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형택
전 진주시총무국장
전 진주시의회의원

세계에서 자존심이 강한 민족을 들라면 프랑스인을 꼽는다. 민족성이 강하기로도 으뜸이다. 영토나 인구면에 있어서 우리와 차이가 거의 없는 그들이 선진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도 다름 아닌 그들 특유의 자존심과 민족성이다. 그것만으로도 제 2차 세계대전을 버티며 세계를 휘어잡는 민족이 프랑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의 자존심을 높여 주며, 무엇이 그들의 민족성을 강하게 만드는가? 바로 그들이 민족의 전통 문화에 대한 애착심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무한히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거리문화다. 거리마다 그들의 문화적 상품을 진열한 좌판으로 가득하다. 어디를 가나 샹송이 넘쳐 흐르고 시와 그림이 넘쳐 난다. 프랑스 전체가 문화예술의 거대한 시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문화시민으로 대접받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콧대가 높아진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거리는 어떠한가? 돌아보라 공해에 찌들대로 찌들어 크지도 못하고 비틀어진 가로수 사이를 비집고 보면 천편일률 적으로 늘어선 시멘트 구조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것들로 인해 산도 가려지고, 강도 가려지고, 하늘도 가리어진 답답한 거리에 먹고 살기 바쁜 시민들의 아우성과 자동차의 매연이 뒤범벅되어 혼란스러울 뿐이다.

도시 한복판을 잠깐이라도 지나보면, 인도는 사람의 정체로 차도는 자동차의 정체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우리의 거리는 짜증이 난다. 스트레스만 쌓인다.

이러한 환경에서 무슨 자존심을 키우고 무슨 민족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교통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이러한 우리의 거리는 세계에서 자주 노출되고 있다. 직접 한국의 도시를 방문하거나 정보망을 통해 우리의 살벌한 거리를 관찰한 외국인들이 느낄 감정과 평가는 과연 어떻겠는가? 아무리 동방의 제일가는 문화민족임을 내세운다 한들 그들이 믿어 주겠는가? 어림도 없는 기대다. 오히려 문화 불모의 거리를 종종걸음 쳐대는 우리의 모습을 참으로 처량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 동양의 문화국이라면 거리에 우리 문화를 내 걸어야 한다. 거리에 내걸린 상품이 눈에 가장 잘 들어오면 잘 팔린다. 거리 문화라고 해서 저질문화라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 문화치고 저질문화는 없다. 우리의 고급문화를 거리에 내놓고 싸게 팔자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문화를 향유하게 하고 모든 외국인이 우리의 문화를 사가게 하자는 말이다.

우리의 문화시설은 일반 대중이 사용하기에 문턱이 너무 높다. 웬만한 공연장의 입장료가 만원에서 십 만원이다. 문화재 입장료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명목을 붙여 꽤 많은 입장료를 받는다. 그림 값은 아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천정부지다. 최근에는 우리다운 것 또한 드물다. 전통적인 문화예술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음악도 외국적인 것이 인기가 있고, 그림도 외국 작품이 잘 팔린다. 뿐만 아니라 정신문화라 할 수 있는 문학에서도 외국의 사조를 닮아 가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러한 유쾌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것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는 과연 왜 이 모양 일까? 대답은 자명하다. 전통문화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수수방관이었다. 안 팔리면 팔리게 하고 관심이 없으면 관심을 끌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지방 자치단체나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다.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에서 전통문화를 사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돈으로 지원해 주라는 얘기도 아니다. 일반 대중이 전통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마당 정도는 정부에서 마련해 줘야 한다. 으리뻔쩍 한 예술의 전당이나 무슨 문화회관이라는 이름만 거창한 건물 말고 도시의 뒷골목에 시골의 마을 회관에 신명나는 전통문화의 마당을 칠칠하게 차려 주라는 말이다.

시장 바닥에는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쩌렁거리게 하고, 그 뒤를 따라 새남 쟁이가 껑충거리게 하고, 또 그 뒤에는 사물 잽이와 광대와 소리꾼이 또 그 옆에는 환쟁이가 녹여 줄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 주라는 말이다.

우리민족의 문화처럼 다양한 문화를 간직한 민족이 없다. 엿장수의 가위소리에도 어깨를 들썩일 줄 아는 민족이 우리다. 보릿고개를 넘던 도리깨질이 멈추면 부지깽이를 들고 솥뚜껑을 두드리며, 춤을 추던 분들이 우리의 선조다. 상여 앞의 요령 소리도 쟁쟁하지만 무당의 귀신 쫓는 행위는 천하의 명품(名品)이다. 금줄에 칭칭 감긴 벅수도, 마을 지킴이 노릇을 톡톡히 해 내던 솟대나, 서낭당도 대책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는가?

하회 탈춤이나 별신굿 같은 무형 문화재는 두었다가 무엇에 쓰려는가? 오라줄에 꽁꽁 묶여 옴짝 달싹 못하는 유·무형의 전통문화유산들을 끌어내어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에도 줄지어 세워 놓고 비행기 좀 태워 해외 나들이로 시켜 보자는 말이다.

우리의 행동이 문화요. 삶의 방법이 문화이다. 왜 이러한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무작정 묶어 두기만 하는가? 숨은 문화재를 캐내어 시장 바닥이건, 골목의 추녀 밑이건 내 걸어야 한다.

그래야 민족의 자존심이 살아나고, 민족성이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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