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그럭저럭 지리산까지 왔지만 터무니없는 계획을 가진 그들에게 먹는 문제도 그렇고 당장 어디서 잠을 자야하며, 다람쥐는 어디서 잡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지리산에만 오면 모든게 마음 먹은대로 저절로 다 될 줄 알았는데 실상은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다.

그리고 다람쥐를 잡아 돈을 벌려고 왔는데 다람쥐가 주로 어디를 다니는지 통로를 파악하여야 하는데 생전 처음 와 보는 낯선 곳에서 다람쥐 출몰지역을 아는 것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막상 다람쥐를 잡는다고 하더라도 어디서 누구에게 팔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다. 딴에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하지만 막상 현장에 임하고 보니 도무지 막막하여 어찌해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돈키호테가 울고 가야 할 만용이었다. 태완이가 병식이에게 계획을 말해 보라고 하자 이번에는 병식이가 막막하여 멍하게 서 있다. “아무래도 우리가 돈키호테가 된 느낌이다.”

“아이다, 우리가 아니고 네가 돈키호테다, 나는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다니는 돈키호테를 무작정 따라 다니는 얼빠진 산초고...” “그래, 네가 산초니까 나만 믿고 따라 댕기라. 밥은 먹여 줄테니까.”

“밥만 먹으면 되나, 잠은 어디서 자고, 또 다람쥐도 잡아야 한다 아이가.”

“니는 하인 산초니까 아무데서나 자도 되는데 나, 돈키호테는 아무데서나 잘 수가 없으니까 문제지.”

비로소 터무니 없음을 직감한 아이들이 그래도 기백은 살아 있어 깔깔 거리고 웃는다.

산길 입구에 큰 느티나무가 있고, 느티나무 밑에서 추래하게 생긴 노인네들이 빙 둘러 앉아 장기를 두는데 병식이가 노인네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가서 잡은 다람쥐를 어디서 팔아야 하는지 물어 보다가 창피만 당했다.

그들의 대답은 “장난감 가게에 팔아라” 거나 “껍질을 벗겨 구워 먹어라” 였다. 처음부터 얼굴도 모르는 당돌한 아이들이 당돌한 질문을 하므로 아예 대꾸도 귀찮다는 시늉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가축시장에 가서 팔아 보라는 말을 했지만 그 사람도 약으로 쓰는 오소리나 개구리, 지네를 산다는 말은 들어 보았어도 다람쥐를 산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다면서 껄껄 웃는 바람에 태완이와 병식이는 얼굴이 벌겋게 된 채 그 자리를 빠져 나와야 했다. 임을 봐야 뽕을 따지. 그래도 일단 다람쥐부터 잡아야 한다.

다람쥐를 잡은 다음에 어디서 누구에게 팔 것인지를 결정하기로 하면서 지옥 같은 학교와 잔소리가 많은 집에서 빠져 나온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하였다.

용맹스런 소년들은 중산리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 떨어진 지리산 입구 마을까지 가서 주변 정황과 산세까지 살펴보면서 어디가 다람쥐가 많이 나오는 곳인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람쥐의 생태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단지 그들이 사는 동네 뒷산 숲이 울창하고 상수리 나무가 많은 곳에 다람쥐가 많이 다닌다는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었던 터라 둘은 일단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 무작정 숲속으로 들어가서 상수리 나무가 많은 곳을 찾아 쥐틀이 아닌 다람쥐 틀을 놓기로 하였다. 어느 틈에 해그름이 되었다.

아이들은 간단한 식사, 음료, 간식거리와 등산용품과 같은 잡화를 함께 파는 구멍가게 겸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말이 식당이지 조선시대 때부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주민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화전민(火田民)들에게 생필품을 팔기 위하여 들어 오는 보따리상들을 상대로 밥을 파는 식당영업을 해 오다가 간간이 찾아오던 등산객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흐름한 집들이 하나 둘씩 식당 겸 상점으로 개조하여 장사를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상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식당이나 상점은 오랜 된 낡은 초갓집 벽을 허물고 방을 주방 겸 홀로 개조한 것이 대부분으로서 홀의 면적이 좁고, 더욱이 그 홀 안에 등산용품이나 잡화까지 진열해야 했으므로 홀 안에는 식탁 한 두 개가 고작이고 좁은 공간 때문에 식당 앞 공터에 평상을 내다 놓아 손님들은 평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태완이와 병식이는 식당 아줌마에게 국밥 한 그릇씩을 주문하였다.

태완이와 병식이가 식당을 찾은 목적은 밥을 먹어야 하지만 그것보다 ‘부근에 싸게 잠잘 방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더 급했다. 밥을 먹으면서 아줌마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설명한 후 잠잘 방을 구해야 하는 것이 목적인데 그런 말을 할 기회가 잘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상은 말하기가 쑥스럽기도 하였고, 막상 방을 구한다고 하면 방값을 비싸게 달라고 할 것 같아 주저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줌마가 국밥을 내 주면서 먼저 말을 건다. 아줌마는 50대 초반 쯤으로 좀은 뚱뚱하고 마음씨가 좋게 보인다.

“학생들이제?, 어디서 왔노?” “아니요, 학교는 졸업했고요, 산에서 돌아 댕기는 짐승들을 잡아 돈을 벌라고 왔심니더” 병식이가 대뜸 말을 받아 대답을 한다.

“여기에 무신 짐승이 있다고 짐승을 잡으러 왔노?, 더군다나 학생들이...”

“우리는 학생이 아니라니까예, 학교는 졸업했고요.”

“내가 척 보면 안데이, 너거들이 학생이 아니라면 머리는 와 빡빡 깎았노, 그라모 너거들 감옥소에서 금방 나왔나?” 그래 놓고 아줌마는 미안하였던지, “됐다 마, 우예끼나 너거들 여기는 뭐 하러 왔노?”

“삵괭이나 노루, 족제비나 박쥐를 잡아 팔려고 하는데요” 병식이는 다람쥐 얘기는 하지 않는다. 태완이는 병식이가 왜 다람쥐 얘기를 하지 않는지 금방 알아 차렸다.

다람쥐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면 동네 사람들이 먼저 잡아 버릴 수 있으므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참 용의주도한 놈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음호에 계속.... .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