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선호
황석역사연구소장

황석산성 대첩은 임진전쟁 7년 중 가장 많은 일본의 지상군이 궤멸된 전투로 일본인들이 끝까지 감추고 싶은 특급비밀이다. 5일간의 전투에서 우군 7만5천3백 명 중 2만7천명만이 전투가 가능하고 48,300명이 전사 또는 부상자로 70% 이상의 전투력을 상실한 전투로 일본인들이 기록한 내용이다. 경남거창에서 재편성이 1910년대에 실시한 총독부의 조작이라는 것만을 증명하면 잃어버린 역사 황석산성 대첩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임진전란사』의 황석산성 전투 참전일본군을 전주성에서 북진한 병력과 동일한 2만7천명으로 일치를 시킴으로써 7만5천3백명 중 기동이 가능한 병력은 2만7천명이고 나머지 4만8천3백명은 사상자임을 일본인들이 증명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양동작전(陽動作戰)으로 북진하고 부상자가 가득한 9.1일 전주성에서 모리데루모도의 부하요 집사인 깃가와히로이에(吉川廣家)가 낸 18,350개의 코베기보고서는 황석산성을 지나쳐 갔다는 우군의 본대, 모리데루모도와 조오소가베부대가 전주성에서 치료 중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1597년 정유재란시의 진짜우군대장은 사라지고 가짜대장 모리히데모도의 기동로를 1887년도에 창간한 일본국사대사전에 삽입하여 중간목표인 황석산성은 가지 않고 거창에서 사라진 본대가 천안으로 올라갔다는 것으로 조작하여 조선인과 그들의 후손들을 속였고, 시마즈요시히로(島津義弘)의 종군슨인 멘고렌조보의 『고오라이닛기(高麗日記)』에서 우기다히데이에의 9.13일의 익산용안회의 1차재편성의 부대배치표에 모리데루모도는 무장과 영광으로, 조오소가베는 고부로 배치되었으나 취소되어 가지는 못했고 9.16일 정읍에서 실시한 2차재편성에서는 모리데루모도는 전남장성진원현에 조오소가베모도지가는 나주에 실제로 배치되었음으로 황석산성전투에 참전하였음의 증명되고, 나베시마나오시게(鍋島直茂)가문의 기록에 7만여 명의 일본군이 황석산성을 포위했다는 기록이 있고, 2016.11.16일 함양군문회원의 황석산성 학술회에서 황석선성을 공격한 우군이 7만5천3백 명이라고 제도권 역사학계의 해양대학교 김강식 교수가 근거를 밝힘으로써 황석산성 참전일본군은 7만5천3백 명이라는 『백성의 전쟁 황석산성 대첩』의 근거를 확실하게 증명해 주었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역사의 전문가들이 학술회를 통하여 전문가들이 신속하게 보완하여 주기를 당부 드린다.

황석산성의 전투단위는 분소대(分小隊)가 아니라 피난을 온 가족단위다. 안음거창함양합천초계삼가산음 등 7개현의 부녀자, 노약자 7천여 명이 열배도 넘는 7만5천여 명의 일본정규군을 궤멸시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대첩을 성공적으로 이끈 황석선의 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적을 죽이지 않으면 가족이 죽는다는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황석산성에서 활을 쏘고 돌을 굴리며 치열한 전투를 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한 치라도 뒤로 물러선다는 것은 가족을 포기하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를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희생정신이 황석산의 정신이고 나라를 지키는 열사(烈士)요 의사(義士)다.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코를 빼앗기고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한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선다면 내가 물러선 그만큼 가족의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조정이나 명나라 어느 한곳에서도 기댈 곳이 전혀 없는 높고도 험한 1190m 고고한 황석산성에서 노약자, 부녀자, 농민, 사냥꾼 등 7천 여 명의 백성군이 모두 코를 베이고 죽을 때까지 불굴의 투지를 발휘하여 처절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심장에서 동맥을 타고 솟구치는 가족에 대한 불같이 뜨거운 사랑의 힘이다.

코를 베이고 죽어가는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가족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다가 죽어간 전투다. “나는 죽어도, 아들아! 너는 절대로 죽지마라!” 군인으로서는 오합지졸인 백성들이 열배도 넘는 7만의 일본정규군을 궤멸시킬 수 있었던 황석산성의 정신 그것은 가족이 가족을 지키려고 자신의 목숨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희생정신이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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