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논설위원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가뭄에 단비 같은 기사였다.

며칠 전 국내 유수 모일간지에서 부산교통 조 옥환 대표 관련기사를 우연히 보게 됐다

평생 운수업을 해 번 수백억 원을 남명 조식 선생의 선양사업에 쾌척 했다는 얘기였다.

마침 같은 고향사람의 미담이어선지 더 반갑고 뭉클했다.

지리산 기슭에서 장작을 내다팔던 소년 조옥환은 여기서 만든 몫 돈을 밑천삼아 6,25직후 군용트럭 한 대로 운수업을 시작했다. ‘남보다 싸게, 남보다 빨리‘를 모토로 내건 사업은 날개를 달았고 지금은 경남 진주를 중심으로 시내·외 버스 400대를 굴리는 중견기업이 됐다. 그의 외도(?)가 없었다면 지금 보다 훨씬 큰 기업을 키워냈을지 모른다.

“남명 조식은 민족의 스승, 몇 백 억 썼지만 뿌듯해요”

올해 87세. 조용히 세상을 정리할 나이에도 그의 남명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현재 남명학진흥재단 이사장이기도인 한 그는 남명을 기리는 일이라면 40년 넘게 발 벗고 나섰다. 2012년 서울대에 ‘남명학시민연구기금’ 5억 원을 낸 것을 비롯, 경상대 남명학관, 산청 한국선비문화연구원 건립, 귀중한 남명자료 수집 등에 수백억 원을 들였다.

조대표는 사재를 털어 450년 전의 인물 남명 조식의 선양사업에 왜 그토록 집착한 것일까?

남명 조식(1501-1572)은 조선 중기 중중에서 인종과 명종, 선조 때까지 활약한 실천성리학의 대가이다. 퇴계 이황과는 우연히도 같은 해 태어나 2년 차이로 유명을 달리한 한국 성리학의 쌍벽으로 ‘좌 퇴계 우 남명’으로 불린다. 퇴계선생과는 달리 그는 평생 벼슬을 마다하고 향리에서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당시 이론에 매몰된 성리학의 편협성을 지적하며 민본과 실천을 강조했다. 남명사상의 요체는 ‘경의사상’이다. 경은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이요, 의는 학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학문을 통해 깨달은 바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이런 그의 영향을 받은 후학 중 곽재우, 정인홍, 김천일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런 일화가 있다. 남명은 외출할 때면 두루마기에 항상 성성자란 방울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나는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들으며 ‘항상 깨어 있으라’는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출세를 멀리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지만 나라정치가 올바르지 못할 때는 단칼 같은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를 이를 때면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 그 유명한 ‘단성소’이다. 1555년 명종이 단성현감(지금의 군수)으로 제수하자 사직을 청하며 올린 상소문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은 12세의 명종이 즉위하고 모후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던 시절이다.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과 그의 첩 정난정이 국정을 쥐락펴락하고, 왜구의 잦은 침범으로 삼남지방 민초의 삶은 극도로 피폐한데다 임꺽정의 난으로 민심 또한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없어졌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버렸습니다. (중략) 자전(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으시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단지 선왕의 한낱 외로운 후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정왕후를 ‘과부’로 임금을 ‘고아’로 묘사한 상소문에 궐은 벌집이 됐으나 ‘언로는 열려 있어야 한다’는 대신들의 간청에 왕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벼슬을 내리는 왕에게 감읍인사 대신 죽음을 무릎 쓰고 실정을 질타한 우국충정과 강골정신,늘 깨어있도록 방울을 달고 다녔던 실천의지. 그의 혼이 수백 년이 지난 오늘에 더 뚜렷이 쟁쟁거리는 것은 지금 이 땅에 주는 시사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블롬버그 통신 기사를 인용, “문대통령이 더 이상 ‘김정은의 대변인’이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는 야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을 저지 하다 못해 여당은 국가원수모독죄로 처벌 운운한다. 흠집투성이로 자진사퇴가 정답임에도 20번 넘도록 ‘국민에 죄송’을 읊조리며, 장관직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 2기내각의 후보들. 내가 이뤄낸 것은 없이 매 맞을 일 있을 때마다 뻑 하면 내뱉는 현 집권층의 ‘지난정부 타령’도 너무나 식상하다. “권력과 거리를 두고 민생의 고통을 살피면서 직언하는 지식인이 그립다“는 조대표의 바램처럼 우리가 나라의 큰 스승 남명의 ‘단성소’를 다시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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