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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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연합신문
  • 승인 201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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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지연

야생의 민들레(19)

창기 오매는 그 말을 끝으로 획 몸을 돌려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점백이 할매가 고개를 휘휘 내둘렀다.

“세상에, 어른이라 캄서 저 말하는 거 좀 보래. 참말로 더럽고 야박스런 인씸이네. 그래, 논개 내가 데려갈 텐께 극정들 말어, 쯔쯔.”

점백이 할매는 창기 오매가 들어간 안채 쪽을 향해 혀를 끌끌 찼다.

목수인 창기 아버지는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편한 얼굴은 아니었다. 훈장 어른이 죽은 오매를 어디에다 묻을 것인지 걱정하자 창기 아버지가 뒷뻔덕 야산밖에 더 있게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친척이 있을지라도 모리는데….”

점백이 할매가 중얼거렸다.

“할매가 친척 찾아서 명당자리 잡아 묻어 줄라요? 의지가지없는 영장, 오데라도 떠메고 가서 묻어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될 판에.”

창기 아버지가 점백이 할매를 보고 쥐어박듯이 말했다.

할매가 그런 창기 아버지를 찌푸린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때 논개가 조심스럽게 어른들의 이야기 속으로 끼어들었다.

“저어, 선학산에 묻으모 우떨까예?”

할매가 논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선학산이라 캤나?”

“야아.”

그러자 창기 아버지가 논개를 노려보았다.

“누가 선학산까지 너 오매를 지고 갈 끼고? 뒷뻔덕은 가차분께 내가지고 가서 묻어 줄라 캤던 긴데.”

“뒷뻔덕은 바람도 쎄고, 산사태도 잘 나고, 음지고, 배미도 많고….”

“쟈가 꼴같잔커러 명당자리 찾네? 배미가 영장 파묵는다 카더나, 죽은 영장이 춥다 카더나? 싫으모 나중에 너거 일가들이 와서 이장해 가모 될 꺼 아이가.”

“일가가 읎습니더. 한 번도 일가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예.”

“나는 선학산꺼정은 영장 안 지고 갈 끼다. 그래도 사람이 불쌍해서 방도 내조서 살게 했더마는, 은혜 갚는 기 영장 치워 달라는 건가베?”

창기 아버지가 거칠게 몸을 돌리고 방을 나가 쪽마루에 떨썩 주저앉으면서 한숨을 섞어 말했다.

“할매, 지가 옴마를 업고 가믄 안 될까예?”

논개가 점백이 할매를 져다보며 물었다.

“니가 기운 쎄다는 거는 안다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송장이 살아있는 사람맨키로 나긋나긋 니 맘대로 되는 줄 아나. 가마이 있거라. 인자 곧 동네 사람들 밭에서 돌아오모 이논해 보자. 인자부터는 부석에 불 때지 말거라. 방이 추워야 한다. 그라고, 논개 니 정신 똑바로 채리야 된다. 옴마 죽었다고 울기만 하고 정신 놓으모, 자슥이 니 하나뿐인데 안 된다. 알겄나?”

점백이 할매는 시종 열한 살짜리 아이 같지 않은 논개의 의젓한 모습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마디 주의를 준다.

“야아.”

그날 밤, 동네 사람들은 논개의 셋방에 아무도 들러 주지 않았다. 밭갈이에 온종일 시달려 피곤해서인지 촌장조차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섭냄이 오매만 불쑥 들러선 섭냄이의 손목을 강제로 끌고 가 버렸을 뿐이다. 훈장 어른도 더는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돌아가 버렸고, 창기 아버지도 “인심 살 일을 했어야 사람들이 묻어라도 주제.” 하고 투덜거리면서 안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창자가 곯는데 머를 갖고 인심 쓰고 살꼬? 참말로 사람 인심 야박타. 우째 이럴 수가 있노. 논개야, 정신 똑바로 채리고, 니 오매 잘 지키고 있거라. 내가 좀 나갔다 올 끼니께.”

