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동 김기원
한국토산차문화연구원장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다선일미(茶禪一味)란 글자그대로 차와 선을 둘이 아니고 하나란 뜻이지만 차 한 잔 마시는 한 순간 우주세계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모두 느끼고 불이(不二)로 선정에 입문한다는 뜻이다, 고려 이규보(李奎報 ; 1168~1241)는 차를 선물 받고 한 편의 차시를 썼다 그 시 내용에 <한 잔의 차가 곧 참선의 시작되네. ;一卽參禪始〕라는 시 구 절가 바로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처음 언급 되였고 전한다.

보리 달마대사( 菩提達磨大師 ?~ 528)를 중국에서 선 다조(禪茶祖)를 모셨던 다선문화가 법물(法物) 따라 신라에 들어온 차와 선사상은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삼국에 씨를 뿌리었고 신라에 와서 뿌리를 내리므로서 고려에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꽃을 피었다가 고려 말 이후 조선에 와서 유교의 주자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선불교 문화의 의례와 사원의 수행방법으로 병용됨으로 조사선맥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이어졌다. 이능화(1869~1945)의 『조선불교통사』에 차는 풀의 성현이며 곧 선(禪)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처럼 당나라에 이름난 선승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의 끽다거(喫茶去)와 송대 원오극근(圜悟克勤,1063–1135)선사의 임제종 양기파(楊枝派)에 속하던 한국불교가 인정하는 간화선의 조사선맥에 다선일미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한국 땅에서 원효의 화쟁(和靜)정신에 다선일미를 주창하여 왔다라고 생각을 해 볼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유교 주자학에 믿었던 다선일미가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의 섭정으로 보우선사(?- 1565)가 봉은사에 선종(禪宗)을 일으켰다 그런 영향을 받은 다선일미의 정신은 해남 일지 암에 음거한 초의선사와 강진이 유배지였던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간에 차와 정신이 교류됨으로 초의선사는 중정청경(中正淸境)으로 정리하여 중국 일본다도에 방향을 제시하였고 다산 정약용은 음차흥음주망(飮茶興飮酒亡 ; 차를 마시면 흥하고 술을 마시면 망한다)이 조선 유가에 널리 퍼트린 일화를 놓았으며 추사 김정희는 한국적인 다선일미였던 명선(茗禪)을 탄생함으로 조선에 다선일미 정신을 널리 퍼졌음을 말해 주는 대표 일화로 지적 할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전래된 차 문화가 토착화되고 신라 때 구산선문의 태동과 함께 입당구법 선사들의 왕래로 보완된 차와 선 문화 사원을 통해 발전한 다선일미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차 문화는 왕실과 차츰 가까워지면서 또 다른 청자다기 문화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조선에 유교 성리학을 지나치게 장려하는 대신 배불정책으로 사원 차 문화는 쇠퇴기를 맞게 됨으로 다원의 폐허, 공양의식과 전법 의례식에 찻물이 없어 졌고 정정수로 대신하는 다계(茶契)의식법, 다게(茶偈)의식법. 공양 때 다각(茶角)은 부처님 전에 감로다(甘露茶) 공양 대신 맑은 물로 공양하는 법이 전하면서 화두선맥에 이어져 참선 화두로 발전하였다.

새로운 세기를 맞아 새로운 문화의 방향을 탐색하고 추구하는 것이 삶과 사회의 조화를 이루려는 자연율법이 사회법을 보원시킨 다선일미이라 하겠다.

한국의 차 문화는 80년대 초부터 차가 호기성 음료로 차 문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전통 사찰 주변에 산재한 차 유적지의 복원으로 한국 차는 사찰의 선법과 만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근래 경봉선사은 <차 몇 잔 마셨느냐> 금당은 끽다래(喫茶來) 감로의 끽다성(喫茶惺) 성철선사의<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차 화두가 다선일미 정신의 복원이라 하겠다, 차와 선 문화의 꽃이 될 수 있는 선차 행다법이 태동되면서 차 문화권에 새로운 정신문화를 개척해 낸 것이 다선일미가 일지화(一枝花)로 피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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