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형택
전 진주시총무국장
전 진주시의회의원

어느 실직자가 우리 사회를 일컬어 “요즘도 줄서기 사회”라고 했다. 줄을 잘 서면 그 만큼 시민들의 질서의식이 생활화 되었다는 말인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줄서기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서 우리는 너무도 줄을 안서고 있다. 그 때문에 약삭빠르지 못한 사람이거나 노약자 그리고 장애인들은 큰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다. 밤늦은 시각에 택시라도 잡을라 치면 우리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관공서, 병원, 은행 같은 곳에서도 오는 순서대로 번호표를 뽑게 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 강제적 질서라도 만들지 않으면 지탱하기 어려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엉뚱한 곳에서 줄서기를 좋아 한다. 아주 옛날부터 세도가의 사랑방에는 언제나 식객들이 득실 거렸다.

출세를 하려면 높은 곳에 줄을 대야 한다는 것이다.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후배라는 이유로, 성의본이 같다는 이유로 우리는 항상 실력 있는 누군가와 줄 대기를 좋아한다.

줄을 잘 잡고, 줄을 잘 서야 출세할 수 있는 사회, 줄을 잘못서서 해고를 당했다고 억울해 하는 어느 실업자의 푸념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실력보다는 눈치가 빨라야 이익을 볼 수 있는 사회는 분명 병든 사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입시에서부터 눈치 보기를 강요당한다.

실력 평가를 한답시고 엉뚱하게 눈치놀음만 시키는 정부의 교육 정책이 가증스럽기도 하다.

줄이란 무엇인가? 삶의 원칙이며 질서가 아닌가? 그런데 그 원칙과 질서를 무시하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쫓아 눈치껏 복덕방식 줄을 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회 통념으로 자리 잡게 한 원인은 무엇인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다.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인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쫓아 줄서기를 일삼으니 아예 그러한 작태라 사회 통념상으로 자리 잡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원칙과 질서가 땅에 묻혀 캄캄한 암흑천지가 되어 가는 요즘에도 일부 크고 작은 정치인들은 권력 앞으로 줄을 바꿔 서느라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

이러한 작태가 어디 정치인뿐이랴. 관리는 관리대로, 재계는 재계대로 권력자의 눈치에 따라 경영원칙을 뒤바꾸기 바쁘고 백년대계라고 하는 교육마저 대학 인기학과만 쫓는 줄서기 교육을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탓하는 일반사회에는 원칙과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는가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거기에도 복덕방식 줄만 보이고 원칙의 줄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남보다 빨리 이룰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하다 보니 비상식 적인 인간이 된다.

우리의 사회질서가 오죽하면 외국인은 10명모이면 한 줄이 되고, 한국인은 2명 모여도 열줄이 된다는 풍자어가 생겨났겠는가?

지금은 국민이 윗물 시대다. 모든 것의 주인은 국민이고, 모든 일의 감독자는 국민이며, 역사 또한 국민의 것이다. 그래서 현 정부는 그들의 이니셜을 국민의 정부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어찌 되었던 국민이 주인인 시대에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고, 따라서 역사와 사회를 이끄는 힘 또한 국민의 철저한 주인의식에서부터 우러나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을 역동시키기 위해서는 제도권의 움직임을 면밀히 감독하고 잘못을 엄단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다시 말해 신념을 팽개치고 권력의 줄만 쫓아 변신을 일삼는 정치인에게 엄한 벌을 내리는 것도 국민의 몫이며, 지역 갈등이나 정경유착과 같은 망국병을 치료할 힘도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맞이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을 꼽으라면 나는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감독 태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감독권을 정치인들에게 위임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편의에 따라 말을 바꾸는 대부분의 거짓 정치인을 용서해 주었고, 개인의 이익에 따라 복덕방 줄을 서는 철새 정치인들에게 그 잘못을 추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부분에 원칙이 무너지고 질서가 무너졌으며, 결국 나라꼴이 이 모양이 되었는데도 국민들은 정치인 탓만 하고, 재벌들 탓만 하고, 교육계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나라가 바로 서려면 국민의 힘으로 거짓 정치인을 몰아내고 철새 정치인을 몰아내어 정치판부터 원칙과 질서를 바로 세워나가야 한다. 그 시기가 우리의 눈앞에 오고 있다.

국민의 권리를 대리 집행하는 정치권의 원칙부터 국민이 바로 잡아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요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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