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닦는다

시인 김철호

 

안경을 닦는다

실금이 간 사이 사이에 지문이 묻어 있다

지문을 모두 지우고 나면

초점과 초점 사이를 관통해

렌즈가 눈을 뜬다

선명해질수록 이면의 모습들은

더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안경 너머 빛이 닿지 않는 더 깊은 곳에서는

어떤 계절이 이 밤을 앓고 있나

네온사인이 밝힐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은

어디로 흘러가서 사라지나

안경을 닦는다

보이지 않는 마음 구석까지

실금이 간 사이사이 내가 놓쳐버린 수많은

순간들이 아직 거기 있다.

2017년《문학공간》신인문학상, 시인 등단, 진주문인협회원, 수의학박사, 현 시간문학회 회장, 경상남도동물위생시험소남부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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