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표
진주사범, 초등교장, 창작수필 등단
수필집 ‘허수아비’

“아직 안 됐어 예.” 어느 날 경산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구두 수선소에서 들었던 말이다. 몇 년 전 경산에 사는 친구 만나러 가는 길에 구두 수선소에 들렀다. 주인이 구두 닦던 손을 멈추고 가볍게 눈인사를 한다. 30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다. 예상 밖이었다. 젊은 사람이 다른 일을 하지, 왜 구두를 닦고 있을까, 딱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 기다리니 닦던 구두를 그만두고 구두를 벗어 달라고 한다. 구두를 닦은 지 오래되었다. 헌 칫솔로 바닥에 붙은 흙을 긁고 솔로 먼지를 턴다. 구두약을 바르고 닦아 낸다. 다시 구두약을 바르고 몇 번이고 문질러 닦는다.

이리저리 만지는 손놀림이 능란해서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이 일을 하신 지가 얼마나 됐어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참 만에 “올해가 꼭 7년째요.”라며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몇 살부터 시작했기에. 7년째…. 몹시 궁금했는데 말을 이었다.

군에서 제대한 뒤 지인이 하고 있던 수선소를 인수해서 비 오는 날도 쉬지 않았단다. 비 오는 날에는 구두를 고치러 오는 손님이 있어 쉴 수 없었고 아침에 은행에 들렀다가 이곳에서 구두를 닦으며 하루를 보냈단다. 7년을 하루같이 이곳에 오가며 세월을 보냈다. 이야기 중에도 쉬지 않고 계속 닦는다. 물을 발라 닦기도 하고 가스불에 쬐여서도 문지른다. 이리지리 들춰 보고 계속 손질한다.

“이제 됐습니다. 깨끗하네요.” 그만 닦으라고 해도 들은 척 않더니 “아직 안 됐어 예. 완전하게 닦아야지요.” 하면서 손놀림은 더 바빠진다. 한참 뒤에야 구두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내 앞으로 밀어 놓는다. 그래도 구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구두를 신기가 민망했다. 정성껏 닦은 구두이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손질 했을까. 닦은 값 3000원과 함께 수고했다는 인사를 남기고 나왔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직 안 됐어 예.’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곧 더러워질 구두를 왜 다시는 신지도 않을 것 같이 닦았을까. 지난달에 친구 집에 가는 길에 구두 닦던 그 청년이 생각나서 구두수선소로 찾아갔다. 몇 년이 흘렀지만 모두가 그대로인데 그 구두수선소는 보이지 않아 옆에 있는 식당에 물었다.

지난해 그만두고 슈퍼마켓을 한다면서 떠났단다. 그러니까 구두를 닦은 지 꼭 십년이 된 해다. 떠났다는 말에 “그랬구나!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중얼거리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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