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건강이정표

아버지 인산은 죽염 제조 작업을 중지하고 제조공정 중에 있는 죽염과 대나무, 소나무, 천일염 등의 반제품, 원재료 등을 모두 수거하여 대형 트럭에 분산 적재한 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음 죽염 제조 장소를 물색했다. 가는 곳마다 ‘우리 동네에서 불을 때 공해를 배출하면서 뭔가의 작업을 하면 절대 안 된다’며 다 같이 극력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죽염 작업 시에 불을 땔 때 그 주된 연료가 천연물인 소나무 장작과 대나무인 만큼 다소 연소 과정에서 연기가 발생하더라도 대기를 오염시키고 인체에 해를 끼칠 공해 물질이 배출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사실에 근거해 이야기했으나 “인체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주민들은 어쨌든 연기가 싫으므로 불을 때는 작업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거부했다.

아버지 인산과 나는 갑자기 닥친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 극복하기 위해 대형 트럭에 죽염소성로, 반제품 죽염, 소금, 대나무, 소나무 장작 등을 싣고서 죽염 제조 작업을 해도 좋을지에 대해 주민들의 의사를 타진하면서 이곳저곳,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하며 계속 죽염 제조 적지를 찾아서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함양읍 죽림리 산 194-2 임야를 필두로 약 13정보에 달하는 마을 공동 축산의 본거지인 임간林間 목장의 임갑상林甲相 대표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지금까지의 자초지종 사정 이야기를 듣더니 4만 3,000여 평에 달하는 임간 목장을 흔쾌히 죽염제조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제공하겠다고 제의했고 내일부터라도 당장 작업을 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함양 죽림리 임간 목장은 그 마을 스무 가구 주민이 축산계畜産契를 결성해 경상남도로부터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아 2만 5,000여 평의 초지를 조성하고 송아지 100여 마리를 들여와 공동으로 기르던 곳이었는데 일명 ‘전경환 소 파동’이라 불리던 호주산 소 수입 사건으로 소 값이 폭락해 축산계는 와해되고 상당수 계원은 손해를 넘어 빚더미에 앉게 되는 사태를 맞게 되어 그 이후 그저 황량한 풀밭으로 변해버린 쓸쓸한 땅이었다.

뒷날 소문으로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무렵 설상가상으로 산주 임씨의 초가에 어느 날 깊은 밤, 대호大虎 두 마리가 내려와 으르렁거리는 바람에 온 가족이 불안에 떨었고 그 집에서 기르던 개 두 마리가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 죽는 사태가 발생해 임씨 가족은 함양읍내로 이사하였고 50대의 산주 임씨와 80대의 노부老父만이 농장을 지키고 있던 차였다.

그곳에서 죽염을 구우라고 한 산주 임씨의 제의에 따라 아버지 인산은 소금 등을 실은 트럭을 이끌고 24번 국도에서 겨우 소형차 하나 가까스로 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산길을 따라 2km 남짓 되는 거리, 함양읍 죽림리 삼봉산의 해발 500여 미터 지점에 자리한 임간 목장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다시금 실상사에서 굽다 만, 죽염 소성로들을 두 줄로 죽 세워 놓고 죽염 굽는 작업을 재개하였다.

매주 토요일 오전까지 신문사 일을 마무리하고 오후에 서울에서 출발해 저녁 무렵 함양 죽염 제조 현장을 찾으면 아버지 인산은 온 산을 휘감는 희뿌연 연기 속에 여러 공정의 작업을 일일이 지켜보고 지시하면서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분간하기 어려운 자욱한 연기 속에 아버지를 발견하고 아버지께 다가가 “저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아버지는 힐끗 돌아보면서 “응, 왔냐?”라고 짤막하게 응대하고 축사 한쪽에 자리한 두 평 남짓 되는 쪽방으로 가서 앉았다.

한동안 매운 연기로 인해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다소 적응이 돼 그제야 그동안 진행해 온 일들, 서울에서의 강연회 일정, 죽염 제조 허가신청 절차 등에 관해 설명한 뒤 죽염 제조 작업의 진행 상황 등에 대해 여쭈었다. “응, 오늘 여섯 번째 굽는 작업을 시작했느니라”라는 간결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신약神藥》 출간 이후 제주도 서귀포 한라산기슭의 한 암자에 머무는 조백간曺白艮 선생을 비롯해 덥수룩한 턱수염을 흩날리며 다니는 이성웅李聖雄 선생, 인사동 다기茶器 매장을 운영하는 안정태安貞泰 여사, 서예의 대가 여초如初 김응현金應鉉 선생 등 그 책을 보고 감동한 이들 가운데 30여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민속신약연구회’를 결성한 바 있다.

이 연구회는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선생을 종신 회장으로 추대하여 인산 선생의 혜안慧眼과 경험으로 정립한 독창적 신의학 이론과 그 방약方藥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한편 다 같이 앞장서서 실천할 것을 천명하고 그 첫 번째 활동의 하나로 죽염 제조 작업에 물심양면으로 협력하고 동참하기로 뜻을 모아 틈나는 대로 현장을 방문해 견학도 하고 일부 사람은 작업을 거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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