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지연

“영감마님이 논개를 몸종으로 탐낸다 캤나? 종놈 종자가 아닌데, 종이 되모 안 되제.”

“논개가 당신 딸이오? 종이 되든가 말든가 우리하고 무신 상관이요.

지 년이 복이 있어서 누가 수양딸 삼아 가모 가매 타는 기고, 아니모 종년이나 기생 되는 거밖에 더 있겄소. 일가친척은 씨알맹이도 읎는거 같고.“

“목소리 좀 낮차라. 쟈들 듣겄다.”

“들으모 우떻소?”

물론 논개는 안채로 들어가며 큰 소리로 뱉어 대는 창기 오매의 말을 다 들었다.

그런데, 때맞추어 섭냄이 오매가 셋방 앞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다짜고짜 섭냄이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이 문디가시나야, 여가 너거 집이가? 엊저녁에 나가서 여서 자빠져 자고도 집에 안 들어오모 우쩌자는 거고, 이년아.”

“아야야, 옴마 아푸다. 머리 좀 놔라. 오, 옴마, 논개 말이다. 우리집에서 살모 안 되나? 아, 아야, 아야야.”

섭냄이가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도 오매에게 논개의 거취를 부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끝으로 찢어지는 비명만 내질렀을 뿐이다.

“이 가시나가 미칬나? 곡식이 썩드나? 내가 딸년들이 없어서 오데서 굴러온 종잔지도 모리는 펫벵쟁이 딸년 가시나글 데꼬 살까? 니년이 요런 소리 씨부릴 거 같아서 내가 새복에도 왔던 기다.

“아야야, 오, 옴마, 옴마, 아푸다아.”

제 오매에게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 나가며 비명을 질러 대는 섭냄이의 소리도 삽짝 밖으로 차차 사라져 갔다. 갑자기 사방이 적막해 졌다. 절간처럼 조용해졌다.

논개는 다리며 몸뚱이며 전신이 계속 후들후들 떨리면서 주저앉고 싶었다. 어지럽기도 했다. 논개는 댓돌 위의 기둥을 붙잡고 간신히 쪽마루 위에 걸터앉는다. 머릿속이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쿵쿵 뛰던 심장도 차츰 잦아들고 어지러움도 가셨다. 논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자신에게 다짐을 둔다. 넓고 넓은 이 세상에 자기를 생각해 줄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거듭 인식시킨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자 창기 오매가 떠벌리던 ‘강진사 댁 몸종’ 운운하던 말이 제일 먼저 논개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논개는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와, 종이 된다 말이고? 싫다, 싫다! 코뚜레 낀 소맨키로 평생을 상전 위해서 일만 해 주고 사는 종년이, 내가 와, 와, 된다 말이고? 싫다!”

논개는 바로 전날 아침녘에 셋방에 들렀던 강 진사 댁 노비를 떠올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이어 뭔가 석연찮은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강진사 댁의 그 늙은 여종이 왔다 간후 오매의 병이 더 위중해졌던 것 같고, 창기 오매가 말하던 ‘강 진사 댁 몸종’ 운운하던 말과 노비의 방문이 연관이 있을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 아지매가 옴마한테 나를 몸종으로 달라고 왔던 기라. 그런 기라!

그래서 옴마의 가슴 피가 다 터진 기라. 노랭이 강진사 집에서, 몬 받아 간 곡식 갖다주로 일부러 집에꺼정 갖고 올 턱이 없는 기라.“

논개는 눈을 한곳에 박고 혼자 중얼거렸다. 물론 오매의 병이 오래되었고, 최근에는 더 악화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강 진사댁에서 일을 하다 여러 번 쓰러져서 그저께는 기어이 중간에 집으로 돌아오고, 어저께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여 일을 나가지 못했던 것이지만, 그러나 너무나 갑자기 숨이 끊어져 버린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종년으로 내놓으라 칸께네 기가 콱 질렸을 끼라. 내가 야생말 같은께, 넘 종살이는 죽어도 몬할 썽질인 거를 안께네. 내 썽질뿐이 아니고, 넘우 집 일에 골병든 옴마가 자슥까지 일에 골병들게 하고 싶지 않은 기 소원이었은께. 씨내림이 되는 종법을 사람법이 아니라믄서 옴마가 을매나 미워했는데…. 강 진사 댁 그 아지매가 틀림엄씨 무신 소린가를 옴마한테 한 기라.”

