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지연

논개는 음성에 힘을 주어 못을 박듯 섭냄이에게 말하고는, 돌아서 산을 뛰어내리기 시작한다.

“같이 몬 살아도, 내가 맨날 산에 올게.” “맨날 오모, 그것이 같이 사는 거랑 똑같제 뭐꼬? 우짜다 한 번씩만 오이라. 참 그리고 너 옥개 엉가, 혼삿날 잡았나?” “응, 잡았다. 초파일 지나서 초아흐렛날 한다 쿠더라! 보름쯤 남았다.” “너 아재형부 될 그 총각이, 요새 너거 집에 왔었나?” “안 왔다. 혼사도 안 올맀는데, 각시 집에 머하러 오겄노.” “각시깜이 보고 싶어서 올 수도 있제.” “그거는 모리제. 어른들만 선을 보고 우리 엉가하고 신랑 될 사람하고는 얼굴도 보지 않았으니께. 각시 될 사람이 우떤 여잔지 보고 싶기도 할 끼라. 그자?”

논개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께 바로 이 산에서 옥개 엉가가 어떤 남자하고 상하는 거를 보았다는 말을 차마 섭냄이에게 할 수 없어 벙어리처럼 말을 삼킨 것이다. “그란데, 그거는 와 묻노?” 섭냄이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아이다. 불각시리 생각이 나서….”

그들은 다시 동네를 가로질러 셋방으로 가서 옹기솥을 비롯한 나머지 물건들을 산으로 또 옮겼다. 그러고 또다시 동네로 내려왔을 때는, 동녘의 먼 산 위로 불그스름한 빛깔과 함께 동이 트기 시작했다. “하이고 다리야, 인자사 날이 샌다. 논개 니는 세 번이나 갔다 왔는데 다리 안 아푸나?” 섭냄이가 쪽마루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으면서 논개를 돌아보았다.

“우째 다리가 안 아푸겄노. 그래도 니가 욕봤다! 그란데, 너 옴마 또 니 잡으로 올까 걱정이다. 너 옴마 잠에서 깨나기 전에 고만 너거 집으로 가 봐라.” 섭냄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순순히 일어났다. “그래야 될 낀갑다. 옴마가 일어났더라도 통시에 똥 누고 왔다 카모 되겄제. 아침 묵고 옴마가 밭에 나가고 나모 또 올게.”

논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묏가에 나둔 짐을 중봉의 바위굴로 옮겨야 될 것을 생각하면 섭냄이가 꼭 있어 주어야 할 것 같았지만, 그네 오매의 서슬 푸른 행동을 생각하면 섭냄이를 또 오라고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섭냄이는 제집으로 돌아간 지 한 시진이 지났을까 했을 때, 검정 무명 수건에 주먹밥 한 덩어리를 싸 가지고 헐레벌떡 다시 달려 왔다. 식구들은 전부 들에 나갔고 자기는 정지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논개가 배고플 것 같아서 남은 밥을 먼저 뭉쳐 왔다고 했다.

“니도 참 오도방정이다! 내가 곡식이 엄써서 방을 못 묵나, 와 그래 쌌노?” 말은 그렇게 했어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밥 덩어리여서인지 대번에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논개는 주먹밥을 별것 아닌 양 심상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면서 소리 죽여 입 안의 침을 삼킨다. 주먹밥이라야 보리쌀과 잘 무른 콩과 수수가 태반이고 쌀알을 듬성듬성 박혀 있었지만, 나물죽이나 물밥에 익숙한 논개로서는 별미인양 흥감스럽게 다가드는 것이었다. 세 차례나 산을 왕복해서인지 오매를 꽁꽁 묻은 어저께와 달리 몹시 시장기도 있었다. 논개는 단숨에 게눈 감추듯 주먹밥을 먹어 치우고 말았다.

섭냄이는 정지 치우고 오겠다며 또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날만 밝으면 들를 것 같았던 점백이 할매가 해가 둥실 더올랐어도 오지 않았다. 논개는 조바심을 치면서 연신 안집 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창기 오매와 아버지에게 그동안 방을 내주어 잘 살았다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슬그머니 없어져 주어야 할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이치로야 인사를 해야 될 것 같았지만, 왠지 그들 앞에서 쫕겨나가는 자기의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들에게도 소리 없이 떠나 주는 것이 차라리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논개는 그냥 떠나기로 작심을 한다. 마지막으로 바늘 쌈지며 골무, 헝겊 조각 등이 담긴 받짇고리를 챙겨 들고, 일 년여 살았던 정든 방과 정짓간과 쪽마루를 둘러보면서 집을 나섰다.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으려 애쓰면서 서둘러 점백이 할매 집으로 향했다. 궤짝과 물독, 나뭇짐 등 남아 있는 큰 짐들을 할매가 빨리 좀 가져가서 방과 정짓간을 주인에게 비워 주도록 부탁하기 위해서다. 할매 집으로 들어가는 막바지 고샅에서 마악 사립문을 나서는 할매와 마주쳤다.

“논개가?” “할매 집으로 가는 길이라예. 지가 갖고 갈 짐은 새복에 산으로 다 옮겼어예. 남아 있는 거는 할매가 가져가실 꺼뿐이라예. 송달이 아부지가 오늘 중으로 좀 가져가 주시고, 방을 얼렁 비워 줬으믄 싶어서예.” 논개는 할매를 보자마자 단번에 할 말을 다 해 버릴 것처럼 빠르게 주워섬겼다. “논개야, 니 참말로 산으로 갈 끼가?” “그라믄예! 짐 다 갖다 놨습니더. 창기 아부지 오매한테 그동안 그 방에서 잘 살았다고, 고맙다고, 지 대신 말씸 좀 해 주시소예.” “창기 오매 아부지한테 아무 말 안 하고 나왔더나?” “안 했어예. 창기 아부지 모리게 기냥 나오는 기 아지매 아재도 편하시고, 지 꼬라지도 덜 더러불 꺼 같아서예. 할매, 그라모 지는 할매만 믿고 갑니더예.”

논개는 선 채로 허리를 숙여 할매에게 인사를 올린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했지만 할매를 생각해서 눈을 질끔 감고 이를 악문다. 새로이 펼쳐질 산속 생활을 눈물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 헤쳐 나가야 할 앞날을 위해 논개는 마음을 독하게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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