점백이 할매가 고개를 내두르면서 펄럭거리는 등잔불이 꺼질세라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할매가 방을 나가 버리자 방안은 갑자기 적막강산처럼 호젓해졌다. 논개는 오매의 시신 앞으로 다가가 얼굴에 덮인 삼베 홑이불을 벗겨 낸다. 오매의 얼굴은 살가죽만 붙어 있어 광대뼈가 유난히 솟아 보이고 감은 눈은 퀭하게 움푹 들어가 있었지만, 표정은 차라리 평온해 보였다.

“옴마, 극정 마라. 내가 꽁공 파묻어 줄 텐께.”

논개는 오른손을 들어 오매의 얼굴을 한번 만져 본다. 손 끝에 닿는 오매 살갗의 느낌이 살아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옴마아, 극정 마라. 내가 꽁꽁 파묻어 줄 텐께. 그라고 나 혼자도 잘 살 수 있은께 걱정 말고 좋은 데 가라, 옴마아.”

논개는 오매의 얼굴을 만져 보며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오매에게 걱정을 시키지 않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한다. 실제 못 살아갈 것도 없다는 뱃심도 있었다. 다만 눈앞의 과제는, 오매를 선녀와 학이 노닐었다는 선학산에 업고 가서 매장하는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이나 안집 창기 부모가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논개는 그들이 원망스러울 것 같지가 않았다. 천변 주막집 사람들처럼 자기 모녀를 동네에서 쫓아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섭냄이가 다시 왔다. 자기 오매에게 강제로 손목이 붙잡혀 집으로 끌려갔는데, 도망쳐 나온 것 같았다.

“할매도, 가 삐맀나?”

“또 오실 끼다.”

“니 혼자서, 안 무섭나?”

“무서블 끼 뭐꼬? 갠찮다.”

“낼 말고 모레, 새이상여 메야제?”

“누가 멜 끼고? 새이는 있는 사람들이 하는 장리장례고, 날이 밝으모 내가 옴마를 업고 선학산으로 가서 묻어 줄 끼다.”

섭냄이의 두 눈이 놀란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니가, 죽은 옴마를 업어 간단 말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니가 선학산꺼정 송장을 우찌 업고 간단 말이고? 사람이 죽으모 뻣뻣하다 카던데,”

“뻣뻣하모, 옴마 몸을 삼베 이불에 사서 내 머리에 이고 가제.”

“옴마야, 야아가….”

섭냄이는 어쩌구니가 없는 듯 질린 낯빛을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논개가 신음과 함께 한숨을 내쉰다.

“우짜겄노. 아무도 우리 옴마 져다 주지 않을 낀데. 내 한 손이 이 모양인께 땅을 파는 기 문젠 기라. 니하고 순검이하고 땅 좀 파 주모 좋을 낀데, 너거 둘이 힘을 합쳐 봤자 내 하나 힘도 안 된께 그기 극정이다.”

“우쨌거나 죽은 오매를 이고 지고 갈 끼라는 니 말은 말이 안 되는 기다. 무신 수가 있을 끼다. 어른들이 절대로 가마이 안 있을 끼다. 그라고 논개야, 너 어머이 얼굴좀 덮어라. 나는 무섭다.”

논개가 오매의 얼굴을 삼베 자락으로 덮었다. 점백이 할매가 다시 논개 셋방으로 온 것은 삼경三更이 다 되어서였다. 섭냄이가 죽은 사람 살아온 듯 반가워하면서 할매의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우짜라고 했습니꺼?”

“우리 송달이 아배가 새복에 와서 지고 가기로 했다. 인심이 곡식 바가지에서 난다 카지마는, 이렇기 야박한 인심은 세상에 엄슬 끼다. 그래도 백정이는 온다 캤다.

할매가 고개를 저으면서도 약간은 안도감이 깃든 얼굴로 말했다.

“참말로 잘됐네예! 백정이가, 집에 와 있었던가배예?”

섭냄이가 두 손을 맞붙이고 손뼉이라도 칠 것 같은 모양새로 할매를 쳐다보며 말한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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