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야
월간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남강문학협회 회원

“도둑에도 차등이 있다. 가장 어리석은 자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는 도둑놈이다. 그런 놈은 십중팔구 덜미를 잡히기 싶다. 다음 어리석은 도둑은 도적질을 하다가 들키는 도둑놈이다. 이런 놈은 자칫 맞아죽기 십상이다. 가장 상 도둑은 들키지 않고 훔치는 도둑놈이다. 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도둑놈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게 도둑놈 처신의 기본이다. 자고로 도둑놈은 소리를 내지 않는 법이다. 이런 자야 말로 비로소 도둑경의 도를 깨친 자들이다. 그들의 무리가 저렇게 이 한밤중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고층 빌딩 속에서 으까 번쩍

사는 법이다. 우리가 도둑질을 하는 궁극의 목표는 다들 저렇게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도 자라서 저렇게 살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예. 아버지.”

아이는 갈수록 그 아비가 존경스러운 모양이었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진짜 도둑놈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는 도둑놈이다. 훔쳤으면 그걸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더 높이 오르려다 더 많이 가지려다 패가망신한 도둑들이 천하에 즐비하다.” “아버님, 그들은 어디에 삽니까?”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외진 곳에서 콩밥을 먹고 사느니라.” “아버지는 그 콩밥을 잡셔보셨습니까?” “이목구비를 가진 자 그렇게 살지 못하느니라. 내 경험 삼아 몇 번 그 곳을 들락거리며 깨달은 바가 있다. 그곳이 바로 짐승우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육 당하는 짐승이나 진배없다. 그러니 너는 주지육림은 벗 삼되 콩밥은 멀리하고 살아라.” “이제야 아버지가 콩비지를 멀리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콩비지뿐만 아니다. 콩으로 만든 두부도 멀리한다. 무릇 모든 도둑놈은 모둘 훔치되 콩밭 근처엔 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마침 자정을 알리는 벽시계가 울었다. 아이가 간곡하게 청했다. “이제 아버님께서 거룩하신 일터에 나가실 시간입니다. 오늘밤 행차 지는 어디 옵니까?” “도둑놈 가는 길은 묻지를 마라고 도둑경에 나와 있다. 애비는 바람 같으니라. 내 발길 닿는 대로 내가 못가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나는 천길 벼랑도 비호 같이 날아오르고 열 척 철문도 순식간에 열어젖힌다. 첩첩이 닫힌 문도 번개같이 열고 굽이굽이 숨겨 논 재물도 유유히 꺼내든다. 그러니 이 애비가 오죽 거룩하냐?” 아이가 감격하여 눈물로 하소연을 한다.

“하늘 아래 아버지 같은 분이 어디 또 있으리오. 부디 이 못난 자식도 도둑질에 동행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몸을 일으키던 도둑애비가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네놈이 바로 그러하구나! 네가 도둑질을 어찌 그렇게 함부로 보느냐? 무엄하도다. 이론으로 십년, 실전에 오년, 그 정도 수습기간을 거친 자도 막상 도둑질에 나서면 손발이 떨리는 법이다. 하물며 너 같이 젖내 안 가신 아이가? 너는 내가 가르친 오늘밤 그 도둑경이나 익히 익히며 장차 때가 오기를 기다려라.” “예, 아버지.”

어린 자식은 도둑아비의 위엄에 절로 몸을 떨며 아비가 나가는 방문을 열어 주었다. 아비는 스스럼없이 방문을 나서서 도둑고양이처럼 어둠 속으로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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