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민들레 (17회)
야생의 민들레 (17회)
  • 경남연합신문
  • 승인 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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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녘에 긁어모아 둔 잡나무 낙엽들을 다져 뭉치를 만들던 논개는 전신으로 찌르르 흐르는 어떤 서늘한 느낌에 굳어져 서 버린다. 알 수 없는 찬 기운이 전신을 훑었던 것이다. 뺨의 솜털이며 머리끝, 팔뚝, 다리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온몸이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불각시리, 벨 희안도리납작한 일도 다 있네! 몸띠가 얼음물 뒤집어 쓴 것맨키로, 갑자기 와 이라제? 내가 몸살 할 낀갑다. 깔비는 낼 와서 더 긁고 오늘은 해 놓은 거나 뭉쳐서 고만 가야겄다. 얼렁 가서 오매 죽 뎁히 조야제.”

논개는 가마니 조각으로 잡나무 낙엽 뭉치와 마른 솔잎을 뭉뚱그려서 머리에 이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왠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누군가 뒤에서 등을 떠미는 것 같기도 하고 앞에서 잡아당기는 것도 같았다. 비탈을 걸어 내리는 두 다리가 후들후들 휘청거리기도 했다.

“귀신이 곡할 요사네! 집에 무신 일이 생깄나? 내 맘이, 와 이리 황당하고 무섭고 바쁘제? 강 진사 댁 노비 아지매는 갔을까? 그래도 올매나 고맙노! 옴마가 못 받아 온 곡식을 집에꺼정, 그것도 더 많게 갖다 주었으니 말이다. 나물죽이나마 좀 들고 갔는지 모리겄다.”

잡나무가 섞인 나뭇짐 뭉치는 솔잎만 다져 묶은 것만큼 무겁지는 않았다. 논개는 뛸 듯이 동네로 접어들어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쪽마루 아래에는 노비 아지매의 짚신이 없었다. 돌아간 모양이라 생각했다.

“옴마아, 내 왔다아.”

논개는 나뭇짐을 정짓간 바닥에 처박아 놓으면서 소리부터 질렀다. 그리고 끓여 놓고 간 나물죽이 들어 있는 솥을 만져 보았다. 무쇠솥이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논개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죽을 데워서 오매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뱀탕이 소화될 즈음에 죽을 먹어야 약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끓여만 놓고 오매에게 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방 안에서 기척이 없어 의아스러웠다. 가녀린 소리라도 오매의 기척이 있어야 하는데 계속 조용했던 것이다.

“잠들었나…?”

논개는 아궁이 깊숙이 불을 밀어 넣어 놓고, 축담 돌판에 발을 디딘 채 쪽마루에 배를 깔고 방문을 열러 본다. 그러다 숨을 컥 들이마시면서 벌떡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간다.

“옴마아. 옴마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심장이 곤두박질을 쳤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팔도 손도 떨렸다. 논개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핏덩이를 입에 문채 옆으로 쓰러져 있는 오매를 바로 눕히고, 오매의 가슴에 귀를 대 본다. 숨을 쉬고 있었다.

“옴마, 옴마, 누, 눈 좀 떠 봐라. 옴마, 옴마아!”

논개는 감긴 오매의 눈을 억지로 벌리면서 와들와들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요강에 가득 차 있는 핏덩이를 보면서 두려워 어쩌지 못한다. 요강을 오매의 발밑으로 조심스럽게 옯겨 놓고, 오매의 입가와 방바닥에 뿜어진 피를 대충 닦아 놓고, 논개는 방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우선 안집으로 달려갔다. 오매와 자기를 언제나 못마땅해하는 주인아주머니가 무섭고 싫었지만, 그런 걸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안집에는 여섯 살짜리 아들 창기만 바지춤 속에 손을 넣고 멍한 얼굴로 마루에 앉아 있다가, 뛰어드는 논개를 보고 후다닥 일어날 뿐이었다.

“누야, 와 그라노?”

“너거 옴마 아부지 안 기시나?”

“밭에 갔다.”

논개는 그냥 돌아서 단숨에 점백이 할매 집으로 달려갔다. 마침 할매가 호미로 마당 옆의 텃밭을 고르고 있었다.

“할매, 우리 옴마가 죽을라 캅니더. 쌔이 빨리 집에 좀 가입시더.”

논개는 숨을 몰아쉬면서 다짜고짜 점백이 할매의 팔을 잡아끌었다.

“너거 오매가, 우짠다꼬?”

할매는 느닷없이 무슨 소리냐는 듯 귀 쪽으로 손을 펼치며 소리를 쳤다. 그러나 몸은 이미 논개의 손에 떠밀려 집 밖으로 나온 후였다.

“우리 옴마가, 주, 죽을라 캐예.”

점백이 할매와 논개가 허둥지둥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오매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점백이 할매가 오매를 보는 순간, 멈칫 뒷걸음질을 쳤다.

“가 삐린 거 같은디….”

“아이라예, 안 죽었어예. 할매예, 우찌 좀 해 보이소. 우리 옴마 좀 살려 주이소예.”

“바늘 좀 꺼내 봐라.”

할매가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흙이 묻은 손을 옷에다 쓱쓱 닦으면서 오매의 팔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할매의 얼굴이 굳어졌다. 예상대로 오매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 바늘 있어예. 어서 해 보이소.”

논개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굵은 바늘을 할매 앞으로 내밀었다. 할매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낯빛이 떡빛으로 질린 채 온몸을 떨며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는 논개의 얼굴을 보면서, 오매의 손을 들어올려 잡고 손끝을 바늘로 찔러 피를 냈다. 열 손가락 모두를 찔렀다. 검붉은 핏방울이 손끝에서 뽀조록이 솟다가 빈대처럼 퍼졌다.

“옴마, 옴마, 눈 좀 떠 봐라. 죽으모 안 된다. 죽지 마라. 옴마아.”

열 손가락의 피를 뺐어도 꿈적 않는 오매의 가슴께를 흔들어 보던 논개가 할매를 홱 돌아보았다.

“할매, 옴마가 피를 많이 쏟았는데…”.

논개는 그 말을 끝으로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정짓간에서 커다란 식칼을 집어 와 자기의 왼손 무명지를 쪽마루 끝에 놓고 힘껏 내리쳤다.

“악!”

순식간의 행동이었다. 논개는 까무러칠 것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오매가 죽는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정신이 나갈 정도로 흥분 상태여서 아픈 줄도 몰랐다. 무명지 첫 마디의 중간쯤이 뼈까지 잘렸으나 무딘 칼탓인지 살가죽은 붙어 덜렁거렸다. 피가 철철 솟구쳤다. 논개는 방 안으로 들어가 오매의 닫힌 입을 오른손으로 벌리고 무명지의 피를 입속에
쏟았다.

“하이고마, 이기 무, 무신 짓이고? 논개야, 야가 시상에…. 니 오맨 죽었어. 진작 죽어 삐린 기라! 하이고, 이거를 우짜노, 우짜노?”

점백이 할매가 경악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할매는 곧, 이를 악물고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오매의 입 속에 피를 떨구고 있는 논개의 왼손을 붙잡아 올렸다. 할매는 논개의 덜렁거리는 무명지 윗부분을 제자리에 다시 세워 붙이고는 당신의 목에 둘린 흰 무명 수건을 찢어 손가락을 둘둘 감곤 힘주어 쥐었다. 그러는 사이 논개는 얼굴이 백납처럼 굳어져서는 방 벽에 머리를 박고 기진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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