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주의 환경상식 108-15

쇼핑백, 포장지보다 좋은 우리 보자기

한 손에 보자기를 들고 또 한 손에 아이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는 여인네의 뒷모습은 정겹다. 대문만 열면 고불고불 펼쳐지는 집 어귀 고샅에서 보자기를 든 손을 구경 하기란 쉬운 일이었다. 대문을 빼꼼히 열어 놓고 툇마루에 앉아 하릴없이 바깥세상을 구경하던 어린 시절 눈이 아프도록 스쳐 지나가던 것은 보자기, 보자기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어느 백화점, 어느 쇼핑센터의 이름이 박힌 종이가방을 찾으려면 모를까 보자기를 든 그 얌전한 손을 길거리에서 구경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돈을 주고 사서 볼 만큼 귀한 풍경이 되었다.

보자기가 사라진 오늘...

물건을 싸고, 운반하고, 덮던 보자기가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 이유는 뭘까. 들고 다니기 불편해서? 왠지 촌스러워서? 아니면 세상이 좋아져 모든 것을 배달해버리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보자기 값이 엄청나게 비싸서? 아무튼 보자기는 오늘도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보자기에 서리서리 서려있는 의미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근다면, 보자기의 실종(?)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보자기의 실종에 대해 ‘이래서는 안 되지’라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보자기의 쓰임새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접어놓으면 하찮은 천 조각에 다름없다가도 펼치면 제 몸뚱어리 이어지는 데까지 물건을 감싸주는 넉넉함이 있다. 그리고 밥상 위에서는 임 기다리는 아낙마냥 수줍게 제 모양을 드러내는 순박함이 있는 것이 보자기 아닌가.

보자기는 그 필요에 따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가리고, 받치고, 덮고, 꾸미고, 상징하고, 신앙적인 바람의 대상으로 쓰이던 물건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옛 보자기는 반상의 구별 없이 두루 쓰였다.

돌담 넘어 옆집으로 떡을 돌릴 때, 귀한 사람에게 선물을 보낼 때, 혼인을 청하던 사주단자를 보낼 때, 아들 딸 잘 낳게 해달라고 기원할 때... 약방의 감초마냥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보자기였다. 보자기는 용도와 격식에 따라 곱게 수놓은 수보자기, 청홍색을 겉과 속에 댄 색 보자기, 쪽물들인 허름한 무명보자기 등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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