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9월 8일 경주성, 일본군은 때구르르 굴러다니는 쇳덩이를 발로 툭 건드려 보기도 하고, 장난치듯 공처럼 굴려보기도 했다. 갑자기 쇳덩이는 큰 굉음과 함께 폭발하고, 작은 쇳조각이 별 조각처럼 날려 군사 수십 명이 맞아 즉사했다. 근처에 있던 병사는 놀라서 쓰러졌다.

바로 조선시대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였다. 일본군은 천지를 흔드는 소리와 사방으로 흩어지는 쇳조각에 큰 피해를 입었고, 조선군의 총공격에 많은 사상자를 내고 성을 버리고 퇴각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뚜껑 실물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지난 12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호남문화재연구원이 지난해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적 제346호)에서 발굴한 비격진천뢰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뚜껑을 확인했다.

비격진천뢰 뚜껑은 포탄 안에 들어가는 목곡(木谷·골을 판 막대기), 쇳조각, 화약 등 부속품이 낙하지점까지 가는 동안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하며, 뚜껑은 직사각형으로 위쪽 입구로 넣은 뒤 돌려서 고정하는 형태다. 중앙부에 손잡이 같은 꼭지가 있으며 양옆에 심지 구멍 두 개가 있다.

허일권 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불발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 심지를 두 개 두었을 것”이라며 “조선시대 화포인 완구(碗口)에도 심지 구멍이 두 개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내부까지 조사하지는 않았는데, 화약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물관은 무장읍성에서 수습한 비격진천뢰를 컴퓨터 단층촬영(CT)과 감마선 투과 장비로 분석해 내부에서 많은 기공을 확인했다. 아울러 본체는 주조 기법으로 만들고, 뚜껑은 단조 기법으로 제작했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허일권 연구사는 “본체는 잘 깨지도록 주조 기법을 택했고, 상대적으로 얇은 뚜껑은 단조 기법을 통해 질기고 강하게 만들었다”며 “뚜껑이 먼저 부서지는 것을 방지하고, 본체가 쪼개지면서 쇳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나온 비격진천뢰는 무장읍성 출토품 11점과 보물 제860호로 지정된 ‘비격진천뢰’를 포함한 기존 유물 5점 등 16점이 있다. 문헌에 따르면 비격진천뢰는 별대, 대, 중으로 나뉘는데, 현존 유물은 모두 중비격진천뢰에 해당한다.

진주박물관은 16일~내달 25일까지 특별전 ‘비격진천뢰’에서 비격진천뢰의 전 제작 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전하는 모든 비격진천뢰와 완구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류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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