지 않는 숲의 요정들과 다람쥐와 산새들과 벌, 나비를 동반하여 숲의 나무들이 성대한 무당 굿거리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보드라운 찔레순도 큰 손으로 한 뼘만큼이나 자란 데다 통통하게 살져있어 입 안에 침이 돌게 했다. 논개는 자신이 왜 선학산 속에 들어왔는지를 잊고 연신 감탄과 환호성을 내지르며 돌아쳤다. 이 산의 전설처럼 천상의 선녀와 학이 어디엔가 내려와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찔레 가시에 손등이 지렁이처럼 긁히면서도 논개는 눈앞의 찔레 무더기에 솟아 있는 그 보드라운 순들을 놓칠 수가 없어 한 묶음이나 꺾어 내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고, 오매에게 주기 위해 옷고름에 묶기도 하다가, 화들짝 놀라는 얼굴이 된다.

“나무도 하고 들개도 잡겄다고 산에 오른 가시나가, 먼 지랄을 하고 있지?”

논개는 새끼줄과 함께 내팽개쳐 두었던 갈퀴를 찾아 들고, 바스러진 잡나무 잎사귀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이었다. 불살이 워낙 약한 땔감이어선지 동네에서 가까운 산 아래쪽에 수북이 쌓였는데도 긁어 간 사람이 없었다. 논개는 갈퀴로 긁어모은 마른 잎 무더기를 곳곳에 만들어 놓고 산 중턱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산의 아래쪽보다는 중턱부터 위쪽으로 소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고, 마른 잎을 긁을 바에는 솔까비가 잡나무 낙엽보다 불상이 더 세었기 때문이다. 논개는 수풀을 헤쳐 오르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혹여 산고양이나 들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중턱으로 오를수록 산속은 조용하고 호젓할 뿐이었다. 밭 갈고 씨 뿌리는 농번기에 꽃 찾아 산에 올 한가한 농부도 없겠지만, 산나물을 뜯기도 이른 때여서인지 산속에는 산짐승은커녕 사람의 흔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논개는 조금씩 긴장이 됨을 어찌하지 못한다. 위로 오를수록 호젓해지는 산속의 느낌이 어디에서 들개라도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돌팔매질에 자신이 만만했기 때문이다. 논개는 양어깨를 쫙 펴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심호흡을 두세 번 한다.

중턱에 거의 다 올랐을 때쯤 논개는 숨을 들이마시면서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온몸으로 오스스 소름이 돋고 머리끝이 하늘로 치솟는 것 같았다. 심장이 곤두박질을 치듯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논개가 붙박인 듯 멈추어 선 바로 그 아래쪽으로부터 버석거리는 기척과 짐승울음 같은 괴이한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논개는 천천히 허리를 굽혀 갈퀴를 바닥에 놓고 돌을 양손에 집어 들었다. 산고양이라도 좋고 들개라도 좋았다. 드디어 오매의 몸보신거리를 한 마리 잡는가 싶어 흥분과 함께 기운이 돋았다. 논개는 살금살금 수풀을 헤치며 귀를 한껏 벌린 채 소리가 나는 아래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소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연속적으로 났다. 논개는 고개를 빼고 소리 나는 방향을 쫓아 몸을 틀었다. 그러다 갑자기 상체를 뒤로 젖히며 우뚝 멈추어 섰다.

“옴매, 저, 저….”

논개는 말을 삼키면서 상체를 웅크리고 두 눈을 부릅떴다. 눈 아래, 갈대와 찔레가 울타리처럼 둘러쳐져 아늑해 보이는 낙엽 더미 위에, 들개나 산고양이가 아닌 사람들이 얼크러져 씩씩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 같았다. 흉물스럽게도 한 사람이 붉고 거무튀튀한 궁둥이를 햇볕 야래 들썩거리며 다른 사람을 짓누르고 있는 것도 같고, 아래에 깔린 사람이 울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기도 했다. 발밑 아래쪽의 위치이긴 해도 갈대들이 엇갈려 시야를 가려서 형체들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논개는 두 사람이 싸우는 것으로, 아래에 갈린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고개를 뒤로 잦히며 숨이 껄떡껄떡 넘어갈 듯 신음인지 비명인지 울음인지 분간 못할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여자라는 것도 알았다. 논개는 지금 자기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머리가 휭휭 휘둘릴 정도로 당황했다. 인적 없는 봄날 산속에서 두 사람이 궁둥이 까진 줄도 모르고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더욱이 여자가 짓이겨져 숨이 넘어가고 있는데, 이렇듯 숨어서 구경만 해야 될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논개는 양 손아귀에 움켜쥔 돌에 땀이 배는 끈적한 감을 느꼈다. 심장은 진작부터 쿵쿵 떡 치듯 뛰면서 논개의 귓속으로도 울려들고 있었다. 돌팔매로 여자를 깔고 있는 사내의 대가리를 칠 것인지, 그러나 눈 아래로 그나마 갈대숲 사이로 내려다보는 자세에서 팔매질이 백발백중 사내를 맞힐지는 자신이 없었다. 돌팔매를 빗맞혀서 사내에게 붙잡히기라도 하면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논개는 잠시 멈칫거렸다. 그런데, 눈 아래 사람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상한 소리도 그치고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엉덩이를 드러낸 남자도 엎어진 채 움직이지도 않았고, 깔려 있는 여자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논개는 두 사람 모두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엄청난 일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졌다는 낭패감과 함께, 그녀는 아래로 서둘러 내려가 볼 생각으로 허둥거렸다. 그러나 이내 논개는 다시 숨을 죽였다. 궁둥이가 들썩거리면서 사내가 모체를 일으켰고 여자도 상반신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여자의 얼굴이 갈대에 가려져 선명치 않았지만 풀어 헤친 저고리 사이로 희멀건 젖가슴이 통째로 드러나 있었다. 사내가 팔을 뻗어 여자의 젖을 만졌다. 여자는 키들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전혀 지금까지 싸운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사내가 이번에는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갖다 댔다. 여자가 깔깔거리며 사내의 울굴을 두 팔로 떼밀어 내는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사내는 여자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어 내지 않았다. 그들은 얼마간 그런 자세로 실랑이질을 하는 듯싶더니, 여자가 다시 바닥에 스러지고 사내의 궁둥이가 디딜방아 앞대가리처럼 요동을 쳤다. 그러자 여자가 또다시 울음도 비명도 신음도 아닌 기성을 내지르기 시작했고 사내도 연신 펄쩍거렸다. 한낮의 하얀 햇살이 요동치는 사내의 궁둥이에서 맴돌고 있었다.

논개는 여자가 키들대던 웃음소리에서 그들이 싸우는 것이 아님을 느꼈지만, 그들의 행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다.

▶다음호에 이어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