그러나 논개는 그런 문제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었다. 당장 내일 창기 오매에게 방을 비워 주겠다고 말해 버렸기 때문이다. 당금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부터 꺼야 한다는 불안감이 뒤통수를 쳐 왔던 것이다.

“산으로 갈밖에…. 산 아니모 오데로 가겄노?”

창기 오매에게 하룻밤만 더 지내게 해 달라고 빌었던 것은 당장 쫒아내려 하는 서슬이 무섭기도 했지만, 문득 선학산 오매 무덤 가까운 어느 곳으로 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소나무가 많은 중봉 쪽에 천연으로 생긴 바위틈 사이로 작은 굴이 있는 것을 논개는 알고 있었다. 산굴에서 살기에는 아침저녁으로 아직은 차가운 날씨였지만 달리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손가락이 다 나으믄 나뭇가지를 엮어서 굴문을 만들고…. 죽으라는 법은 없인께….”

논개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막막하고 황당하던 심정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시장기도 왔다. 먹어야 산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면서 논개는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 정짓간 솥 바닥에 남은 식은 죽을 바가지로 사발에 긁어 담았다. 왼손을 조심하면서 한 손으로 하는 일이 여간 불편하고 힘들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잘렸던 손가락의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왼팔의 겨드랑이며 가슴까지 당기어 아프고 힘이 들었다.

“쪼깬한 손까락 하나 다쳤을 뿐인데 온몸이 다 뻩질리고 땡기네. 이래 갖고 우짜꼬? 옴마 이불도 옷도 태워 주고, 산으로 옹기솥이랑 사발이랑 숟가락도 옮기 갈 낀데, 이렇기 아파싸서 우짜노…?”

논개는 한숨과 함께 식은 죽을 입 속으로 퍼 넣으면서 끊임없이 혼잣말을 했다.

“섭냄이 순검이가 좀 거들어 주모 될 낀데, 순검이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섭냄이는 지 옴마한테 머리끄댕이 잡혀 갔으니 을매나 뚜디리 맞을 낀지? 섭냄이 옴마는 와 그리 나를 미워하는지? 하기사 섭냄이가 눈만 떠모 내한테로 쫓아오니께, 썽도 날 끼라.”

점백이 할매가 논개에게 다시 들른 것은 저물녘이었다. 할매의 얼굴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논개야, 메칠만 더 기다리거래이. 송달이 오매가 내 맘 같지가 않구나.”

점백이 할매가 창기 오매에게 논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했었지만, 실제 그 일이 쉽지 않을 것임은 논개도 알고 있었다. 그 집은 할매의 맏손자인 송달이를 비롯하여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다섯 명이나 되었고, 논밭 두서너 마지기로 입에 풀칠을 근근히 하는 살림인데다, 송달이 오매는 할매의 동네 간섭을 언제나 못마땅해하여 고부간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갠찮습니더, 할매요. 지 극정은 마시소. 보리 숭년에 묵는 입이 하나라도 덜어야 할 판인데, 지가 우찌 도 끼겠습니꺼?”

점백이 할매가 뭐라고 다시 반응을 보리려 했을 때,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뜻밖에도 강 진사 댁의 노비였다.

“논개야, 글씨 이 일을 우짜모 좋노? 어지 아츰꺼지 멀쩡하던 니 오매가 우째 이렇기 죽어 삐맀다 말이고. 아이고 접백이 할매도 와 기시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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