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호 르네상스 프로젝트

 

1970년 최초 지정된 진주시의 대표공원인 진양호가 공원지정 후 50년이 되어가는 현재 공원시설의 노후와 신규 프로그램의 도입 부족 등으로 해마다 방문객 감소세를 보이고 있음에 따라 진주시의 대표공원으로서 위상회복은 물론 변화된 여가문화를 수용하는 진양호공원 활성화 및 관리운영방안 수립을 위한 새로운 진양호 개발인 “진양호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진주시가 발표했다.

프로젝트의 기본방안을 보면 공원시설 확충과 매력적인 집객시설, 도시 랜드마크 도입으로 진주시의 핵심공원 및 서부경남의 거점관광시설로 공원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로젝트에 있어서 제일 먼저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기존 시설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지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추가개발을 지향함에 있는 친환경 개발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진양호 상징 랜드마크 시설과 문화컨텐츠 사업의 추진으로 시민을 위한 공원만들기 사업과 서부지역 거점공원으로서 인지도 회복과 진양호를 대표하는 상징시설 도입으로 공원매력도 제고에 맞춰져 있다. 끝으로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한 지역축제 및 이벤트를 유치하여 4계절 색다른 문화행사를 수용하는 대한민국의 대표공원으로서 도시문화의 신재생 거점공원으로 재탄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진주시의 새로운 진양호 개발 “진양호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앞두고 진양호와 남강 바로알기 위하여 역사 속의 남강과 진양호의 역할을 소개하고자 한다.

남강의 발원

진양호는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댐과 남강댐에 의해 생긴 인공호수이다.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근원은 둘이다. 하나는 남덕유산 참샘에서 발원되어 함양 위천을 거쳐 지리산 북쪽에서 흘러드는 경호강이며, 다른 하나는 지리산 천왕샘에서 발원되어 중산천과 삼장천으로 지리산 남쪽에서 흘러드는 덕천강이다. 이 두 강이 진주 시내 서쪽 광탄(光灘)[너우니]에서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 제방을 쌓고 사천만으로 방수로를 뚫어 남강 하류의 홍수를 방지하자는 주장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남강 유역의 상습적인 수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댐을 건설하는 낙동강 개수계획이 착공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했다. 1960년대에 비로소 경제개발계획에 치수사업으로 포함되어 1969년 남강다목적댐이 완공되었으며, ‘남강댐 숭상공사’로 불리는 새로운 댐 건설이 1989년 착공되어 2001년 준공되었다. 이 사업의 목적은 댐 저수량의 확대를 통하여 서부경남 일대의 생활·공업용수와 관개용수 등 용수를 확보하는 데 중점이 있다.

 

[조선시대 세곡운반 및 교통로로서의 수통골(삼계)]

조선시대의 육지교통은 인력과 우마를 운반수단으로 하는 보도 중심의 육로와 내륙 수로로서 하운을 활용하는 교통체제로 고개 및 도선장이 교통의 주요 결절점이 되었다. 영남의 세곡(稅穀)은 조선 후기 영조대부터 조운(漕運)으로 서울에 운반되기 시작했다. 서부경남지역의 세곡은 가산(駕山)의 우조창(右漕倉)에 모아졌다가 배로 서울에 운반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산청·함양·단성·합천 지역의 세곡이 오미·갈골을 통해 덕천강과 경호강의 합류 지점 근처에 있는 지수골 입구를 거쳐 수통골(삼계)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도선장 지점으로서 중요한 곳인 지수골(신풍리 동쪽 끝에 있는 골짜기로서 이 골을 넘으면 판문동으로 통한다)은 여러 호의 객주집과 마굿간이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

『택리지』에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들이 적어서 수레가 다니기에는 불편하므로 온 나라의 장사치는 모두 말에다 화물을 싣는다. 그러나 목적한 곳의 길이 멀면 노자(路資)가 많이 허비되면서 소득은 적다. 이러므로 배에다 물자를 실어 옮겨서 교역하는 이익보다 못하다(我國 山多野小 車行不便 一國商買 皆以馬載貨 道遠盤纏之費羸得少 是故莫如船運貨財而爲貨遷交易之利)”하여, 육로보다 수로를 이용하는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남강이 합류하는 지수골―수통골(삼계) 일대는 가산창의 수운을 이용하기 위한 육로―수로의 운송 전환 지점으로 조선 후기부터 활용된 곳이다. 이 교통로는 오미-갈골-딧내-지수골-귀곡-삼계리(삼거리 혹은 수통골이라 부름)-가산창에 이르는 고개와 하천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삼계리는 결국 남강댐에 의한 인공방수로로 개통되어 ‘수통골’이라는 삼계리의 별명이 물이 넘어 통한다는 현실로 나타났다.

 

<참고자료;디지털진주문화대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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