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지연

“할매, 지 극정 마시소. 지는 올매든지 혼자 살아갈 수 있습니더. 그라고, 오매 이불은 안 태울랍니더. 이불이 한 채 뿐이라서 지가 겨울에 덮을라꼬예.”

“그라던가. 그래도 안 좋은 병을 앓던 사람이 덮던 이불인께, 햇빛에 메칠 널어서 잘 말리야 할 끼다.”

할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노비 말마따나, 있는 집에서 니를 수양딸로 삼아 가모 올매나 좋겄나마는….”

“지는 진짜로 혼자 살아갈 끼라예. 지는 썽질이 못되서 그란지 시집가서 조부모 씨부모 씨누이 씨동생 층층시집 살믄서 아 놓고 키우고, 길쌈하고 농사짓고, 지아비 하늘같이 떠받들고, 평생 큰숨 한 번 몬 쉬고, 손 마를 날 엄씨 종년맨키로 사는 거 싫어예. 백정하고 종년하고 가난뱅이 집 여자는 시집을 가도 사람대접 못 받는다 아입니꺼? 지는, 시집 안 가고 지 혼자 살 끼라예.”

“야아가, 갈수록 태산이네. 여자 본분이 시집가서 어른들 모시고 자식 낳고 키우고 일하는 긴데, 그거를 안 하겄다 카모, 그라모 기생 될끼가?”

시집 안 가겠다는 논개의 말에 점백이 할매가 놀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기생이 머 하는 건지는 잘 모리지만, 평생 구박받으면서 일만 하고 사는 기 아니라모 기생도 될 수 있어예.”

“야가 보래이, 참말로 큰일 내겄네. 기생은 종년이나 백정이나 다 똑 같은 천한 짓거리 하는 천민인 기라, 이것아. 수양딸로 들어갈 자리 있으모 그거 이상 더 좋은 기 엄따. 내가 한번 알아볼 텐께, 니는 손가락이나 얼렁 낫도록 조심하고, 옴마 없다고 울지 말고 독한 맘 묵고 살아야 헌다.”

“알겄십니더. 요판하고 옴마 옷하고 지금 마당에서 태울까예?”

“본래는 봉분 만들어 놓고, 묏가에서 태워야 하는 기지만, 집에서 태워 삐리도 된다. 해가 저물었는데 낼 날 밝으모 태우제.”

“지금 태워 삐릴랍니더. 저녁이 낮보다 더 좋을 꺼 같애예.”

논개는 날이 밝으면 선학산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되고, 또 죽은 사람 소지품 태우는 게 환한 대낮에는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 같아 곧바로 몸을 움직인다. 오매가 토해 낸 핏자국이 여기저기 묻은 묵은 솜의 무거운 요판과, 오매가 입던 옷가지 짚신 등을, 뱀탕을 끓인 마당의 옹기솥을 들어내고 그곳에다 모아서 불을 지폈다. 오매의 베개도 삶아 빨아 놓은 경도를 받던 무명 서답도 함께 때웠다. 마침 살랑살랑 저녁 바람이 불어 그것들은 잘 탔다.

“오매가, 저승에서, 생전에 쓰던 이런 것들을 또 쓸까예?”

논개가 막대기로 타는 물건들을 들어올리면서 할매에게 물어본다.

“나는 모리지. 저승은 안 가 봤인께. 살아 있는 사람덜이 맘 편할라꼬, 아마도 그럴 끼라 믿고 태우는 걸 끼다. 참말로 자알 탄다!”

“옴마 옷궤짝도 요강도 태워 삐릴까예?”

“궤짝은 니가 쓰도 될 낀데, 와?”

“궤짝에 넣을 옷도 읎는데 갖고 다니기 짐만 될 꺼 같거든예.”

“니 옴마도 갖고 가기 힘들 끼다. 요강이나 깨트려서 불 속에 넣고 궤짝은 놧도라.”

“그랄께예. 그라모 궤짝하고 정지에 있는 큰 물독하고는 할매가 가지시소. 구멍 난 쇠솥은 고물로 파시소.”

“오데, 길 떠날 사람맨키로 와 그래쌌노?”

“낼 선학산으로 갈라꼬예.”

“그기 무신 소리고? 옴마 봉분에 간다 말이가?”

“뫼에도 가고, 중봉에 바위굴이 있거든예. 거기서 살랍니더.”

할매가 입을 딱 벌리며 말이 막혀 버린 듯 가만히 있었다.

