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오기요마사의 젊은 포로획득 영천대작전
황석역사연구소장 박선호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조선인을 말살시키는 침략목적은 임진전쟁이나 정유전쟁이나 동일하다. 그러나 정유전쟁에서는 더하여 조선사람 코 3개를 벤 후에는 포로를 잡아서 팔고 돈을 벌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임진전쟁에서 겨우 목숨만 건져 돌아갔으나 풍신수길의 논공행상이 없자 정유전쟁에서 살아서 돌아간다고 해도 논공행상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그들은 장군이나 병사나 조선 사람의 코를 베는데 집착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투 중 일본군은 조선인과 명나라의 군인은 물론, 전사한 동료나 부상자들의 코까지도 무자비하게 베어 일본군 스스로가 궤멸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거의 모든 부대장들이 출동한 병력의 3배의 코베기 목표를 모두 채웠다. 특히 가도오기요마사 같은 경우는 황석산성에서 본인의 부상으로 부대교체를 당하여 전투를 할 수도 없었고 코를 베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자 부하들의 원성이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기도오는 연합군을 경상도로 유인하는 양동작전을 하면서 청주- 진천- 청산- 상주- 영천- 울산으로 이동하면서 상주에 이를 때까지 3만개의 코베기 부대목표를 채운 다음 9월29일 영천에서 노예로서 가장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젊은 포로를 잡는 대대적인 청년포획작전을 전개하여 부하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고 구마모토 성을 쌓는데 일조를 했다.

남원성에서 좌군전체가 벤 코가 총 3,726개인데, 황석산성에 참전한 일본장수들이 보고한 코베기보고서 중 출처가 불분명한 코가 무려 40,799개로 남원성의 열배가 넘는 것으로 보아 황석산성에 참전한 부대장들은 코를 베어 돈벌이를 하는 데에 엄청난 집착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정유전쟁 기간 중 일본군은 조선 사람의 코 185,738개 명나라군 코 29,014개 총 214,752개의 코를 베고 잡은 포로는 총 214,752개*1인 3개 = 71,584명으로 이것은 일본군들이 포로를 잡아 장사꾼들에게 팔고 돈을 받은 조선인 포로의 최소 숫자다. 누구든지 3개의 코를 벤 후, 잡을 수 있는 포로의 숫자는 제한이 없었으니 쇠사슬 새끼줄에 꿰어 짐승처럼 끌려간 조선인은 얼마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214,752개의 코 중에는 일본 군인들의 코가 상당한 분량으로 4만〜5만개는 충분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동료들의 코가 돈벌이 대상이 되어 죽은 자는 일본군인데 이들 대신 포로가 된 자들은 조선인으로 이들은 유럽의 각 지역으로 노예로 팔려가서 「한복 입은 조선청년」은 루벤스와 같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프랑스화가의 그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이탈리아 꼬레아 성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상품의 가치가 가장 높았던 젊은 포로는 출신지역이 대부분 경북영천이 고향이다. 백성에 대한 군주의 배반은 그것이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백성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사례가 없는 잔인한 코베기는 일본인들도 인간인 이상 부끄럽고 비도덕적인 사실에 분노하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집권하자마자 바로 코무덤(鼻塚)은 귀무덤(耳塚)으로 그 이름을 바꾸어 버렸다. 그 코무덤은 귀무덤이 되어 일본 동경 동쪽 국립박물관 뒤 방광사(方廣寺)와 풍국신사(豊國神社) 건너편에 방치되고 있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