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기오
교육학 박사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高麗의 관학이나 사학의 철학적 기반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유교 사상이었다. 관학으로는 국자감(國子監), 향교(鄕校), 동서학당(東西學堂)과 오부학당(五部學堂)이 있었고, 사학으로는 서당(書堂)이 있었다.

국자감은 최고 학부로 제6대 성종(成宗) 11년(992) 12월에 창설되었다. 교육 목적은 관리 양성이 목적이면서 유교적인 학문 연구기관으로서의 사명이 있었다. 국자학(國子學)·태학(太學)·사문학(四文學)은 9년, 율학(律學)·서학(書學)·산학(算學)은 수업 연한이 6년이었다. 교육 내용은 주역(周易)·상서(尙書)·주례(周禮)·예기(禮記)·모시(毛詩)·춘추(春秋)·좌씨전(左氏傳)·곡량전(穀梁傳)으로 하였고, 논어와 효경이 필수였다. 율학에서는 율령(律令)을, 서학에는 팔서(八書)를, 산학에는 산수를 학습하게 하였다.

향교(鄕校)는 지방 공립 교육기관으로 그 이름이 남아있다. 향교는 유교이념의 전파와 지방 교육 강화를 위한 기관이었다. 성종 5년(986)에 십이목(十二牧)에 경학박사(經學博士), 의학박사(醫學博士) 각 1명씩을 보내어 국자감에서 공부하다가 귀향한 자제 및 지방유지 자제 등을 가르치게 하였다. 향교는 유교의 사당인 동시에 지방민의 교화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향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자는 국자감(國子監)에서 공부할 수도 있었다.

동서학당(東西學堂)은 고려 말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중앙의 각 부에 두었던 관학이다. 국자감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개경(開京)의 학도들을 교육시키는 기관으로 제24대 원종(元宗) 2년(1261) 3월에 개경의 동쪽과 서쪽에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오부학당(五部學堂)은 고려 말(조선 초)에 중앙의 각 부(部)에 두었던 교육기관이다. 동부·서부·중부·남부·북부 학당으로, 고려 원종 2년(1261)에 설립된 동서학당(東西學堂)이 그 시초이며, 유교가 사상계를 지배하게 되자 유학 교육의 진흥책으로 개경(開京)의 각 부에 학당을 설립하여 오부학당으로 확장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 중등교육기관으로 정비하였으나, 북부학당은 끝내 설치되지 못하고 1445년(세종 27) 경에 폐지되어 사부학당(四部學堂)으로 남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12 공도(十二公徒)는 학(學)을 따르는 무리라는 의미에서 도(徒)라고 하였다. 12공도는 문종 9년(1055) 벼슬에서 물러난 최충(崔沖)이 자신의 집 사랑채에 사숙(私塾)을 열어 후진을 양성한 데서 비롯되었다. ①최충의 문헌공도, ②노단(盧旦)의 광헌공도(匡憲公徒), ③정배결(鄭倍傑)의 홍문공도(弘文公徒), ④김무체(金無滯)의 서원도(西園徒), ⑤김상빈(金尙賓)의 남산도(南山徒), ⑥은정(殷鼎)의 문충공도(文忠公徒), ⑦황영(黃塋)의 정경공도(貞敬公徒), ⑧유감(柳監)의 충평공도(忠平公徒), ⑨문정(文正)의 정헌공도(貞憲公徒), ⑩김의진(金義珍)의 양신공도(良愼公徒), ⑪서석(徐碩)의 서시랑도(徐侍郞徒), ⑫미상(未詳)의 귀산도(龜山徒)이다.

고려의 서당(書堂)은 부락에 설치된 민간의 자생적인 사설 교육기관이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하여 서당의 기원을 고구려의 경당에서 찾기도 한다. 미혼의 젊은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서당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고려의 관학인 국자감(國子監), 향교(鄕校), 동서학당(東西學堂)과 오부학당(五部學堂), 그리고 사학이라고 볼 수 있는 서당(書堂)은 조선시대의 성균관(成均館), 사학(私學), 향교(鄕校), 서원(書院), 서당(書堂) 등에 상당한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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