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지연

“시상에, 우짜노, 줄초상 치겄네. 이기 무신 일이고? 밖에 아무도 읎나? 창기 오매-, 오매야-.”

할매는 안집의 주인 여자를 소리쳐 부르면서도 수건으로 둘둘 말아 쥔 논개의 손을 놓지 않았다. 무명 수건이 금방 피투성이로 변했다. 논개는 여전히 기진한 채 벽에 머리를 기대고 두 다리를 뻗은 채 쓰러져 있었다.

안집의 여섯 살배기 창기가 쪽마루에 나타났다.

“우리 옴마하고, 아부지 밭에 갔십니더.”

그런데 때마침 섭냄이가 빈 대소쿠리를 들고 촐랑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섭냄아, 니 잘 왔다. 얼렁 동네 어른들 좀 뫼시 오니라, 창기는 밭에 가서 너거 옴마 아부지 좀 오라 카고, 논개 옴마가 죽었다 캐라.”

섭냄이가 입을 딱 벌렸다. 붙박인 듯 서서 점백이 할매를 쳐다보기만 한다.

“얼렁 뛰어가라 말이다.”

“야, 할매. 그란데, 노, 논개는 와 그랍니꺼?”

“지 옴마 피 멕인다꼬 손가락을 짜르고 기절했다. 논개는 금방 깨날 틴께 걱정 말고 얼렁 갔다 오니라.”

“야,”

섭냄이가 소쿠리와 호미를 선 자리에서 놓쳐 버리곤 조금씩 비틀거리며 나간다. 빨리 뛰어가고 싶은데 너무나 놀란 탓에 두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린 창기도 겁먹은 얼굴로 섭냄이를 뒤따라 뛰어나갔다.

점백이 할매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한동안 힘주어 붙잡고 있던 논개의 손가락을 당신의 무릎 위에 조심스럽게 놓으면서 피에 전수건을 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지혈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가락은 원래의 모양대로 엉거주춤 맞춰진 채 붙어 있었고, 아직도 피는 비어져 나오고 있었다. 할매는 무명 수건을 가늘게 몇 가닥으로 더 찢었다. 그리고 논개의 손가락이 어긋나지 않게 다시 한 번 고정시키고 는 찢어낸 수건 가닥으로 힘주어 감았다. 손가락이 다시 붙기를 바랄 뿐이었다.

“영악하고 야무진 가시난 줄은 알지마는 참말로 독한 여식이네. 논개야. 정신 채리라, 논개야.”

논개의 손가락을 싸매고 난 할매가 손바닥으로 살살 논개의 얼굴을 때리며 흔들었다. 논개가 눈을 떴다.

“할매, 우리 옴마는…?”

“인자, 정신이 드나? 너거 옴마, 저승 귀신이 데리갔다.”

논개는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닭똥 같은 눈물이 지그시 감은 눈귀로 비집고 나왔다. 아랫입술을 피나게 깨물면서도 울음소리는 내지 않는다. 논개는 오열을 참아 내며 몸을 움직여 일어나려다가 비명을 지른다.

“손가락을 붙여 놨인께 움직이지 말고 가마이 있거라. 우짤라꼬 손까락을 끊노 말이다.”

논개는 왼손을 쳐들고 엉덩이로 방바닥을 끌며 오매 앞으로 다가가 가슴에 귀를 다시 대 본다.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심장 뛰는 소리는 없었다.

“할매, 우짜모 좋습니꺼?”

“우짜기는., 사람은 다 죽는 기다. 너 오매는 좀 일찍 간 것뿐이다. 그란데, 그단에 그렇기 마이 아팠더나? 하기사, 눈만 감으모 송장맨키로 휘청대던 사람이기는 했제. 어이구, 아까바라! 저승 귀신은 환갑 넘은 나 겉은 늙은이나 델꼬 가제, 우쩌자고 저리도 젊은 여편네를 데불고 간단 말이고.”

