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과 진화론

석준태함양군청 감사담당자
석준태함양군청 감사담당자

 

청렴하게 사는 것이 쉬울까? 부정하게 사는 것이 쉬울까? ‘청렴’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 처벌하거나 혐의를 입증할 수 없는 수준이고, ‘부정’은 현행법과 규정을 위반하여 정도의 경중을 떠나 징계 이상의 처분을 받는 수준, 쉽게 말해 ‘김영란법’의 위반 여부에 따라 두 가지를 구분한다고 가정할 때 과연 어떻게 사는 게 더 쉬울까? 나에게는 둘 다 어렵다.

청렴하게 살기 어려운 이유는 일단 내용도 어렵고, 다양한 변수를 모두 통제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공무원 신분으로 여러 사적 인간관계를 맺고 살지만, ‘김영란법’을 통째로 외워 다닐 수도 없고, 개별 상황에 맞춤 적용하기는 더 어렵다. 심지어 다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을 완벽히 이행하기도 어렵고, 주변사람을 관리하는 일 역시 어렵다. 의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며,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는 더 힘들다. 많이 알아야 지킬 수 있고 알수록 더 어려운 것이 청렴이다.

부정하게 살기 어려운 이유는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도덕적 잣대를 기준으로 한 사회의 다양한 감시 기능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눈치’가 보여서다. 타인의 눈치란 때로는 우리를 개성 없는 평범함 속에 가두는 속박이지만, 때로는 다듬어지지 않은 속성들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밖에서의 내 행동과 혼자 있을 때의 행동이 완벽히 일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이 사회적 감시 기능의 결과물인 ‘눈치’가 크게 작용하는 것이 원인이다. 그러나 청렴하게 사는 것에 비해 덜 알아도 되고, 안 걸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눈치를 적게 보는 사람들은 부정하게 사는 것이 쉬울 수도 있다.

도대체 청렴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지키고 살기 어려운 것일까?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하는데, 청렴과 선함은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저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 가치일까? 또는 인간의 유전자에 탐욕이란 본능이 새겨져 있어서, 삶이라는 것은 유전자가 지휘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일까?

진화론적 관점 볼 때, 우리의 대부분은 탐욕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확률이 높다. 자신이 가진 영토와 자원, 노예, 식량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갖고 싶은 욕심을 발단으로 치러야 했던 전쟁의 수는 헤아리기도 힘들다. 더 큰 탐욕으로 무장해서 승리한 자들은 번식에 유리한 입지를 선점했고, 그들이 우리의 조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얻었던 시절의 호모 사피엔스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다른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배타적 성격의 조상이었다. 이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치명적 도구였으나, 경쟁적 원시 환경에서 우리 종을 살아남게 해주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에 다수가 동의한다.

이처럼 우리가 탐욕적 조상의 후손이라서, 유전자의 영향으로 청렴보다 부정을 저지르기 쉬운 존재로 가정하자. 그렇다면, 현대사회가 청렴함을 사회의 기본적 가치로 내세우는 일은, 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인간의 유전적 특질을 이겨내라고 강요하는 이율배반적 사고 아닐까?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