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가 만류를 했다.

“갠찮다. 내가 나무를 긁어서 모아 둔 기 있는 기라. 퍼뜩 가서 이고 올 텐께 약 다 마시고 누워 있어라. 갔다 와서 죽 뎁히 줄게.”

논개는 노비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둘러 낫과 새끼줄을 챙겨 산으로 향했다. 잠깐이겠지만 오매 옆에 노비가 있어 주니 아무도 없는 것보다 마음이 든든했다. 밖으로 나가는 논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노비는 거듭 논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상에, 야무지고 효녀로세! 저 어린 나이에 배미를 잡아서 부모 약고옴까지 만들고, 나무해서 불 때고. 쯔쯔, 몬 묵어서 몸이 비쩍 마리기는 해도 콧날이 오뚝하고 눈길이 영특하고 허우대가 늘씬하니, 좀 더 살이 오르고 나이를 묵으모 기찬 미인이 될 꺼 같네. 논개 어무이, 내 말대로 하시요이. 그라모 논개 어무이 병도 낫고 논개 팔자도 늘어지고….”

탕 그릇을 입으로 가져가던 오매가 눈에다 힘을 모으며 노비를 바라 보았다.

“그런 말 자꾸 마시게. 종 팔자가 늘어져 봤자 오데 양반이 된다던가? 양반은 몰락하모 양인이나 종의 신세가 될 수는 있지만, 종이 양반 되었다는 말은 못 들어 봤구만. 한번 종이 되모 씨내림이 되는 거를 누구보다 잘 알믄서 어찌 자꾸 권하는 기요. 논개가 종년이 되모 팔자 늘어질 일이 무어가 있단 말이요?”

오매는 말하기도 힘이 드는 듯 숨을 몰아쉬며 원망이 담긴 눈빛으로 노비를 바라보았다. 종은 씨내림을 하지 않느냐는 오매의 말이 걸렸던 것인지 노비가 잠시 굳은 표정이 되다가 그러나 금방 낯빛을 달리했다.

“팔자 펴진다는 거는, 논개가 주인어른의 몸종이 되믄, 작은 측실이 될 수도….”

“그만두시게. 나는 논개를 종년으로 팔 생각도 없고, 어린것이 증조부 같은 노인의 첩실이 되는 것도 원치 않네.”

오매의 파리한 얼굴에 홍조가 스치면서 노기로 굳어졌다. 시종 밝은 얼굴이던 노비도 싸늘한 표정이 되면서 고개를 옆으로 살짝 비껴 입가로 냉소를 달았다. 그러다 오매를 똑바로 주시했다.

“그라모, 당장에 우찌할 것이요? 논개 어무이 펫병 들어서 같이 일하는 거 진사 댁 사람들이 다 싫다 카이, 인자 일도 끝난 것인데 멀 묵고 살 끼요? 안 할 소리 같지만 논개 어무이 저 세상 가 삐리모 혼자 남은 논개는 우찌할 거냐 말이요. 내 말대로, 논개를 진사 댁으로 보내 주시오. 그러먼 논개 어무이 의원한테 뵈서 약도 지어 묵고, 논개도 배불리 잘 묵을 끼고, 종이 씨내림이라 카지만 오데 천년만년 이런 세상이겄소? 내가 이리 말해 주는 것도 논개 어무이를 생각해서요. 가마이 보니께 세상 천지간에 의지가지없는 논개 어무이 같고, 사람이 고지식하여 달리 융통성도 없는 것 같고, 논개가 하도 야무지고 영특해서 내 양딸이라도 삼고 싶은 마음이어서, 그래도 이리 찾아와서 권하는 것인께, 한번 자알 생각해 보시소.”

노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되네. 굶어 죽어도 안 되네. 내 자식을, 종년으로 팔 수는 없네. 그런 말 할 거라면 다시는 오시지 말게!”

어디에서 그런 큰 소리가 나오는지 방 안이 쩌렁 울릴 정도로 그녀가 목청을 높였다. 그리고 오매는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노비가 일어선 채,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픈 몸에 힘쓰지 마시오. 그라고, 자꾸 종년 종년 하는데, 종년 너무 괄시 마시오. 사람은 원래 다 똑같은 기요. 세상 잘몬 만나 걸뱅이 같은 것들에게꺼정 천대받고 살지만, 종놈 종년이 세상 뒤집는 날이 올지 누가 아요. 논개 어무이도 노적에만 이름이 안 붙었다 뿐이지 하는 일은 우리 종년들하고 머가 다르요?”

노비의 눈길은 경멸감으로 이글거렸다. 입으로는 침방울이 튀었다.

