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박사 서승조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지질유산연구소 이사
전 고성공룡박물관 명예관장

자연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데에는 지질의 몫이 아주 크다. ‘진주 8경’만 하더라도, 진주성 촉석루, 남강 의암, 뒤벼리, 새벼리는 지질을 이루는 바위이거나 지층과 뗄 수 없는 것이며 망진산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의 해돋이, 진양호의 노을 같은 것들도 산과 호수라는 지질과 연관을 맺고 있는 셈이다.

지질로서 자연을 아름답게 보이려면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며 또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어야 할까? 첫째, 바위나 잘려진 지층이 겉으로 드러나 있어야 한다. 흙이나 식물로 덮여 있어서는 지질로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냥 경치일 뿐이다. 둘째, 규모가 커야 한다. 그래야 지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눈에도 잘 띄기 때문이다. 그리고 규모가 큼으로써 웅장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법이다. 셋째, 사람이 가까이 가기 좋아야 한다. 차를 타거나 걸어서 쉽게 다다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주차 공간이 있거나 안전하게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이런 점을 생각하여 여러 가지 지질 자료를 간직한 촉석루를 받치고 있는 물결 자국 바위와 의암을 살펴보자.

진주성 촉석루는 진주 8경 가운데 제1경으로 진주의 상징이자 영남 제일의 누각이다. 진주성 남쪽 돌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아 진주성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촉석루는 고려 고종 28년(1241년)에 진주목사 김지대가 창건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으로 불탄 것을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중건하였다. 쌓아 올린 돌벼랑 위에 세운 다락이라는 뜻을 지닌 촉석루를 받치고 있는 절벽은 남강 건너에서 보면 동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지층이 볼 만하다. 오랜 세월동안 강물에 침식을 받아 절벽을 이루었으며 의암은 절벽 위에서 떨어져 내린 바위가 물결에 깎여진 것이다. 의암은 이른바 전석(轉石: 본디 바위의 조각이 떨어져 나온 것)으로서 아름다움보다 역사에서 빚어진 거룩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촉석루라는 이름의 바탕인 퇴적암 지층은 본디 수평이었던 사암이 지각 변동으로 서쪽이 올라가고 동쪽이 내려간 탓에 비스듬하게 누워 있게 되었다. 그래도 지층이 대체로는 반듯하게 이어졌으므로 촉석(矗石)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볼 수 있다.

촉석루 부근의 지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퇴적암이 가지는 퇴적구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먼 과거 호수가에서 얕은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고운 모래가 물결로 일어난 물 분자 운동의 영향을 받아 물결자국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단단한 바위가 되어 있지만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모래나 흙이 물결모양의 봉우리와 계곡을 만들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촉석루 일대에서 발견되는 물결자국은 평행 물결자국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으므로 이곳의 지층이 만들어 진 곳은 물이 얕은 호수의 연안의 환경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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