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민들레(21)
소설가 김지연

논개는 발걸음이 얼른 떨어지지 않았으나 거기서 더 머뭇거리면 어른들한테 걱정만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저께 아침까지 살아 있던 오매를 차가운 땅속 깊숙이에 꽁꽁 묻어 놓고, 혼자산속에 버려두고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 차마 못할 짓 같았으나, 일단은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또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한 번 돌아보았다. 할매가 그런 논개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양 “갠찮다. 깊숙이 잘 묻어 놨잉께 짐승이 파내지도 않고 바람이 불어도 춥지도 않을 끼고 비가 와도 젖지 않을 끼다. 얼렁 내리가자.” 하며 등을 밀었다. 논개는 눈물 반 콧물 반으로 줄줄이 타고 내리는 눈물을 바른 손등으로 쓱 문지르고는 휘청휘청 산을 내려왔다.

동네에 이르러 송달이 아버지와 백정이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할매와 섭냄이는 다시 논개의 셋방까지 따라와 방문을 활짝 열고 방 청소를 깨끗이 해 주었다.

“고리짝에 니 오매 옷이 올매나 있는지 모리겄다마는 다 태워 삐리라. 깔던 요판도 태워 삐리라. 병든 오매가 덮고 입던 옷이라 불살라 버려야 하지만, 또 니가 오매 옷 볼 적마다 생각할까 봐서 그란다. 그라고 메칠간은 왼손에 물 넣으면 안 된다. 아픈 거이 마이 가셨다는 거 보모 손까락은 인자 붙은 기다. 단지에 곡식도 좀 들어 있고 한께 을매간 혼자 지내라. 나도 송달이 아배 오매하고 니 문제를 이논 좀 해 볼텐께.”

논개는 할매가 자기의 거취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엄마 없는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러나 할매에게 계속 짐을 지워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 마이소예. 지 혼자 살아갈 수 있습니더.”

“니가 으낙 야무진께 묵을 꺼만 있으모 살아는 가겄지마는, 오데, 묵는 거뿐이더나.”

할매는 한숨을 내리쉬면서 섭냄이를 보고 논개가 사흘간쯤 먹을 죽을 좀 끓여 주라고 이르고는 저녁에 다시 오겠다며 자기 집으로 돌아 갔다.

“점백이 할매는 돌아가시모 진짜로 극락 가실 끼다! 동네 구진일은 다 쪼차댕기문서 간섭을 하시니께. 백정이 집 백치 딸한테도 불쌍타고 개떡도 갖다주고 서답도 만들어 주고 그랬다 카더라.”

섭냄이가 종알거렸다.

“나라에서 상 내리야 될 할맨 기라! 할매 안 계싰으모 우리 옴마 누가 묻어 주었을꼬 싶은 게 등짝에 찬바람이 쌩한 기라.”

논개가 새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섭냄이가 반짝 웃었다.

“할매가 와 그라는지 아나? 궁디에 짝 퍼진 점 땜에 그란다 쿠더라. 남을 마이 도와조야 점독이 풀리서 오래 산다 카는 기라. 안 그라모 점독이 몸띠에 퍼져서 일찍 죽는다 카더라꼬.”

벨소리가 다 많다. 점이 병이 아닌데 독은 무신 독이고? 할매 맘씨가 좋아서 그렇제. “논개야, 니 할매 궁디에 있는 점 봤나?” “몬 봤다.” “나는 작년 여름에 또랑에서 목감다가 할매 궁디를 봤는데, 새파란 점이 궁디 두 쪽에 호박 이파리맨키로 쫙 깔렸더라꼬, 히히히,”

“엔가이 재미도 있겄다. 그란께 ‘점백이 할매’ 아니가.”

그때였다. 안집의 창기 아버지가 큼큼 기침과 함께 셋방 앞에서 논개를 찾았다. 논개가 얼른 일어나 방문을 열고 쪽마루로 나간다.

“너 오매, 잘 묻었나? 내가 일찍 밭에 나갔다 왔더이마는….”

“예, 선학산에 묻었습니더. 송달이 아부지하고 백정이 아재하고 묻어 주셨십니더.”

“그랬더나. 그라모오….”

창기 아버지가 조금은 미안해하는 얼굴이 되면서 무슨 말인가를 더 이으려고 했다.