할매가 일어나서 시렁 위에 얹힌 삼베 이불을 내려 오매의 얼굴과 몸을 덮었다.

“옴마를…, 우리 옴마는… 오데다 묻어야 합니꺼?”

논개가 잠긴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섭냄이와 훈장 어른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섭냄이가 훌쩍훌쩍 흐느끼면서 사람들이 다 밭에 나가 버려서 훈장 어른을 뫼셔 왔다고 했다. 훈장 어른이 방에 들어오고 섭냄이도 따라 들어왔다. 섭냄이가 연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논개야, 괜찮나?” 하고 물었다. 논개는 울지 않으려고 코를 찡긋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훈장 어른과 점백이 할매가 논개더러 일가친척이 어디에 사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삼촌이나 고모,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느냐고 물었다. 논개는 모른다고 했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오매로부터 들어 알고 있을 뿐, 철들어서는 한 번도 그런 친척들을 만나 본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어딘지는 정확히 지명을 모르지만 천변 난전의 주막집으로 이사 와서 2년간을 살 때도, 그리고 이곳으로 이사 와서 네댓 해가 되는 지금까지도 오매가 친척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너 오매를, 점촌댁이라고도 부르고, 함양댁이라고도 불렀으니께, 점촌이나 함양에 가믄 친척이 있을지도 모리겄네만, 거기가 어디라고 시신을 눕히 놓고 가겠노. 저, 훈장 어른이요. 동네 사람덜이 치워 조야안 되겠습니꺼?”

“그래야 하겄지요.”

그때, 안집의 창기가 밭에 나갔던 부모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창기오매의 서슬이 시퍼랬다.

“하이고, 내하고 무신 원쑤가 졌길래, 하필이모 와 우리 집에서 죽노. 지난가실부터 방 비워 달라 캤더마는 겨울만 보내고 나가겄다 카디이, 이리 영장 될라꼬 그랬던가배.”

그녀는 방 안을 힐끗 들여다보면서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넋두리를 그치지 않았다.

“아이고, 내사 몰라. 일가친척도 씨알맹이도 없는가 보던데, 저 영장을 누가 치울 끼고.”

창기 오매가 또 한번 쇳소리를 냈다. 논개가 간절한 눈빛으로 창기 오매를 쳐다보며 두 손을 모은다.

“아지매, 걱정 마이소. 지가 오매를 업고 가서 묻을께예. 저승길 가는 불쌍한 우리 옴마 그냥 가거러 좀 가만 놔두이소! 아지매, 지가 이리 빌께예.”

논개가 창기 오매 앞에 털썩 꿇어앉아 눈물을 철철 흘리며 수건 가닥을 감은 아픈 손과 오른손을 마주하고 비벼 댄다. 섭냄이도 옆에서 큰 소리로 울어 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썽이 나도 그렇제, 그래도 한집에 살던 사람이 죽었는데 안 된 마음도 읎는가? 누가 창기 오매더러 영장 치우라 칼까 봐서 그리 겁을 내나? 논개가 불쌍치도 않나? 어린기 지 오매 살릴 끼라고 손가락을 칼로 쳐서 퉁퉁 부은 저 손을 모두고 빌고 있는데, 우째 아 세근생각만큼도 몬하노, 마지막 저승길 가는 사람 편하게 가거러 좀 가마이 있으라마.”

점백이 할매의 말에 훈장 어른과 창기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논개의 손을 보았다. 창기 오매도 논개 손을 힐끗 바라보고는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탁탁 치면서 논개를 노려보았다.

“하이고, 진주 돗골에 효녀 났네? 손가락 짤라서 피를 멕였는데, 고만 죽어 삐리서 우짜꼬? 백야시 같은 가시나가 백야시 같은 짓을 했구만 나는 모리겄소. 할매가 영장을 치워 주고, 그러코럼 생각하는 저년도 데리고 가소. 우리는 이 방 새로 벽칠하고 안쪽으로 방문을 내서 목수 기술 배우는 우리 친정 조카 지내거러 할 끼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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