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형택
전 진주시 총무국장
전 진주시의회 의원

 

유럽의 노인들에게는 윈도 사이드 폴리스 (window side police)란 특별한 애칭이 붙는다. 창가의 경찰이라는 뜻이다. 일조량이 적은 유럽의 가정에서는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문 옆이 노인의 자리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랫목이 어른의 자리인 것처럼 유럽에서는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창문 옆을 노인의 자리로 배려하는 것이 어른에 대한 예의로 되어 있다.

유럽의 노인들은 온종일 창가를 떠나지 않고 일광욕과 함께 바깥세상을 구경하며 소일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창문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바깥의 움직임에 대한 참견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지나다니는 행인 가운데 누가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야단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시비가 붙으면 잘잘못을 가려주는 것은 물론 범법행위는 지체 없이 경찰에 신고하는 역할까지 담당함으로써 윈도 사이드 폴리스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인생을 많이 살아온 어른들에게는 젊은이들이 범치 못할 경험과 경륜이 있다. 그 경험과 경륜을 통해 어떻게 하면 실패하고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가 등의 폭넓은 삶의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이 많은 사람들의 지혜이다.

유럽 사람들이 노인들의 세상 참견을 경찰의 역할에 비유하는 까닭도 노인들은 자신의 풍부한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타이르고 잘잘못을 가려주고 있어서 실제 경찰의 직무보다 유연하고 정확하며 효과적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즉 노인들의 역할과 능력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어른들이 제자리를 찾아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내는 사회는 실패가 없다. 어른다운 어른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정은 흔들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사회는 어떠한가? 노인들이 지키던 아랫목은 썰렁하게 식어 있고 노인들의 참견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노인들을 모시려는 가정이 거의 없다. 억지로 모신다 해도 못 쓰게 된 물건처럼 구석방에 밀어 넣기 예사다. 아예 어른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 꼴이 말이 아니다.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성윤리의 타락이나 이로 인한 가정 붕괴만 해도 그렇다. 집안의 어른들이 밝은 창문 옆이라도 좋고 아랫목이라도 좋은 어른의 자리를 지키면서 가정이 돌아가는 모양을 유심히 관찰하고 잘못 될 성 싶으면 참견도 하고 조언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무참히 무너질 리가 없었을 것이다.

눈을 돌려 정치계를 들여다보면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요즘의 정치판 속에 어른들의 자리가 있고 어른들의 참견이 있다면 요즘처럼 어지럽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권이 오늘날처럼 생산성 없는 집단으로 국민적 원성과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도 지난날에 존경받던 원로가 자리에 없고 그분들의 자문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꼴로 보아 요즘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간섭하고 꾸짖을 어른들의 자리를 쉽게 마련할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어른들을 몰아내는 것을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나이 많은 교사들을 퇴출시키는 것이 개혁의 첩경이라고 생각하는 교육계의 넌센스다.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무능하다고 치부하는 풍토 속에서 사회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킬 수도 있는 어른들의 경험과 경륜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사랑방이라면 사랑방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구석방이라면 구석방 창문으로 밖을 내 다 보면서 잘못 되어가는 정치, 잘못 되어가는 경제, 잘못 되어가는 사회 잘못되어가는 가정을 타이르고 참견하고 고발하는 한국판 윈도 사이드 폴리스가 되어 나이에는 정년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경륜에는 정년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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