그러자 바로 그때 창기 오매가 안채에서 바쁘게 돌아 나오며 창기 아버지의 말을 잘랐다.

“그래, 점백이 할매가 니 온제 데리간다 카더노? 우리는, 이 방 어서 곤치서 써야 한께네.”

논개는 당황했다. 아니 낙담했다. 오매를 산에 묻고 온 바로 당일에 이 방을 비워 주어야 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저, 아재, 아지매. 메칠만 더 있게 해 주모 안 될까예? 할매가 지르데꼬 갈는지도 잘 모리겠고, 메칠만 더 있게 해 주모 지가 방도를 구, 구해 볼께예.”

논개는 얼굴이 새하얘져서 창기 오매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점백이 할매가 니 데리간다꼬 안 하더나? 오늘이라도 니가 할매 집으로 가모 될 꺼 아이가? 우리는 낼부터 이 방 수리할 끼다.”

그때, 섭냄이가 울음을 떠트리며 논개 앞을 막아서듯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지매, 우째 이러십니꺼? 논개 어무이 어제 죽고 오늘 묻어 놓고 왔심더. 아즉 죽은 사람 옷도 몬 태우고, 논개 손도 저리 아파서 꼼짝을 몬하는데, 오데로 나가라 캅니꺼? 아지매, 아재요, 그라시지 마이소 엉엉.”

“이 가시나는 머꼬? 니는 너거 집에 가서 밥이나 처무라. 아까 니 오매가 니 머리끄댕이 끌고 간다꼬 찾아왔더라. 그래, 그라모 되겄네. 논개가 그리 좋으모 섭냄이 너거 집에 데꼬 가서 살모 되겄네.”

창기 아버지가 섭냄이에게 삿대질을 하는 창기 오매의 팔을 잡아 내리고는, 새하얗게 질려 떨고 있는 논개를 보고 말했다.

“니를 당장 나가라는 거는 아이고, 점백이 할매가 니를 온제 데리간다고 했는지 그거를 물어보는 기다. 하기사, 할매도 금방이야 우째 니를 데리가겄노. 송달이 아배 오매 말도 들어 봐야 될 꺼이까네. 니, 일가친척을 찾으모 좋을 낀데. 우쨌든가, 메칠은 더 있어도 된다.”

창기 아버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창기 오매가 남편을 흘겨보며 짜증을 냈다.

“참말로 내가 이녁 땜에 몬 살겄소. 그라모 할매가 안 데리고 가모 기냥 온제까지 놔둘 끼요? 인정사정 볼 꺼 없다고 그렇게도 말했는데 자꾸 와 이라는 기요? 나는 메칠을 더 있게 안 하겄소! 할매 집이 아이모 섭냄이가 데리가든가, 아니모 강 진사 댁에 말해서 델꼬 가든가 하모 될 께 아니요?”

“시끄럽다!”

창기 아버지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논개는 쿵쿵 뛰는 심장께를 오른손으로 누르고 눈물이 그렁그렁한채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야았다. 뭔지 모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몸뚱이가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렸다.

“아, 아재, 아지매. 그, 그라모. 오, 오늘 하루만 더 있게 해 주시소 내, 내일은 나가겄심더.”

논개의 몸도 음성도 심하게 떨렸다.

“논개야, 니 오데로 갈라꼬? 갈 데도 읎는데, 오디로 갈라꼬?”

섭냄이가 와락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해라. 낼은 방을 말끔하게 비워 내라. 이불이고 궤짝이고 옷 가지고 다 들내고, 정짓간의 솥이고, 그릇이고, 나무도 다 들내라. 펫병 묻은 살림살이 징그럽고 무섭고 더럽다.”

창기 오매는 독기 서린 낯빛을 하고 거침없이 말을 뱉고는 창기 아버지의 팔을 붙잡았다.

“집으로 들어가입시더, 동정은 금물이라꼬 내가 몇 번이나 말 안 했습니꺼? 야박한 거 같애도 끊을 때 야멸차게 끊어 삐리야 나중에 후회 한 합니더, 갈 데 엄스모, 강 진사 댁에 가겄지예. 그 집 영감마님이 논개를 몸종으로 탐낸다는 말, 들었습니더.”

창기 오매가 창기 아버지의 등을 안채 쪽으로 떠밀다시피 하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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