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화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
남강문학협회 회원

벚꽃 피는 봄날에 젊은 날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가득한 일본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어 했던 주은래는 유학시절 후 60년 동안 그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1970년 세상을 떠났다.

내게도 진주는 언제나 그렇게 소중한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다행히 요즘은 교통사정이 좋아져서 1년에 서너 번은 다녀온다. 행사만 참석하고 급히 돌아오는 바람에 아쉬운 마음 가득한 채로 오기 일쑤지만 진주에 머물고 있을 때도 그대 곁에 있어도 벌써 그대가 그립다는 말이 실감나게 설레고 감질 난다.

어머니 기일에도 당일 고속버스로 내려가 제사를 모시고 다음날 다시 돌아오는 강행군이지만 산소에 다녀오다 보면 목련과 매화는 이미 곱게 피어 있어 고향의 정취를 만끽하게 된다. 며칠 여유가 있으면 진달래, 개나리 그리고 벚꽃의 만개도 즐기겠다 싶어 아쉽기도 하지만 생각만 해도 나를 부풀게 하는 고향을 이렇게 쉽게 오갈 수 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아름다운 여인과 정글이 묘하게 배치된 앙리 루소의 작품 < 꿈 >은 루소가 말년에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의 두 가지 꿈 (어린 시절 처음으로 그의 가슴을 뛰게 했던 소꿉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것과 남국의 아마존 밀림여행)을 캔버스 위에 꽃피운 것이라고 한다.

루소는 미술학교의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고 정글 한번 구경하지 못했지만 평생 동경한 아마존 밀림을 파리의 식물원, 동물원 그리고 공원 등에서의 스켓치와 상상력만으로 독창적이고 예술혼이 넘치게 묘사해 낸 것이다.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에서 둥지를 틀고 50년이 넘게 출향 진주시민의 삶을 살아온 내겐 루소가 평생을 간직했던 꿈이 그대로 마음에 와 닿는다.

정년퇴임 후도 계속되는 여러 일들과 부득이한 출강 등으로 나의 가족사와 이제는 화석이 되어버린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진주로의 귀향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다.

마치 루소가 변호사 보조원과 말단 세관원으로서의 일상에 쫒겨 평생 파리를 떠나지 못했던 것처럼 나 또한 이제 끝! 하고 손을 털지 못하고 관성에 몸을 맡기고 살고 있다.

나뿐아니라 많은 재경 출향 진주시민들은 대개 비슷한 심정이지 싶다. 우리는 핑계만 있으면 진주에 가고 싶어 한다. 다녀올 때는 꼭 방아 잎과 삶은 땅콩이나 수복당 꿀 빵 등을 사와서 옛날 만복당의 찐빵위에 끼얹어 먹던 따끈 따끈한 단팥죽의 맛을 추억하며 친구들과 나누어 먹곤 한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 꿀 빵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여고시절의 우정과 꿈이 그대로 연상되는 사랑의 묘약이고 마법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진주가 그저 논개와 함께 연상되는 작은 지방도시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천년 고도이다.

한 때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 양상국이 < 그래 나 촌에서 온 촌놈이다. 이래 뵈도 마음만은 턱별시야 > 하고 외칠 때마다 그래 나 진주사람이다. 내 고향은 서울특별시보다 더 유서 깊고 정갈한 곳이라고 나도 함께 외치곤 했다. 몸은 아직 서울에 있지만 마음에 언젠가 돌아갈 고향을 품고 사는 우리 출향 진주시민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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