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저(脫疽)의 치유사례

신체조직의 한 부분이 생활력을 잃고 혈액의 공급이 끊겨서 일어나는 증상을 한의학에서 탈저(脫疽) 또는 탈저정(脫疽疔)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냉화로 인해 피부가 푸르스름하다가 마침내 썩어서 문드러지게 되는데 주로 발바닥이나 발가락 또는 손가락에서 발생한다.

발바닥이나 발가락에서 발생하는 탈저증을 당뇨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잘못 판단한 나머지 당뇨족이라고 지칭하고 있으나 당뇨와는 전혀 무관하다. 필자가 병리 연구에 입문해서 최초로 만난 환자가 나와 동갑내기인 탈저환자였다. 그리고 계도(병리강의)를 통해서 병을 고친 것도 이 환자가 최초이고, 병리와 심신의학 연구에 심취하게 된 것도 이 환자의 탈저병이 저절로 나은 것이 결정적 동기였다.

이 환자는 양쪽의 발등은 아무렇지도 않고 발바닥만 혈액공급이 두절돼서 검푸른 색으로 변해있었고, 갈라진데 물이 닿으면 몹시 쓰라려서 씻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병원서는 빨리 절단해야한다는 재촉이었지만 절단을 망설이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 보는 희귀병이어서 호기심이 동했고 문득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전통 민요가 떠올랐다. 그리고 실험삼아 발병원인을 사리적 이치로 개진해보고 싶었다.

“선생의 발바닥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내가 한 번 맞춰볼까요” 하고 농을 걸자, 한번 맞춰바라는 대답이었다.

“자칫하면 화를 낼지도 모르는데 무슨 말을 해도 화를 안내겠느냐”고 다짐을 받고-

“집에는 몸집도 있고, 주거용집도 있고, 가족집단인 가정집도 있는데 발은 주거용집의 주초와 같고 가정집의 주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가정집의 남편은 집의 기둥이나 같고 아내는 집의 주초와 같은 관계이다. 이 같은 사리적 이치로 남편인 자신의 발이 멍들었다는 것은, 아내 마음을 멍들게 해놓고 아내를 버리고 그 발로 가서는 안 될 곳으로 떠났다는 이치가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의 심정이 궁금했다.

“이론이 그렇다는 얘기니까 오해하지 마시요” 하자-

침묵하던 이 환자의 입에서 마치 반발이라도 하듯이 갑자기 자기 아내에 대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우리 여편네는 천하 악녀에요” 라는 욕설이었다.

이 같은 반응으로 미루어 실제로 부부간에 어떤 문제가 있구나 싶었다.

“병을 고치려면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하고 원인을 파악하려면 진실을 알아야함으로 부부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솔직히 털어놔보시오” 라고 타이르자 사연을 솔직히 털어놨다.

외아들인 장남이 잠시 경영을 맡겼던 주유소를 자신 모르게 팔아서 처자만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린 일 때문에 그 것을 알고 있었던 아내와 매일같이 부부싸움으로 지새다가, 마침내 아내만 버려두고 5년 동안을 객지로 떠돌다가 울산서 한 여성을 만나 정착하였는데, 이런 와중에 발에 병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환자의 발바닥 세포들이 거멓게 죽어가게 된 것은 생리적으로는 발바닥으로 통하는 모세혈관들이 막혀서 핼액 공급이 안 되기 때문이지만, 발바닥으로 가는 모세혈관들이 막혀버리게 된 근본 원인은 이 환자의 심상이 아내에게로 향하는 정(피)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환자의 발바닥세포들이 불과 20일도 채 못돼서 발갛게 살아나고 있었다. 필자도 당시는 신기하게만 여겼을 뿐 어떤 이치로 낫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었다. 10년이나 지나 약(藥)이라는 문자에서 비로소 그 의 발병이 낫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독자 여러분도 이 환자의 발병이 자연히 낫게 된 이유가 매우 궁금할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 남의 가정의 부부간에 있었던 분쟁사실을 알아 마치고 아내를 버리고 집을 떠나버린 사실까지도 용케도 알아 맞혔으니 귀신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부부간의 정이 끊어져서 생긴 병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정이 떨어졌었으니 내말을 믿게 됐을 것이다.

“부부간 정만 회복되면 피가 통하게 돼서 반드시 저절로 나을 것이라는” 내 말에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아서 희망과 용기가 생기고 발 절단에 대한 공포심도 사라지게 되어, 하루하루가 마냥 즐거워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에 낫게 되었던 것이다.

발가락 절단 사례

경남 하동에 사는 한 초등학교 교감인 정 씨.

그는 근면하고 성실한 모범 교사로서 상당한 농토도 있었고 반농반도인 고장이라 살고 있는 주택 말고도 매입한 두 채의 집을 세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복동생이 사업실패로 집도 없게 돼서 재기할 때까지 세놓고 있는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였지만 이를 거절함으로써 형제간의 정의(피)가 끊어져 버렸다.

그 이후로 발가락 두 개가 거멓게 죽어갔다. 병원 측의 권유대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발가락 두 개를 절단하였다. 그러나 이 환자는 그 후 3개월도 못살고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만약, 이 환자가 동생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서 끊어졌던 정이 되살아났더라면 발가락을 절단하지 않고도 틀림없이 저절로 나앗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수족이나 손가락 발가락을 함부로 절단해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 말아야할 것이다.

환자들이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킬 수밖에 없는 냉혹한 세태임을 깨달아야 하겠지만 의료계도 더 이상 절단치료에 매달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보행(步行)의 병리

세상에는 참으로 벼라 별 병들이 많다. 흔하지는 않지만 걸음걸이가 정상인들처럼 걷지 못하고 참새걸음을 하는 사람이 있다. 보폭이 좁아서 남들과 보조를 맞출 수 없어 남들과 동행할 수가 없었다.

다친 적도 없고 각기병이 생긴 것도 아니고 발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릎이나 발목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닌데, 잘 걷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우연이 제대로 못 걷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원인을 생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 답을 보조(步調)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걸음걸이를 보조라고도하고 가족이나 타인과의 인간관계에서도 보조라는 말이 쓰인다. 의사나 행동이 잘 맞으면 보조가 맞는 것이고 의사나 행동이 잘 안 맞으면 보조가 안 맞는 것이다. 이런 이치로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성격이 지나치게 고집스러워서 가족들과의 의사의 보조를 맞추지 못해서 가족들을 몹시 괴롭히기 때문이다.

보행의 부실 사례

최근 보행을 제대로 못 하는 70대 노인을 만났다. 그가 왕년에는 등산에 능숙할 만큼 보행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다친 적도 없고 무릎이나 발목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까닭 없이 보행이 제대로 안 돼서 조작조작 참새 걸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말하기를 “원인 없는 결과란 없지 않는가. 그 병 고치려면 조금도 감추지 말고 가정에서 가족들과의 사이에 어떤 일이 있는지 말해보라” 고 하자, 다음과 같은 사연을 털어 놓았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계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불편한 걸음걸이로 남의 사무실이나 전철에서 신문을 줍고 다니는 게 일상생활이었으니, 가족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신문 판돈을 집에는 한 푼도 안 주고 동생의 교회에 모두 헌금한다는 이야기였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욕심 때문이지요” 라는 대답이었다.

“그건 욕심 때문이 아니라 고집 때문이지요. 걸음을 제대로 못 걷는 것은 가족과 보조를 맞추지 않기 때문인데 그런 심상(心象)대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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