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둘러싼 논란이 국무총리실로 넘어갔다. 경남과 부산, 울산 단체장이 줄기차게 김해신공항에 대한 국무총리실 재검토를 요구했고, 이들 단체장의 뜻대로 결국 국토부가 국무총리실 재검토를 받아들였다.

김해신공항은 결정 3년 만에 중단 및 무산화 기로에 섰다. 김해신공항을 둘러싼 논란이 앞으로 총리실 결정으로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총리실 재검토를 두고 지역 여론을 반영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정부가 절차를 거쳐 결정한 정책이 정치 논리에 따라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비판이 거세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총선용이란 비난마저 일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LS용산타워에서 만나 동남권 신공항 관련 면담을 하고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 김해신공항이 적정한지 총리실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그 결과를 따른다”는 합의문을 전격 발표했다.

지금까지 김해신공항 강행 방침을 견지해온 국토부가 부·울·경 단체장의 끈질긴 요구에 이들 뜻대로 총리실 검토로 급선회한 것이다.

2016년 6월 국토부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계획을 발표하면서 가덕도와 밀양 두 곳 중에서 입지를 고심하다 김해공항에 활주로 1개를 더 넣는 김해신공항 안을 확정한 바 있다.

김해신공항 안은 논란을 피하려 ADPi(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에 용역을 맡겨 객관적으로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당시 ADPi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공항 운영, 접근성, 경제성, 사회환경 등 가중치를 달리한 4가지 경우를 모두 적용해 조사한 결과, 김해공항 확장의 평가 점수가 818점, 밀양 683점, 가덕도 581점 순으로 나왔다.

갈등 끝에 지자체 간 합의를 통해 김해신공항 안이 추진됐으나 정권이 바뀐 뒤 부·울·경 단체장이 김해신공항은 동남권 관문공항으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다시 시작됐다.

국토부는 지금까지 기존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김해신공항 강행 방침을 고수했다.

그러나 부·울·경 지역에서 신공항 검증단을 꾸려 자체 조사를 벌인 뒤 김해신공항이 관문 공항으로 부적합하다며 국무총리실에 최종 판단을 맡기자고 요구했고 마침내 관철했다.

김경수 지사는 “국토부와 간담회 자리에서 결론 내기가 어렵다는 걸 확인했고 총리실에서 최종 결론을 내는 게 필요하다는 점에 합의했다”며 “여기에 합의하지 않으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총리실 이관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부·울·경 단체장들은 지금껏 줄기차게 주장한 요구가 관철돼 만족하고 있으나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강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김해신공항 건설은 5개 시·도가 합의하고 세계적인 공항 전문기관 용역을 거쳐 결정한 국책사업으로 예정대로 추진해야 하며 재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의원들로 구성된 한국당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역시 “부산과 울산, 경남이 가덕도 신공항을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비난 목소리를 높였다.

협의회 회장인 주호영 의원은 “5개 광역단체장과 합의로 이뤄진 국가적 결정을 여당 소속 3개 단체장과 국토부 장관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며 “선거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인가”고 말했다.

부산, 경남은 내년 총선의 승패를 가를 주요 거점으로 평가된다. 정치권은 이들 지역이 국회 의석 과반을 가를 접전지로 보고 있다. 현재와 같은 지역구 상황이 이어졌을 경우 부산은 18개, 경남은 16개 의석을 가진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구·경북을 제외한 부·울·경 단체장의 김해신공항 총리실 재검토 요구를 총리실이 수용한 것을 두고 주호영 의원이 ‘선거를 위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이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면 국가 신뢰도에 금이 가는 것은 물론 사업 자체도 늦어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확정한 사업이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바뀔 수는 있으나 추진 과정이 불투명하거나 예측 못한 하자 등 객관적인 것이 없는 상황에서 부·울·경 단체장의 총리실 재검토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선거 운운 하는 의혹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갑)과 홍의락 의원(대구 북구을) 등 일부 민주당 의원도 비판에 가세했다.

김 의원은 총리실이 김해신공항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한 데 대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책사업이 이런 식으로 표류하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믿고 하겠느냐. 정책·행정 안정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비판했다.

홍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실이라면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라며 “5개 광역단체장의 합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최소한 5개 단체장이 다시 만나는 형식적 절차라도 있었어야 말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총리실은 국토부 장관과 부·울·경 단체장 간 합의에 즉각 답변했다.

총리실은 동남권 신공항 대상지 검증 문제가 국토교통부에서 총리실로 이관된 것과 관련해 “당사자들의 논의사항을 파악한 뒤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5월 동남권 신공항 문제와 관련해 “부·울·경 검증단과 국토부 사이에 끝내 조정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총리실이 조정할 수밖에 없다”며 “총리실이 조정 역할을 맡는다면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사람들이 도와주셔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총리실로 이관되더라도 기존 정부 입장과 부·울·경 간 입장차가 여전한 데다, 대구·경북 지역의 반발도 거세 이른 시일 안에 결론이 나오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울·경 검증단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국토부는 이미 내부 검토를 마친 상태이며 총리실에서 재검토를 시작하면 국토부 의견을 설명한다는 방침이다.

김경욱 국토부 2차관은 “현재 국토부 안으로 김해신공항이 부·울·경 관문 공항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며 국토부 방침에는 변화가 없음을 나타냈다.

류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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