“그, 거가 오데, 사람 살 데가?”

할매가 간신히 벌린 입을 닫으면서 말했다.

“그라모 우짜겄습니꺼? 갈 데는 없고 안집 아지매는 나가라 카고. 인자 여름이 온께네 갠찮아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거라. 큰 짐승은 엄써도 선학산에 여시가 있다는 말 들었다. 창기 오매가, 낼 나가라 카더나?”

“오늘 나가라 카는 거를, 낼까지 부탁한 깁니더. 갠찮아예 창기 아부지 오매가 이 방에서 그래도 일 년이나 넘게 살게 해 준 기라예.”

“아이구 무서버라. 우짜모 사람 인심이 이랄 수 있다 말이고. 천하에 오갈 데 없는 아를…. 이거를 우짜모 좋노? 섭냄이 집에는 우떨꼬?”

“섭냄이, 아까 지 옴마한테 머리끄댕이 잡혀서 끌려갔습니더. 지하고 맨날 붙어 논께네 섭냄이 옴마가 지를 많이 미버해예. 할매, 지는 갠찮습니더. 낼 굴로 갈 낍니더.”

“그래도 산에는 안 된다. 산에 갈 끼모 우리 송달이 오매가 머라 카던 말던 우리 집으로 가자.”

“아입니더, 절대로 안 갈 낍니더. 지 땜에 식구끼리 맘 상하는 거, 지는 싫어예. 우떤 집에도 안 갈 낍니더. 지 혼자 살 낍니더.”

“니 고집이 쎈 거는 알지마는 그래도 산에는 몬 산다. 어른도 아니고 아가 큰일 난다.”

“할매가 머라 카셔도 지는 갑니더. 옴마가 하늘에서 지를 돌봐 줄 낍니더.”

오매의 피 묻은 요판도 옷가지도 짚신도 훨훨 잘도 탔다. 반쪽 난 사기요강은 불 속에 처박힌 채 엎드려 있었다. 타지 않는 물건인 줄 알면서도 불 속에 던진 것은 생전에 오매가 그토록 끼고 살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불이 서서히 사그라들면서 논개의 마음도 차차 가라앉아 갔다. 산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할매예, 오가리솥에 뱀탕이 그대로 있어예. 옴마가 두 그릇도 몬 묵었어예. 버리기가 아까분데, 할매가 잡술랍니꺼? 지는 배미를 잡아서 끓이기는 했는데, 니꺼해서 묵지는 몬하겄어예.” 논개가 옹기솦 뚜껑을 열어 그 속에 가득 남아 있는 뱀탕을 할매에게 보여 주며 말한다.

“뽀이얀 기 잘도 우러났구나! 느끼해도 몸에는 좋은데 니가 묵지 그라나. 정 몬 묵겠으모, 송달이 아배나 갖다주까?”

“그라이소. 그라고 지가 말씸디린 대로 방 안에 있는 궤짝하고 정짓간에 큰 물독하고 지가 해 놓은 땔나무하고는 할매가 다 가져가시소.

저 무쇠솥은 구멍이 나서 밀가리 반죽으로 임시 땜질하지 않으면 못쓰는 기라서 기냥 버릴라 카는데 할매가 땜질해서 쓰실라면 쓰시고 아니모 고물로 엿이라도 바꾸시소. 지는 저 옹기솥에 밥해 묵을랍니더.“

“니, 참말로, 산에 갈 낀가베?”

“야, 지는 맘 작정하모 합니더.”

“니가 끝꺼지 고집하모 우짜겄노. 하루만 지내보고 살 데가 아니다 싶으모 우리 집으로 오니라. 궤짝하고 큰 짐들은 모두 우리 집에 갖다 놀 텐께 니가 쓸 때는 온제든지 가져가라. 그라고 쪼깨만 더 고생해라. 내가 니를 데불고 갈 사람을 알아볼 텐께.”

“할매, 힘들거로 안 알아봐도 됩니더. 지는 혼자 살 자신 있습니더

예.“

할매는 끝까지 제 주장을 놓지 않는 논개를 건너다보며 딱한 마음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 더 말을 잇지 못한다. 수양딸 자리를 알아본다고는 했지만 사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할매는 다음 날 아침에 오겠다면서, 옹기솥의 뱀탕을 작은 항아리에 옮겨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 논개는 밤을 새다시피 하며 한 손과 두 발을 이용하여 이불과 보리가 들어 있는 곡식 항아리와 옹기솥, 그릇, 숟가락 등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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