“주막집 부엌어멈에 부잣집 식모 노릇까지 온갖 궂은일로 꾸중물에 손 마를 날 없는 사람이, 종년 무시하게 되었느냐 말이요. 그래도 나는 논개 어무이 행동거지가 반듯하고 노비적에 이름이 없기 땜에 나보다 스무 살 가까이나 나이가 아래여도 이렇기 대접해 주고 있는 것이요.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시오. 아픈 몸뚱이에 거기다 굶어 죽는 거보다, 더 안된 말이지마는 논개 어무이 죽고 나믄 의지가지없는 자슥 신세 우짤 것인지, 더 생각해 보고 막말하란 말이요.”

노비가 방문을 부서져라 처닫고 방을 나가 버렸다. 양반 몰락한 가문의 과부인지 원래가 중인 출신인지 자신에 관한 말은 일절 벙긋도 않으면서, 함께 일하는 강 진사 댁 노복들에게 하나같이 ‘하게’를 쓰는 오매를, 평소에 노비는 가소롭게 생각했었다. 천민인 노비가 아님은 분명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이로는 노비인 자기의 딸년뻘이고 더욱이 강 진사 댁 고참 행랑어멈인 자기가 지휘하는 궂은일을 하면서도, 종을 무시하는 논개 오매의 언동을 그녀는 같잖게 보아 왔던 것이다.

“흥, 양반 도포 자락 바람이라도 쑀는지 반말지꺼리하는 태는 몸에 뱄더라마는, 척하는지도 모리제. 그렇지 않으면 딸자식 이름이 양갓집 규슈들처럼 고상하지 몬하고, 상민들이 아무렇게나 지어서 부르는 ‘논개’냐 말이다….”

노비는 논개 집을 벗어나면서 쉼 없이 빈정거렸다. 양반 가닥이 아닌 중인이나 상민들도 비복들에게는 ‘하게를 하는 세상이었지만, 노비는 평소에도 논개 오매가 못마땅했었다. 나이가 서른한 살로 자기보다 스무 살 가까이나 아래이고, 더욱이 주막어멈을 하다가 진사 댁천역을 다니는 주제에 아니꼽게도 너무 행세를 한다 싶어서였다.

그러나 진사 손인 칠순의 주인어른이, 제 오매를 만나러 가끔 진사댁에 들락거리던 논개를 본 후로 넌지시 몸종 삼을 귀띔을 해 왔던 터라, 어떻든 일을 성사시키고 싶어 이렇게 직접 찾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어미의 완강한 거절로 쉽게 성취될 것 같지 않은 예감이었다.

“배를 곯게 되믄 생각이 달라지겄제. 꼬락서니 보니께 명줄도 코앞에 닿인 것 같은데, 제 년 죽고 나믄 우짤 것인가? 아무리 딸자슥 종년시키고 싶지 않아도 논개는 우리가 데려올 수밖에….”

노비는 걸음을 빨리하면서 입귀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강 진사 댁 노비가 방문을 거칠게 닫고 나간 후, 오매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노비와 마주 앉았을 때부터 목구멍에서 핏덩어리가 울컥 입안으로 솟구치면서 기침이 터지려는 것을, 핏덩이를 꿀꺽 되삼키고는 지그시 참아 냈던 것인데, 기어이 폭발하듯 터지고 말았다. 기침에 힘이 주어질 때마다 목 안에서 뜨거운 핏덩어리가 계속 솟구쳐 올랐다. 그녀는 발아래 요강을 끌어당겨 그것을 뱉어 낸다.

“종년이라니, 안 된다. 일에 골병이 든 이내 몸인데, 천금만금 같은 자식을 종으로 만들어서 평생 천역을 살라고? 안 된다.”

그녀는 끊임없이 밭은기침을 하는 사이사이로 노비의 강권에 치를 떨었다. 논개를 절대로 종을 만들 수 없다는 다짐을 속으로 거듭했다. 기침은 조금도 수그러들지가 않았다. 오매는 요강을 붙들고 기침을 멈추어 보려고 이를 물며 안간힘을 썼지만 핏덩이는 물컹물컹 목을 넘어왔다. 그녀는 순간 두려움을 느낀다. 기어이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위기감이 전신을 휩싸왔던 것이다. 물그릇을 더듬어 입에 댔다. 그러나 한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되넘어오는 핏덩이에 물이 밖으로 내뿜어졌다. 씻어 손질한 뽀얀 광목 빨래에 입 속의 물을 뿜어내듯 핏물이 핏덩이와 함께 방바닥으로 푸우 뿜어져 나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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