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순자
에세이21등단.
한국문인협회, 수필가협회 회원
남강문학협회 회원

“언니야 안있나 그쟈, 올해는 날이 더버서 그런지 풍개가 안시고 참 달다. 언니가 좋아 하는 복숭 좀 하고 풍개하고 부칬는데 묵어봐.”“에나 달더나?”“에나다.”동생과 전화로 통화한 한 내용이다. 우리 고향은 자두를 풍개라고 하고 복숭아를 복숭이라고 한다. 동생은 전화를 하면 첫 마디가 “언니야 안있나 그자”로 시작한다. 들으면서 그 어감에서 번져오는 고향냄새가 정답고 참 푸근하다.

스무 명의 여자들이 모여 식사 하는 자리에 초대되었다. 들어서서 보니 넓은 식탁에 어느 한 분을 중심으로 그 쪽으로만 몰려 앉아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에 앉으며 “넓은 자리 놔두고 한 쪽으로만 왜 이리 쏘물게 앉았노 좀 반타 앉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부드럽지도 않은 내 말에 순간 장내가 이상해 졌다. 그 중에 한 분이 웃으며 오랜만에 고향 말 들어본다며 비어 있는 내 자리 옆으로 와서 내 곁에 앉았다. <쏘물다>는 말을 얼마 만에 듣는지 모르겠다며 반가워했다. 급하면 튀어 나오는 고향 말은 오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를 않는다.

서울 남자와 경상도 아가씨가 진주에서 만나 데이트를 했다 다음에 또 만나자며 남자가 일방적으로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처녀는 “언지예” 하고 싫다는 표현을 했다. 총각은 언제라고 하는 줄 알고 이 달 보름날이라고 했다. 처녀가“오데예”하고 대답하니 만날 장소인줄 알고 남강 철교 밑에서 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언지예>와 <오데예>는 모두 거절 한다는 싫다, 아니다, 라는 진주 말이다. 서울 남자는 언제, 어디에서로 들었으니 헛걸음만 했을 것이 뻔하다. 웃고 넘기기에는 여운을 남기는 경상도의 정겨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오래전에 어느 방송국의 장학퀴즈라는 인기프로가 있었다. 각 지역에서 예심을 거쳐 올라온 주자들은 고향을 대표한 고등학생들이다. 학교의 명예와 고향을 등에 업고 실력을 겨룬다.

문제를 풀어 가는 중에 나온 문제의 정답은 고구마였다. 경남에서 온 학생이 먼저 벨을 눌렀다. “고매” 라고 대답했다. 진행자인 아나운서가“틀렸습니다. 두자가 아니고 석자입니다” 이 학생이 다시 물고매(물고구마)? 생고매(생고구마)? 하고 거듭 답을 말했지만 틀렸다며 방청석으로 문제가 넘어갔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고구마” 라고 대답하는데 진행자는 정답이라고 했다 경남 학생은 억울해서 통탄을 했고 TV를 보던 시청자들의 항의가 드세게 일어났다.

몇 년 전 그 아나운서가 은퇴하여 신문에 칼럼을 썼다. 방송진행자로 근무 할 때 가장 잊혀 지지 않는 일이 바로 이 사건이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사투리가 안겨준 코미디 같은 사건이었지만 사투리의 여운이 남는 장면이다.

많다는 표현을 할 때 푸짐하다 넉넉하다 수북이 쌓여있다. 로 말하면 되는데 내 고향은 그 언어가 복잡하게 들린다. <쌔 빗다> <천지 삐까리다> <항거석이다>라고 한다. 모두. 많다는 뜻을 가진 말이지만 타 지방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 고향의 말을 버리고 어찌 살 수 있을까. <이 문둥아> 한 마디에 담긴 정을 어찌 가늠할 수 있으며 얄밉도록 정이 흠뻑 들어 있는 반갑고 정다운 한 마디를 어느 세상에서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언니야 안있나 그쟈” 고향의 소식을 전해 주는 동생의 전화를 오늘도 기다린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