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기오
교육학 박사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즉 역과(譯科)-의과(醫科)-무과(武科)-율학(律學)-산학(算學)-자학(字學)-이학(吏學)-음악(音樂)-화원(畵學)-천문(陰陽) 교육 등이다.

역과(譯科) 교육은 외국과의 교류에 필요한 통역관(通譯官)의 양성이 목적이었다. 즉 한학(漢學: 중국어), 몽학(蒙學: 몽고어), 여진학(女眞學: 청학), 왜학(倭學: 일본학)이었다. 통역관 교육은 사역원(司譯院)이 주관하였으며 관아 별로 적정 인원을 양성하였다.

의과(醫科) 교육은 전의감(典醫監), 혜민국(惠民局), 그리고 각 지방 관아에서 의료를 담당하는 기관에 부설하여 실시하였다. 전의감은 왕을 비롯한 궁의 의료를 담당하였고, 전의감에는 교수와 훈도가 있었고, 습독관은 30명이었다. 혜민국에는 교수 2명, 훈도 1명이 정원이었다.

무과(武科) 교육은 병조(兵曹)의 훈련원(訓練院)에서 경국대전 병전에 명시된 무재(武才) 시험, 무예 연습, 병서 강습 등에 맞추었다. 무경 습독(武經習讀)의 임무를 담당하는 습독관(習讀官)은 30명이었다.

율학(律學) 교육은 법 집행에 종사할 실무 관리 양성이 목적이었다. 교육을 주관하는 중앙 관청은 형조(刑曹)였다. 중앙에는 교수 1명, 별제 2명, 훈도 1명을 두었고 학생은 40명이었다. 지방 행정 기관에는 훈도(訓導)를 두었고, 목ㆍ부ㆍ도호부의 학생 정원은 각 14명이었다.

산학(算學) 교육은 출납, 회계 담당 인재 양성이 목적이었다. 주관 관청은 호조(戶曹)로 산학교수 1명과 별제 1명, 훈도 1명이 교육을 하였다.

자학(字學) 교육은 정부의 문서 정리와 교정을 담당하는 실무 관리를 양성이 목적이었다. 자학 교육은 교서관(校書館)에서 관장하였고, 교육내용은 설문, 자림, 정자, 부경 삼체, 도화 등이었다.

이학(吏學) 교육은 공문서를 작성하는 하급 관리를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예조에서 관장하면서 문서 작성, 관청과 관청 간의 공문서나 소송 및 판결에 필요한 문서 작성 등을 교육하였다.

음악(音樂) 교육은 악곡의 제작, 악보의 편찬, 악기의 제작, 악공의 양성 등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을 장악원(掌樂院)에서 관장하였다. 학습은 도제적인 방법이었다. 악기의 제작은 풍물장(風物匠)의 상의원 8명이 맡았다.

화원(畵學) 교육은 도화서(圖畵署)에서 필요한 도서의 삽화와 도면 제작, 초상화 작업, 중국화 모사(模寫) 등을 담당하였다. 상근자는 6품 1명, 7품 1명, 8품 1명이었다. 화원의 선발 방법은 죽(竹)을 1등으로, 산수(山水)는 2등, 인물과 조수(鳥獸)는 3등, 화초는 4등으로 통(通)의 성적은 2점, 약(略)은 1점을 주었다.

천문(陰陽) 교육은 중국의 역법(曆法)을 수정하여 기상을 관측하고, 강우량을 측정하는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관상감(觀象監)을 설치하여 천문 지리, 각루(刻漏: 물시계)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관리자는 영의정이 겸임하였다.

이상과 같은 통역관 양성 교육, 의학 교육, 무술 연마, 법 집행 교육, 수리 논리 교육, 문자/언어 교육, 공직자 양성, 음악 교육, 미술 교육, 천체 기상학 교육 등과 같은 다양한 교육들은 오늘날의 다문화/외국어 교육에서부터~ 천문/기상학 연구 등에 이르기까지 지속적-발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