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건강 이정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지리산 북쪽의 너른 평야에 자리한 실상사實相寺 약사전 앞마당은 평탄하고 너른 데다 비교적 경내의 다른 장소에 비해 한적한 곳으로서 죽염을 제조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1986년 병인년丙寅年 가을이 깊어가는 11월의 어느 날, 아버지 인산은 드럼통 20여 개를 구해다가 위 뚜껑을 제거하고 아래 부위를 부엌의 아궁이 모양으로 도려낸 다음 그 위에 철봉을 교차시켜 그물망처럼 만든 둥근 판 형태의 격자를 올려 ‘죽염 소성로’, 즉 죽염 굽는 제조 기구를 만들었다.

약사전 앞마당에 그 죽염 소성로들을 두 줄로 죽 세워 놓고 대나무를 마디마디 잘라서 천일염을 다져넣은 뒤 황토 반죽으로 그 입구를 봉한, 소금 담긴 대통을 세로로 가득 채운 다음 미리 준비한 소나무 장작에 불을 붙여 죽염 굽는 작업을 시작했다. 함양과 남원 산내면 사람들 20여 명이 동참, 사오십 대로 구성된 남성 일꾼들은 대나무를 한쪽은 뚫리고 한쪽은 막히도록 마디마디 자르는 한편 소나무를 전기톱으로 토막 낸 뒤 도끼질을 해 장작을 만들어 절 담장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오륙십 대로 구성된 여성 일꾼들은 절단된 대나무 통 속에 천일염을 다져 넣고 그 입구를 황토 반죽으로 봉한 다음 죽염 소성로 안에 세로로 쟁여 넣어 소성로에 가득 차면 그 아궁이 안의 소나무 장작에 불을 붙여 1차 굽는 공정에 들어갔다.

소나무 장작의 불이 대나무로 옮아붙은 뒤 스무 개의 소성로에서 일제히 불기둥이 공중으로 솟구치며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고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주변을 에워쌌다. 현장에서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벌겋게 타오르는 불기둥은 보기 드문 볼거리이지만 그 광경을 보려면 자욱한 연기로 인해 도저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한 시간 남짓 장관을 연출하던 시뻘건 불기둥이 사그라지면서 소성로 안의 대나무는 모조리 불에 타서약간의 재를 남긴 뒤 사라지고 소금은 서로 엉겨 붙어 기둥 모양으로 남는데, 불을 받아들여 벌건 상태를 한동안 유지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빛이 줄어들면서 불기운이 서서히 식는다. 소금을 다져 넣는 작업은 대부분 낮에 이루어지고 불을 때는 작업은 주로 밤에 하게 되는데 소성로 안에 벌건 소금 기둥의 불기운이 완전히 사그라진 것을 확인한 뒤에 작업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아버지 인산은 최종적으로 불이 완전히 소멸한 것을 재차 면밀하게 확인한 후 현장을 떠났다.

이튿날 이른 아침, 다시 작업자들이 그곳으로 나와서 소금 기둥을 꺼내 쇠 절구에 넣고 빻는 작업을 통해 잘게 분쇄한 다음 그것을 대나무 통에 다져 넣고 황토 반죽으로 입구를 봉한 뒤 소성로 안에 쟁여 넣고 소나무 장작에 불을 붙여 2차 굽는 공정에 돌입, 똑같은 공정을 반복하면서 2회 굽는 작업을 마친 뒤 다시 3회 굽는 작업을 진행할 무렵 실상사 약사전의 약사여래철불에 관한 기이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 무렵의 어느 날, 심야 시간대에 ‘약사여래철불로 부터 신령스러운 빛이 발현되기 시작하여 하늘로 높이 솟구치며 한동안 밤하늘을 훤히 밝히다가 사라졌다’는 게 소문의 요지였고 그 이야기는 입소문을 타고 삽시간에 퍼졌으며 급기야 한 지역신문에 보도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실상사 약사전 약사여래철불좌상은 실상사 2대 조사인 수철국사秀徹國師가 4,000여 근의 쇠를 녹여 조성한 것으로 전해오는데 높이가 2.7m이며 보물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그 좌향이 일본의 후지산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지리산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땅바닥에 그대로 모셔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유는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지리산에 뭉친 우리나라의 정기精氣와 지기地氣가 바다 건너 일본 땅 후지산까지 뻗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땅바닥에 거대한 철불을 모셔 그 지맥을 누르고 있도록 했다 한다.

근세에 들어와 이 철불은 여러 이적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국가에 중차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고 빛을 발하는 영험을 보인다는 게 이야기의 요지이다. 당시 주지 혜광慧光 스님은 “얼굴과 가슴에서 땀을 흘리는 모습을 수차례 보았다”라고 증언한 바 있으며, 그 밖에도 지난 90년 정월과 88년 올림픽개최 전에도, 광복되기 며칠 전에도 땀을 흘리거나 발광하는 이적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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